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수사심의위원 자격 시비... '反기업' 4명도 문제삼을건가
상태바
난데없는 수사심의위원 자격 시비... '反기업' 4명도 문제삼을건가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7.02 1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 옹호’ 교수가 이재용 불기소 주도? 팩트체크
여권-일부 親검찰 매체, "비전문가가 불공정 심의"
'전문가' 절반 넘어... 변호사·법학교수 각 4명 구성
과거 '이재용 유죄' 의견 낸 김재봉 교수가 위원장
법조-문화계 ‘反삼성 성향 인사’도 최소 4명 참여
회의 참석 변호사 "법조인 8명이 논의 주도... 檢, 답변 어려워해"
"검사-변호인단 답변 끝난후 (이재용 불기소로) 분위기 확 기울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직후부터, 범여권 정치인과 일부 親검찰 매체를 중심으로 ‘의결에 불복해 기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검찰의 삼성 수사에 비판적 견해를 지닌 특정 교수가 논의를 주도했다”며 위원들의 비전문성과 불공정한 심의절차를 불복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경제> 취재 결과 당시 논의는 특정 개인이 아닌 8명의 현역 법조인이 주도했으며, 이들 가운데는 대한변협 부회장, 한국공법(公法)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위원회에는 최소 4명 이상의 反삼성 성향 인사도 참여했습니다. 직역별로 보면 법조인(변호사·법학교수)그룹과 문화예술계(종교·언론 포함) 각 2명입니다. 이들은 검찰의 삼성 수사를 지지하거나 기자회견 참여, 시국선언 서명 등의 방법으로 삼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위원장 임시대행으로 당일 회의를 진행한 김재봉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삼성 관련 현안에 비판적 입장을 밝힌 이력이 있습니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김 교수는 2005년 10월 4일, 법원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판결을 평가해 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CB 저가 발행은 법리적으로 볼 때 이재용씨 등에 대한 증여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 유죄로 인정 될 소지가 컸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는 "비상장 주식 가치를 산정할 만한 법적 기준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교적 합리적인 형량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삼성에 우호적인 특정 교수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 수심위 의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범여권 의원 및 일부 매체의 주장과 크게 다릅니다.  

일부 매체가 실명으로 ‘삼성 옹호 교수’라고 이름 붙인 당사자는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병연 교수입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자본시장법 제정에 적극참여한 중견학자 중 한 명입니다. 일부 매체가 김 교수의 실명을 밝히고, 마치 그의 ‘잘못’으로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의결이 나온 것처럼 보도를 하자 학계에서는 우려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보도와 논평이,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인격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병연 교수는 본지를 비롯한 다수의 경제 매체를 통해 경제법 학자로서 지론을 밝혀 왔습니다. 그 의견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는 학회에서의 토론을 통해 검증을 하면 될 일입니다. 그가 수심위 회의를 주도했는지 여부, 수심위 회의가 그의 의견에 따라 결정됐는지 여부 역시 팩트파인딩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일부 매체가 지적하는 ‘회피’ 관련 논란도 당부를 따져봐야 합니다. 대검 수사심의위 의결의 정당성 검증을 위해서라도 이들 사안에 대한 팩트파인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26일 YTN이 대검 수사심의위원회 의결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화면 캡처.
26일 YTN이 대검 수사심의위원회 의결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화면 캡처.

◆수심위의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결을 특정인이 주도했다?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26일 수심위 회의에는 8명 이상의 법률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직역별로는 변호사 자격증 보유자 4명, 법학전공 교수는 4명으로 파악됩니다.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 등 3명의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게 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각각 적용했습니다. 외부감사법 위반 부분은 공인회계사들과의 공범 관계 규명이란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므로, 핵심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수단으로 지목한 행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제일모직-삼성물산 시세조종입니다. 이 두 가지 행위는 모두 자본시장법이 규율하는 범죄 태양입니다.

수사심의위에 참여한 변호사 가운데 A는 20년 넘게 ‘기업형사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룬 특화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B변호사는 지역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협 부회장을 역임한 원로급 변호사로 법조경력이 30년 가까이 됩니다. 법학교수들 역시 공법(헌법·행정법)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중견학자들입니다. 현직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은 자본시장법 전공 여부와 관계없이 적어도 이 사건 수사심의회에 참여하는데 손색이 없는 전문가그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병연 교수를 제외하면 전문가그룹에 해당하는 법조인은 7명입니다. 위원회를 주도한 당사자는 김 교수 개인이 아니라 이들 전문가그룹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본지는 수소문 끝에 수심위에 참석했던 C변호사와 연락이 닿아 당시 분위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검찰과 변호인단을 상대로 한 질의는 김 교수를 제외한 다른 변호사와 법학 교수들이 더 적극적이었다”고 귀띔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위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법학) 교수들과 변호사들은 쟁점 정리를 아주 잘해 온 것으로 보였다”고 부연했습니다. C변호사는 “오전 의견서를 읽고 난 뒤 이어진 질의 시간에서 질문 수준이 매우 높아 놀랐다. 검사들이 답변을 하는 데 어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검사와 변호인단 질의응답이 끝나면서 분위기가 (이재용 불기소로) 확 기울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 7명의 업력을 볼 때, 이들이 특정 교수의 주의·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해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결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취지의 주장은 궤변에 가깝습니다. 

