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택은 찔끔, 리스크는 왕창"... 금융 규제완화 '배보다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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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택은 찔끔, 리스크는 왕창"... 금융 규제완화 '배보다 배꼽'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8.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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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소수점 거래·금융업무 간소화
빅데이터·플랫폼 신산업 진출 장려
업계, 대규모 IT 투자비용 걱정에 울상
"한쪽선 발목 법안, 다른 한쪽선 작은규제 풀며 생색만"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금융당국이 샌드박스를 통해 일시 허용했던 혁신금융서비스 일부를 향후에도 운영 가능하도록 규제를 개선했다. 당국은 정비 필요성이 입증된 금융규제 27건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규제 완화 소식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숨을 크게 내쉬는 분위기다. 규제완화로 신사업 진출 가능성이 열렸지만, 투자대비 혜택은 크지 않고 얼마나 수익으로 연결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혁신금융서비스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국내 주식도 해외 주식처럼 소수단위(소수점) 매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향후 주식시장에 끼칠 영향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20일 개인 투자자가 해외 주식뿐 아니라 국내 주식에 대해서도 소수단위로 매매할 수 있도록 규제 정비에 나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시행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향후 ‘주식 수’가 아니라 ‘금액 단위’로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될 전망이다.

이번 규제 완화조치는 금융위가 지난해 4월 1일부터 금융산업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한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일환이다. 금융위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 샌드박스를 통해 정비 필요성이 입증된 경우 금융규제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 지정된 총 110건의 혁신금융서비스 가운데 특례가 부여된 금융규제는 총 62개다. 이중 8개의 규제에 대한 정비가 완료됐으며, 5개 규제에 대해서는 현재 정비가 진행 중이다. 14개 규제에 대해서는 정비 필요성이 인정돼 규제 정비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란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의 규제를 면제·유예시켜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에서 따온 용어다. 

정비가 완료된 규제는 △On-Off 간편 보험 출시를 위한 보험업 감독 규정상 반복설명 의무 면제 △비금융정보 기반 신용평가를 위한 신용정보법개정과 카드사의 신용조회업무 허용 △빅데이터와 마이데이터 도입을 위한 신용정보법 개정(4건) △맞춤형 주식 추천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등이다.

자료=금융위원회, 표=시장경제신문
자료=금융위원회, 표=시장경제신문

현재 정비 중인 규제는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 대출상품 비교 플랫폼 규율체계 마련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환전서비스 이용 가능 △무인환전기기를 통한 소액해외송금 허용 △해외 송금 편의증진을 위한 소액송금중개업 도입 △신탁업자의 업무제한 완화 등이다.

규제정비가 완료되면 온라인으로 환전을 신청하고 공항 인근 주차장이나 항공사 접수창구 등에서 외화를 수령할 수 있게될 전망이다. 우리은행의 '드라이브스루 환전'과 DGB대구은행의 '항공사 체크인 연동환전'이 이에 해당한다. 

금융당국은 신기술 개발과 재택근무 확산 등에 따른 망분리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기존 금융회사는 보안을 위해 통신회선을 업무용(내부망)과 인터넷용(외부망)으로 분리해야 했다. 향후 금융기술연구소와 같이 금융업무 수행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경우는 망분리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빅데이터·플랫폼 등 금융사 신산업 진출기회 확대 △온라인쇼핑 플랫폼을 통한 보험 쿠폰 서비스 △비대면 거래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인증·신원확인 체계 마련 △디지털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전자금융산업 개편 및 최소자본금 인하 △신용보증기금의 역할 강화를 통해 중소기업 자금조달 기회 확대 등이 향후 추진될 전망이다.

해당 소식에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표정은 교차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소수점거래, 마이데이터, 오픈뱅킹 등을 추진하기 위해 대규모 IT 투자비용이 발생하지만 (사측 입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이익을 창출할지는 미지수"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렇다고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고객이탈 우려가 있다. 사실상 '울며 겨자먹기'가 될 공산이 크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다른 증권가 관계자는 "그다지 신선한 내용은 없다. 소수점 거래는 투자사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기존에도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증권사는 규제로 인해 외화이체·송금을 하지 못한다. 근본적인 은행과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당국이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형 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대출비교는 편리하지만 단순히 금리수치만 보고 상품을 선택할 경우 '미끼 금리'에 의한 역선택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자본이 취약한 금융기관은 더욱 어려워지고 거대 금융자본으로 대출이 집중될 여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경기가 위축돼 이번 규제완화의 긍정적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보험업권 관계자는 "일단 규제 완화는 당연히 환영한다"고 반기면서도 "실제 적용과정에서 업계입장이 얼마나 반영될지, 실질적인 혜택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쪽에선 금융권의 발목을 잡는 법안들이 계속 만들어지는데 다른 쪽에선 작은 규제 풀어주고 생색낸다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한 IT 보안업체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 인증이나 로그인이 편해지겠지만 여러 금융기관이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데 따른 리스크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위원회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샌드박스 테스트를 통해 소비자편익과 안전성이 검증된 경우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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