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證 정일문, 펀드사태 수습 헛발... "도덕성 상실·전문성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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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證 정일문, 펀드사태 수습 헛발... "도덕성 상실·전문성 한계"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8.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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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증권, 대형 펀드사고 연루 '5관왕'
팝펀딩 50대 이상 78%... 노후자금 '증발'
변호인단 "한투와 운용사 공모 가능성"
피해자들 "눈앞 이익만 쫓고 책임은 안져... 영업과 경영은 달라" 성토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한국투자증권 제공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사진=한국투자증권 제공

'팝펀딩' 환매중단을 전후해 한국투자증권 정일문 사장의 전문성·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투자자들은 한투의 원칙없는 피해보상안과 소통 부족을 질타하고 나섰다. 한투가 '조국 사모펀드' 이후 거의 모든 대형 펀드사고에 연루되면서 정일문 사장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의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분쟁조정신청은 1,254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478건)의 두배를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형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한투증권은 최근 사모펀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팝펀딩 외에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젠투파트너스 등 잘 알려진 대부분의 사모펀드 사건에 판매사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조국 사모펀드'에도 연루돼 구설수에 올랐다.

이로 인해 한투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다. 한투의 금년 1분기 분쟁조정신청건은 34건, 2분기는 91건으로 3배 늘었다. 금년 상반기 125건은 전년 같은 기간 40건의 3배가 넘는 수치다. 

'팝펀딩'은 홈쇼핑·오픈마켓에 납품하는 기업이 재고 상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동산 대출상품이다. '자비스' 자산운용, '헤이스팅' 자산운용 등 운용사들은 팝펀딩의 대출 채권을 바탕으로 사모펀드를 만들고 이를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했다. 

투자자들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자금을 적립해 운용하는 P2P(Peer to Peer)방식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7월 기준 총 1,668억원 가운데 1,059억원이 환매중단됐다. 

전문투자자가 아닌 개인투자자도 377명이 포함됐으며 이들의 피해금액만 554억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액 기준 연령별로는 60대가 24%, 70대이상이 19.5%였다. 50대 이상이 전체의 77.7%를 기록한 것을 감안할때 다수 피해자들이 노후자금으로 쓸 목돈을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국회, 그래프=시장경제신문
자료=민형배 민주당 의원실, 그래프=시장경제신문

지난 7월 15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팝펀딩 대표 A씨(47), 물류총괄이사 B씨(44), 차주업체 운용자 C씨(50) 등 3명을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나머지 임원 7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2018년 4월부터 작년 11월까지 홈쇼핑 납품업체 등 34개 차주업체를 내세워 허위 동산담보평가서를 작성해 6개 자산운용사와 개별투자자 156명에게 총 554억여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C씨는 팝펀딩의 허위 대출에 동원할 차주업체들을 제공해 143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편취한 혐의다.

검찰 측은 이들이 2018년 2월 경 145억원 상당의 부실이 발생한 상태에서 펀드 만기가 도래하자 신규 투자금으로 부실 대출금을 메우는 이른바 ‘돌려막기’식 상환을 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관리와 운용 역시 엉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21일 팝펀딩소셜대부 측이 공개한 2019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외부 회계감사인 회계법인 '길인' 측이 '감사 의견거절'을 표명했다. 길인 측은 "부채와 관련해 감사에 필요한 신뢰성 있는 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한투증권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6월 29일 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자제안서 등에 설명한 대출채권의 일부 차주 명단과 차주의 대출상환 이력이 허위 △홈쇼핑 방송과 계약하지 않은 업체들이 차주에 포함 △사전 안내와 달리 가입당시 제시한 수준의 담보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등의 의혹을 집중 제기한 상태다.

