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위 의결 한달 째... 檢, '이재용 불기소' 왜 머뭇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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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위 의결 한달 째... 檢, '이재용 불기소' 왜 머뭇거리나
  • 천재민 변호사
  • 승인 2020.08.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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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민 변호사 특별기고] 심의위 결정 존중해 '국민신뢰' 회복해야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잠시 광고 보고 가시죠.” 이 표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뜸들이기' 방법이다. 출연자와 시청자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노련한 사회자는 잠시 광고를 보고 가자며 모두의 긴장을 풀고, 이 틈에 방송사는 광고수익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잠시’라던 광고가 길어지면, 출연자와 시청자는 슬슬 짜증을 내기 마련이고, 혹자는 ‘그새 결과가 뒤바뀐 거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내걸고 2018년 1월 출범시킨 제도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제도 도입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내용을 보면, 왜 그 수사를 했느냐, 수사에 착수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에 대한 의심이 있는 경우가 있고, 과잉수사·수사지연·수사방법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이런 부분까지 외부적으로 점검받고, 수사 이후라도 점검받겠다는 각오로 수사하려고 한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총장이 150명 이상 250명 이내에서 위촉한,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의 전문가’ 위원으로 구성된다.

수심위는 당사자의 소집요청→지방검찰청 시민위원회의 부의(附議) 여부 결정 등의 절차를 거쳐 개최된다. 부의가 결정된 경우 수사심의위 위원장은 등재된 위원 중 무작위 추첨을 통해 10명 이상을 선정한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9조는 ‘주임검사는 현안위원회의 심의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부 수립 이래 70년 이상 광범위한 기소독점권과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온 검찰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심위는 성가신 제도일 수 있다. 내심 제도 도입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운영지침의 내용과 문무일 전 총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제도 도입의 변을 생각한다면 허울로 만든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수사심의위원회의 ‘1호 의결’은 기아자동차가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안건이다. 수사심의위원회는 불기소 의견을 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노조 간부들에 대한 기소유예를 결정했다.

검찰은 그 뒤로도 수사심의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해 의결 내용대로 사건을 처분했다. 올해 6월 이전까지 수사심의위 의결은 모두 8번 나왔고, 검찰이 불복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

2020년 6월 26일 수사심의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했다. 표결에 참여한 전문가 13명 가운데 법학교수는 3명, 변호사는 4명이었다. 관련 분야 전문가 비중이 과반수를 넘은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는 2016년 12월 출범한 박영수 특검 이래 3년 7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삼성 전현직 임직원 소환조사 약 430회, 압수수색 50여회라는 역대급 기록이 나왔다. 그럼에도 법원은 올해 6월 8일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여전히 ‘헌정 사상 유례없는 금융사기’, ‘사안의 중대성’만을 강조할 뿐 분식회계 혹은 시세조종이 실재했음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묵인했음을 입증하는 스모킹 건도 없다.

공연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처음의 기대와 흥분은 이미 사라졌고, 출연자는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관객은 관심을 잃었다. 검찰은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줬다. 수사심의위가 ‘수사중단·불기소’ 의결을 내린 지 한 달이 지났다. 긴 여정을 마치고 이제 판정단의 심사 발표만 남았다. 잠시만 보자며 틀었던 광고가 너무 오래가서는 안 된다.

지금껏 존중받았던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의견을 냈다면, 이를 존중하는 것이 순리이자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천재민 변호사는 
72년 부산 출생으로 사직고,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96년 38회 사법시험에 합격, 99년 28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97년 ‘천재민의 법률세상’이란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 직접 운영했다. 온라인에서 무료 법률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당시 천 변호사의 사이트 운영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모았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공익법무관, 법무법인 대륙을 거쳐 2002년부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 미국 로스쿨 순위 1위 Northwestern University School of Law에서 법학석사(LL.M.)를 받았다. 2010년부터 2년간 대한변협 이사를 지냈으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률문서 작성 실무’를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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