◆교수 한 사람이 위원회 좌우했다? 검찰은 무엇을 했나?

위 주장은 그 자체로 심각한 허점을 안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김 교수가 변호사·법학교수 그룹을 비롯해 수심위 위원들을 완벽하게 설득했다면, 그 시간 동안 검찰은 김 교수의 ‘활약’을 지켜만 봤다는 말이 됩니다.

수사심의위 의결 결과는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의결의 효력은 권고에 불과하지만 법적인 강제력 그 이상의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제도의 도입 취지가 검찰 내부 개혁과 수사 및 기소 오·남용 방지에 있다는 점, 정의와 공정을 강조한 현 정권 초대 검찰총장이 직접 도입한 제도라는 점, 지금까지 8차례의 수심위 의결을 검찰이 모두 따랐다는 점 등이 위원회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수심위를 넘어서야 진행 중인 수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검찰이 이복현(48·사법연수원 32기) 부장검사, 김영철(47·33기)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최재훈(45·35기) 중앙지검 부부장 검사 등 각 기수를 대표하는 특수통 검사들을 위원회에 직접 출석시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부 매체의 주장처럼 특정 인물 한 사람이 수심위 의결을 좌우할 수 있었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검찰 수사팀의 무능을 반증할 뿐입니다.

본지는 전현직 검찰 관계자와 법조계 인사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26일 수심위 의결 표차가 10대3 혹은 11대2로 나왔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위원회에는 4명 이상의 반삼성 인사가 참여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검찰 수사팀이 한계를 노출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압도적 표차입니다.   

수심위 위원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이유는 삼성에 우호적인 교수가 논의를 주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검찰이 전문가그룹으로 구성된 수심위 위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삼성 수사에 비판적 견해 자주 냈으면 ‘회피’해야 하는가?

일부 매체는 김 교수가 삼성바이오 이슈와 관련, “분식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자주 밝혀왔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삼성에 우호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회피’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은 근거가 없거나 부실합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은 위원의 ‘회피·기피’에 관한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위원은 다음의 경우 ‘회피’를 해야 합니다.

△위원이 사건관계인(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고소·고발인, 참고인, 증인)인 경우 
△위원이 이 사건 대상이 된 수사에 관여한 공무원 혹은 감정인인 경우 
△이 사건관계인과 민법상 친족, 법정대리인, 대리인, 변호인, 보조인이나 이런 관계에 있었던 경우 
△기타 심의대상 사건의 관계인과 친분관계나 이해관계가 있어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1조 1항 1~3호.

규정을 보면 김 교수는 위 사유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 사건관계인들과 일체의 친분관계나 이해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습니다. 경제법을 전공한 학자로서 재계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사실을 놓고,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라고 본다면, 헌법이 금지하는 유추·확장해석에 해당한다 할 것 입니다. ‘검찰의 삼성 수사에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으니 회피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자본시장법 전공 교수 중 한 명인 D는 ‘회피’ 논란에 대해 “학자가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회피를 해야 한다면, 이는 새로운 유형의 사상검증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언론 보도를 보면 회계, 문화예술, 언론, 종교 등 다양한 직역에서 전문가들이 위원회에 들어간 것으로 돼 있다”며 “특정 교수 한 명에게 재벌 옹호 프레임을 덮어씌워 위원회 의결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주장은 다른 위원들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D교수는 “위원들을 직역별로 선정했고 그 안에는 검찰의 삼성 수사에 찬성하는 분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이들도 회피를 했어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검찰은 왜 기피신청을 하지 않았나

심의의 공정을 해칠 우려가 있는 인사가 위원으로 선정된 경우 검사는 해당 인사에 대한 ‘기피’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위 운영지침은 이 점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사가 기피를 신청하면 수심위 위원장은 이를 위원회에 회부합니다. 위원장은 문제 인사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 과반수 표결로 기피신청 허가 여부를 결정합니다.

제11조(현안위원의 회피·기피) 
② 심의대상 사건의 주임검사와 신청인은 제1항의 사유가 있는 현안위원에 대하여 위원장에게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③ 위원장은 제1항 또는 제2항의 신청이 있는 경우 이를 현안위원회에 회부하고, 해당 현안위원을 제외한 현안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허가여부를 의결한다.

26일 검찰은 13명의 수심위원 누구에게도 기피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D교수는 “검찰이 기피를 하지 않고서, 이제와서 결과가 나쁘게 나오니까 이를 뒤집으려는 듯 보인다”고 촌평했습니다.

수심위 의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D교수는 “이 부회장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한 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을 언급하는 견해가 있는데, 앞선 8개 사건을 검토한 검찰 수심위의 전문성은 왜 문제를 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전문성 부족을 내세울거면 애당초 수사심의위를 운영하면 안된다. 검찰이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