피해자 측 변호인단은 한국투자와 팝펀딩 운용사의 사전공모 내지 방조 가능성도 제기했다. 법무법인 한누리 측은 "부실대출과 담보물횡령으로 펀드가입 당시부터 설명된 수준의 담보가 확보되지 않았다"며 "펀드의 설계, 발행 및 운용에 관여한 한국투자, 자비스자산운용 등은 범죄행위를 공모했거나 알면서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정황으로 보아 팝펀딩 사태 역시 여타 논란이 된 사모펀드와 마찬가지로 애초부터 부실이 예정돼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판매사인 한투 측이 부실을 알았다면 사기, 몰랐다면 관리부실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팝펀딩 사태는 기초자산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않고 무리하게 판매에 나선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부실여부를 사전에 알았건 그렇지 않았건 판매사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짧게 논평했다.

한투 관계자는 투자자들에게 "작년 3월 팝펀딩 등과 같이 이 상품을 만들면서 4번에 걸쳐 혹독한 점검을 받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안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팝펀딩 환매중단 이후 한투증권의 사후 대처가 미숙하고 원칙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7일 한투 정일문 사장은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선보상안 발표했다. 옵티머스(287억원 판매)는 아무 조건없이 투자원금의 70%를 일괄지급하는데 반해 팝펀딩(분당 PB 150억원, 총 350억원판매)은 평균원금의 20~30%를 선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팝펀딩 관련 피해자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당시 한투 관계자는 "팝펀딩은 옵티머스와 달리 초고위험상품으로 충분히 인지·확인하고 판매한 상품"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번 보상은) 선의의 사적개념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피해자들 일부는 고위험 상품이라는 안내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6월 피해자 대책위원회 대표 백영수씨 역시 "한투측은 이전에 환매가 잘된 상품이며 국가에서 동산담보 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어 유망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피해자 가운데에는 90대 고령의 류모씨도 있었다. 그는 "PB가 손실이 나지 않는 상품이니 돈을 놀리지 말고 투자하라"고 수 차례 권유했으며 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전혀 고지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 외에도 다수 피해자들이 "(펀드에 문제가 생기면) 리어카에 창고 물건을 싣고 나가서 팔면되니 원금보장은 문제없다"는 설명을 듣고 투자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일문 사장의 대처는 한 발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연말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등이 발빠르게 소비자보호최고책임자(CCO)를 선임하며 사태 수습에 나선 것과 달리 한투 측은 올해 3월 24일에 이르러서야 임근식 상무보를 CCO로 선정했다. 

투자자들을 대하는 한투측의 미온적 자세와 달리 정일문 사장의 '대관' 업무 수완은 업계에서 공인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한투는 금융당국과의 마찰이 있을때마다 능수능란하게 수습해왔다. 

지난해 3월 한투는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고용보험기금의 전담운용기관(OCIO)으로 선정됐다. 이후 독일 국채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에 고용보험기금 584억원을 투자했다가 476억을 잃었다. 원금의 81.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음에도 '주의'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지난해 11월 26일엔 한투가 판매에 앞장선 팝펀딩 펀드의 파주 물류창고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직접 방문해 "동산금융의 혁신사례가 되길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특정 사모펀드를 금융당국이 응원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 입을 모은다. 

한투는 올해 1분기 국민연금 거래증권사에서 제외됐다가 2분기 복귀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봐주기식' 결론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한투의 1분기 탈락은 기관경고와 과태료 탓이었다. 지난해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이 단기금융업무를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지원한 거래가 자본시장법상 개인신용공여 금지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업계 안팎에선 정일문 사장의 뛰어난 대관 업무역량으로 이러한 사태수습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일 한 증권가 관계자는 "한투증권은 평소 정부와 금융당국의 심기를 잘 헤아리고 맞추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귀뜸했다. 그는 "(그러한 역량으로) 피해자들의 심기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투의 이번 사모펀드 사태 대처는 원칙이 없다"고 총평했다. 그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선지급액을 달리한 것이라는 한투 측의 해명에 관해서는 "옵티머스와 팝펀딩은 투자자들에게 전후사정을 사실과 다르게 안내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일축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정일문 사장의 영업력은 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한다. 그러나 펀드사고 수습까지 '영업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논평했다. 그는 "경영의 덕목과 영업의 덕목은 때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투 관계자는 이날 "팝펀딩 사태와 관련해 추가적인 소식은 없다. 사법당국의 조사가 진행중인 만큼 추후 상황을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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