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금융허브 홍콩 대체?... 규제지옥, 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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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금융허브 홍콩 대체?... 규제지옥, 택도 없다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7.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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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CI 서울 33위... 핀테크 도시 순위 밖
해외 금융사들 "주 52시간 현실성 없어"
전문가들 "당국 규제 풀고 기업은 도전정신 되살려야"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시장경제신문DB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시장경제신문DB

홍콩이 최근 세계 금융·무역에서 누려온 특별지위를 박탈당했다. 자연스럽게 향후 어느 나라가 '포스트 홍콩'이 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도 금융허브 정책을 재점검하고 과감한 규제철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상무부는 6월 29일(현지시간)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선언했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특혜를 주는 미 상무부의 규정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이로서 홍콩은 당장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최대 25% 징벌적 관세 부담을 져야할 처지가 됐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데 대한 미국의 보복조치로 풀이된다. 홍콩보안법은 홍콩 내 반중시위 처벌 강화, 홍콩 독립 시도·외부세력 개입 차단을 골자로 한다. 이 법이 통과됨에 따라 홍콩에서 보안법에 저촉된 인사에게는 최고 종신형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 1992년 홍콩정책법을 제정하고, 관세·무역·비자 발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홍콩이 글로벌 금융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홍콩에 지역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지난해 기준 1,541개였고 이중 미국 기업이 278개사로 약 18%를 차지했다. 미국은 2018년 기준으로 홍콩과의 무역에서 310억1,000만달러(한화 약 37조1,5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은 향후 단계적으로 홍콩과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1월 3일 대선에서 ‘중국 길들이기’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세계 금융의 허브',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홍콩의 시대가 끝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7월 1일(현지시간) "홍콩에 본부를 둔 모든 기업들이 계속 홍콩에 본부를 둘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과 세계 금융자본이 대거 홍콩에서 빠져나가는 이른바 '헥시트'(홍콩+엑시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난해 6월 이후 홍콩인들의 대만 이민이 크게 늘고 있다. 2019년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 시민은 총 5,858명으로 2018년 4,148명 대비 41.1%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학생들의 대만 유학도 급격히 늘고 있다. 작년 2,077명이었던 대만 대학 학사과정 지원은 올해 3,427명으로 늘었다.

국내 금융권 역시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한국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대중무역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글로벌연구센터는 '미중 무역협상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이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제조업 분야에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것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6.8%로, 일본(19.5%), 독일(7.1%), 프랑스(4.2%)보다 높았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한국 원화는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 여겨진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홍콩 수출액은 319억1,3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홍콩은 중국과 미국, 베트남에 이은 한국의 4대 무역 수출국이며 최대 흑자국이다. 국내 기업들은 무관세 혜택과 낮은 법인세 외에도 중국과 직접 거래하는데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홍콩을 대중무역의 기점으로 선호해왔다.  

한편 2018년 기준 홍콩에서 수입한 한국 제품 중 82.6%가 중국으로 재수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에서 누렸던 관세·물류 혜택이 사라진다면 이제 한국 기업들은 수출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홍콩으로 수출액 중 69.8%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그룹가운데 SK가 44개로 홍콩에 가장 많은 해외법인을 둔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롯데 18개, CJ 17개, 삼성이 13개, 네이버 7개, 효성 6개 순이다. 한진과 두산은 각각 3개의 홍콩법인을 두고 있다.

그래프=시장경제신문
그래프=시장경제신문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당국의 혁신적 규제 완화 없이 '동북아 허브'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한국에 진출한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했다가 부정적 답변을 받고 '동북아 허브' 계획 자체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융사들은 "한국의 주52시간 규정을 지키며 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외국계 금융사들에게 한국은 그다지 매력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는 2016년 168개에서 올해 3월 162개로 줄었다. 남은 외국계 자산운용사들도 인력 감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높은 법인세도 금융 허브로 가는데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최고세율(25%)은 일본(30.62%)보다는 낮지만 싱가포르(17%), 홍콩(16.5%)보다 높다. 6월 27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역시 “한국 정부가 수도권 인구유입 억제를 위해 투자하려는 외국인에게 세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점이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영국의 컨설팅 기관 '지옌'이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시는 33위를 차지했다. 서울은 2015년(6위), 2016년(14위)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이번 GFCI의 주요 핀테크 도시 순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핀테크 도시 1위는 미국 뉴욕이었고,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가 2, 3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싱가포르(5위), 도쿄(10위) 등이 순위에 올랐다.

사진=GFCI 2020
사진=GFCI 2020

한국 정부가 중국의 심기를 걱정해 글로벌 금융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와 서울시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홍콩관련 외교에 공격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홍콩 사태와 미·중 무역갈등이 적든 크든 한국 경제에 악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5일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1세대 기업인들이 1973년 오일 쇼크와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에서도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도 규제 일변도의 관행을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학계 관계자는 "국제정치경제의 측면에서 볼때, 한미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9월로 예정된 G7회담을 미·중 갈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외교적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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