[기고] 계몽군주 프리드리히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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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계몽군주 프리드리히와 김정은
  • 천영준 데이터평론가
  • 승인 2020.09.2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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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준 박사
천영준 박사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은 독일의 태종 이방원 같은 사람이다. 그는 약 46년간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로 재임하면서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물로 존경받았다. “왕들 중에서는 철학자로, 철학자 중에서는 왕”으로 통할 만큼 박식하고 매력 있는 지성인이었지만 쓸데없이 말과 글을 낭비하지 않았다. 페늘롱, 데카르트, 몰리에르, 라이프니츠 등 수많은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각종 저술에 인용했고, 유럽에서 가장 먼저 새 책을 읽는 사람이었지만 왕의 문장은 장황하거나 도취적이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신하들이 업적을 인정받으려고 산만한 문체로 보고서를 올리면 “매우 야만적”이라고 할 정도로 적확한 정치언어 감각의 소유자였다. 그는 탁월한 역사 저술가이자 훌륭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만나 자신의 플루트 작곡에 대해 상의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프리드리히 대왕의 인문주의적 성향은 좋은 정치로 이어졌다. 그는 즉위 후 5년 안에 고문 폐지, 언론 검열 폐지, 종교에 의한 차별 금지 등 시민혁명 이후에나 생각해볼 법한 자유와 권리 도입을 주장했다. 이처럼 현명한 왕이 독재는 하지만 인간주의적 통치를 구사하는 경향을 가리켜 역사가들은 ‘계몽 절대주의’라고 부른다.
 

문화 발전과 정복전쟁의 묘한 관계

대내적인 문화 발전은 대외적인 정복 전쟁과 서로 모순적이면서도 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인접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왕위계승(카를 6세 사후 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물려주려 한 것)을 문제 삼고 슐레지엔 공업지대를 침공했다. 이 지역은 직물 생산의 메카였기에 프로이센의 경제 부흥과 문화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거대한 오스트리아를 뜯어먹으려는 프랑스, 스페인, 작센, 바이에른 같은 나라들의 이해관계까지 맞물려 전쟁은 유럽 전역의 문제로 퍼졌다. 프리드리히는 전쟁 초기 슐레지엔을 장악한 뒤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의 힘을 빼 놓은 후 아헨조약(1748)을 맺어 획득한 지분에 대한 권리만 확실히 했다. 다른 나라 군대는 먼 지역까지 싸우러 와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왕의 기민한 결정은 이후 일어난 ‘7년 전쟁’에서도 재현됐다. 영국, 러시아 등이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프로이센의 적국으로 가담했지만 치밀한 배후 외교를 통해 상대 진영을 흐트러트리는 프리드리히의 전술에 당했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과 교수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혼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빠르게 결정하는 프리드리히의 스타일이 성공적인 계몽군주 정치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나라 군주들은 수십 명의 참모들에게 합의를 구했지만, 프리드리히는 철저히 외로운 의사결정을 통해 전장을 결정하고 타국군(他國軍)보다 두 배는 빠른 기동력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패배를 당해도 끝없이 일어서며 상대에게 타격을 안겨주는 능력” 또한 프로이센의 성공요인 중 하나다.
 

김정은은 계몽군주인가

지난 25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에서 일어난 어업지도원 사살 사건과 관련해 “미안한 뜻을 전한다”고 보낸 메시지가 화제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진정성 없는 사과”라고 비난을 한 반면, 여권 인사들은 “전화위복의 계기”라고 칭송하기 바빴다. 그 중 유시민 노무현 재단의 비평이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그는 김 위원장을 가리켜 ‘계몽 군주’라고 표현했다. 민주평통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통큰 측면이 있다”고 되받았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으로부터 총격을 당하고 사체가 불에 탄 사건은 ‘9.19 군사 합의’를 무효화하는 조치라고 봐도 무방한 일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이례적으로 사과 성명을 내자 여권에서는 대북정책의 성과라는 사실에 감격을 표하고, 더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인격을 상찬(賞讚)했다. 

국민의 힘 당협위원장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은 계몽군주가 아니라 폭군”이라며 “고모부를 총살하고 이복형을 독살하고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 한국의 민간인을 무참하게 사살하고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을 계몽군주로 호칭하면 그의 만행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권의 예찬론을 반박했다.

과연 김정은은 계몽군주일까. 역사적 사례들을 돌이켜 보면 현명하고 덕이 많은 왕이 통치하는 계몽시대라고 해서 잔학행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7년 전쟁 동안 프리드리히가 다스리는 프로이센은 인구의 10%인 40만 명을 잃었다.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 외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군에게 약탈당한 부녀자와 아이들, 적군 패잔병들이 남기고 간 전염병에 감염돼 죽은 사람들까지 포함된 숫자다. 방어용도 아니고 정복전쟁은 백성을 위하고 밝은 사회를 꿈꾸는 왕이었다면 쉽사리 선택하지 못할 행위다. “계몽군주라는 이름의 그늘이고, 원래 군주는 그런 존재”라는 비판도 가능한 대목이다.

프리드리히와 경쟁했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 아들인 요제프 1세도 계몽군주 유형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그들의 치세에 인권이 제대로 보장됐다고 보지 않는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사위인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반동(反動) 정치를 계속하도록 조언했던 인물이다. 그 결과 딸이자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왕이 아닌 공화국 지도자를 자임하는, ‘타칭(他稱) 계몽군주’ 김정은은 미국, 한국과 여러 번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핵 무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계몽절대주의’라는 형용모순적 표현의 속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인 오토 웜비어는 계몽군주의 아버지 초상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북에 오랫동안 억류됐다가 병으로 숨졌다. 그런데 엄연히 헌법 상 민주공화국임을 자임하는 대한민국에서 ‘계몽군주’ 예찬’이 나왔다. 당사자는 국가란 무엇인지,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본질적 질문을 계속 제기해 왔던 인물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천영준 / 데이터평론가,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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