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다루듯 '조서(調書)' 까지... 檢, 학자들 불러 '이재용 기소'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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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다루듯 '조서(調書)' 까지... 檢, 학자들 불러 '이재용 기소' 압박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8.2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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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 후 두달... 결론 '미적'
의견 듣겠다며 경영·회계 분야 전문가 불러 '압박'
조사 응한 교수 "피의자 취급... 군사독재 연상"
"'답정너' 검찰조사에 기록 남기려 調書 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및 수사중단’ 권고를 내린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검찰은 여전히 이 부회장에 대한 처분을 미루고 있다. 그 사이 검찰이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등에게 '이 부회장 기소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며 연락을 취하고, 요청에 응한 외부전문가들을 검사실로 불러 길게는 7~8시간이 넘는 면담을 실시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검찰은 '면담'을 위해 검사실을 방문한 일부 학자들을 상대로 '조서(調書)' 작성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피의자나 참고인이 아닌 증인·감정인·통역인·번역인도 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형사소송법 48조). 다만 검사가 ‘의견 자문’을 위해 초청한 외부전문가를 상대로 조서를 받는 것은 다분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공통된 반응이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비판적인 학자들에게 기존 의견을 바꿀 것을 사실상 압박하는 수단으로, ‘조서’를 악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사법연수원 32기)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법학 경영학 회계학 전공 학자 등 수십 명을 상대로 대면 혹은 비대면 면담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이른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 등에 대해, 검찰과 배치되는 의견을 낸 인물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자문을 구한다는 구실로 이들을 검사실로 부른 뒤, 본인들이 원하는 답변을 유도하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상당한 시간 동안 검사실에 머물도록 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태 KAIST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로부터 의견 자문 요청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이 교수는 “학자로서 경영학과 경제학 지식에 바탕을 둔 의견을 공개적으로 여러 번 피력했기 때문에 별도로 더 드릴 의견이 없다”며 출석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어 “수사심의위에서 상식적인 결론이 도출됐기에 검찰이 더 이상 기소독점권을 남용하며 기업과 기업인을 괴롭히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는 말로 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병태 교수는 “삼바 사태가 분식회계가 아니라는 글을 썼거나 발표했던 교수들을 검찰이 부르고 있는데 참고인도, 피의자도 아닌 요청”이라며 “들리는 바로는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왜 삼성을 위해 이런 의견을 냈느냐’는 식의 질문으로 하루 종일 잡아둔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검찰의 ‘수사 자문 요청’에 응해 중앙지검 경제범죄사수부를 찾은 A교수는 8시간 가량 검사실에 머무르면서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A교수는 온·오프라인 신문 칼럼과 정책토론회 등을 통해 “삼성바이오 이슈는 회계기준 변경과 이에 따른 해석의 문제일 뿐, 없는 매출을 가공하거나 고의로 영업익을 부풀린 분식회계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혀왔다. 그는 삼바 이슈를 분식회계라고 볼 수 없는 이유를 쟁점별로 설명하면서, 검찰의 삼바 수사가 안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A교수는 “검사가 몇 가지 문건을 보여주면서 삼성이 조직적, 계획적으로 시세조종과 분식회계를 행한 것이 사실 아니냐는 식으로 질문을 유도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반박을 하자 같은 검사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검사와의 질의응답이 밤까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A교수는 “마치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인상을 받았다”며 “검찰의 삼성 수사를 지지하는 입장에 선 다른 교수는 불과 한 시간 만에 방을 나갔지만 나는 8시간 가까이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경영학 교수는 “검찰이 왜 그런 무모한 조사를 벌였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이재용 부회장이나 삼성 쪽에 우호적이라고 판단한 인물을 데려다가 조사한 것은 마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시킬 만큼 비상식적”이라고 질타했다.  

검찰로부터 의견 자문 요청 메일을 받았다고 밝힌 B교수도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형식상으로는 자문을 구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중앙지검으로 나오라는 것으로 볼 때 조서를 작성하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출석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정당하고, 삼바 회계처리 변경을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보는 전문가 입장에서, 검찰의 이번 조사는 강압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있는데 검찰이 이를 부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우리나라 법정은 수사 중 진술한 내용도 증거로 채택하는 수사중심주의적 측면이 있어, 재판에서 전문가 진술 내용이 증거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수사팀은 올해 6월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한 뒤, 고민을 거듭해 왔다. 같은 달 8일 법원은 수사팀이 청구한 이 부회장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영장 기각 직후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기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법원이 적시한 기각 사유는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4년 이상 장기간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 왔음에도 이 부회장과 경영권 승계 작업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잉수사’ 구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사건 처리를 둘러싼 검찰의 고민은 깊다. 불기소 처분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가 잘못됐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검찰 수사가 법원의 영장심사는 물론이고 수심위의 벽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소유지를 보장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반면, 기소를 강행한다면 ‘시민의 사법 참여를 통한 검찰 개혁’을 화두로 출범한 수심위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모 대학 C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사심의위는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검찰 수사에 대해 권고하는 제도적 장치”라며 “검찰은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식인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한 목적이라면 예우를 갖춰야 하는데, 마치 피의자처럼 취급하고 조서를 작성했다”며 “수사심의위 권고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검찰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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