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선위, 삼바의결 문서에 뭐 있길래 '법원 제출명령'도 거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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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 삼바의결 문서에 뭐 있길래 '법원 제출명령'도 거부하나"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6.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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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vs 증선위 5차 변론 심층 분석
삼바 측, 서면제출 거부 증선위에 강한 유감
증선위 보관 문서, 이재용 檢수사에도 영향
재판부 "문서제출명령 강제할 방안 사실상 없어"...우회적 제출 당부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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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문서제출 지연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빠른 재판 진행을 위해서라도 분식회계 의결의 근거가 된 증선위 보관 외부감사 자료의 조속한 제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바이오는 증선위 분식회계 의결의 오류를 규명하기 위한 준비서면을 다음 기일 전까지 작성해 법정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청구 소송 5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 시작과 함께 삼바 측은 재판부로부터 문서제출명령을 받고도 보관 중인 서면의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증선위를 상대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변호인단은 “피고(증선위) 측에서 부당한 주장을 하며 (재판부가 명령한 문서의) 제출을 지연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삼바 측 유감 표명에 재판부는 “문서제출명령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 없다”며 증선위 측의 협조를 우회적으로 당부했다.

앞서 삼바 변호인단은 “피고(증선위) 분식회계 의결의 당부 판단을 위해서는 외부감사법인의 감사자료 확인이 필요하다”며 재판부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증선위는 2018년 11월 14일 “삼바 측이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을 했다”고 의결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 측이 콜옵션 부채를 숨기는 방식으로 재무제표를 조작했다”며 대표이사 및 담당임원 해임 권고, 과태료 80억원 부과, 감사인 지정 3년, 재무제표 재작성 등의 제재를 의결했다. 같은 달 20일 금융위원회는 증선위 의결을 원안 그대로 수용하고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바이오는 금융위의 고발 직후 서울행정법원에 증선위 의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과 의결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삼바는 이 사건 본안 시작과 함께 증선위가 보관중인 회계법인 작성 감사자료의 법정 제출을 요구했으나 증선위는 “관련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며 임의 제출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삼바 측이 낸 문세제출명령을 인용했다. 원고(삼성바이오) 주장대로 증선위 분식회계 의결의 당부를 살피기 위해서는 삼바 재무제표를 감사한 회계법인 작성 문서들에 대한 검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증선위는 재판부 문서제출명령에 불복해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항고·재항고신청을 내는 등 보관 중인 서면 제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삼바 외부감사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자문을 맡은 삼정, 안진회계법인은 지난달 13일 이 사건 4차 변론기일 직전 삼바 측이 요구한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삼바 4차례 문서제출명령신청... 재판부 모두 인용

삼바 변호인단은 지금까지 모두 4건의 문서제출명령을 재판부에 냈고 모두 인용됐다. 명령을 받은 기관은 금융위원회, 증선위, 금융감독원, 삼정회계법인, 안진회계법인 등 5곳이다.

심리 중인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문서를 당사자 혹은 제3자가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소송실무상 이때 자주 이용되는 것이 문서제출명령신청 제도이다. 재판부는 신청 상대방의 의견을 들은 뒤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재판부의 제출명령을 받은 상대방은 상급법원에 즉시항고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안진회계법인을 제외한 4곳은 서울고법에 즉시항고를 냈다.

증선위와 금융위원회가 낸 즉시항고는 지난달 7일 기각됐다. 증선위 등은 같은 달 28일 대법원에 재항고장을 접수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 특별1부에 배당됐으며, 재판부는 이달 2일 법리검토를 시작했다. 증선위는 이 사건 변론을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맡겼다. 증선위와 금융위가 낸 재항고 사건 대법원 최종 판단은 내달 중에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불복(항고)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질 확률은 매우 낮다. 상급법원이 항고를 기각한 사안을 대법원이 파기한 사례는 더욱 드물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선위 등이 낸 재항고 사건은 ‘기각’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항고 사건이 확정되면 증선위와 금융위는 삼바 측이 요구한 문서를 이 사건 1심 재판부에 제출해야 한다.

삼성바이오 변호인단이 제출을 요구한 문건에는 ▲이들 기관이 검찰로 넘긴 삼성바이오 및 삼성바이오에피스 외부감사 자료 ▲삼바 및 에피스 감사과정서 작성된 내부 보고서 기타 회의 자료 ▲금감원이 입수했다는 이른바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 원본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위탁 감리 자료 ▲금융감독원의 1차 및 2차 감리 자료 ▲증선위와 금융위원회 회의록 기타 내부 판단 자료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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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 제출 거부 문건, ‘분식회계 없음’ 입증할 스모킹건 될 수도

삼바 측이 요구한 문서는 이 사건 핵심 쟁점인 2012~2015년 재무제표 작성의 적정성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외부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들이 내부보고용으로 만든 의견서, 이들이 회사로부터 제출받거나 참고한 자료 등을 들여다보면 삼바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 위법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선위와 금융위 보관 문서는 삼성바이오에게 분식회계 의결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스모킹건’이 될 수도 있다. 문서제출명령신청은 당해 문서의 공개가 재판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당사자가 한다. 당해 문서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을 알면서 그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삼바 변호인단이 제출을 요구하고, 그 상대방들이 문서 제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문을 자아낸다. 분식회계 의결이 합리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도출됐다면 관련 문서의 제출에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다.

◆증선위 문건, 이재용 부회장 검찰 수사에도 영향 줄 가능성 높아

증선위 등이 제출을 거부하는 문서는 이 사건 증선위 의결 취소 청구는 물론이고 서울중앙지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수사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들 문서에 대한 검증 결과 삼바 재무제표 작성에 위법이 없었음이 드러난다면 검찰의 이 부회장 수사는 신뢰를 상실한다. 검찰의 ‘삼성 경영권 위법 승계 의혹’ 수사는 ‘삼성바이오에서 대규모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심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삼성 측이 주가를 조작했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검찰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 주가는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시세조종 작업이 진행됐으며, 그 수단 중 하나가 삼바 분식회계이다. 즉 삼바 분식회계는 ‘삼성 경영권 위법 승계 의혹’의 출발점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검찰이 전담수사팀까지 만들면서 삼바 분식회계 입증을 위해 공을 들인 이유를 알 수 있다.

검찰이 그린 밑그림은 치명적인 허점을 안고 있다. ‘삼성 경영권 위법 승계 의혹’의 첫 시작이 삼바 분식회계인만큼, ‘분식이 없었다’는 점이 입증되면 수사의 기초가 무너진다. 기본 전제가 잘못됐다는 점이 드러나면 이 부회장과 삼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검찰 삼성 수사팀, 수사심의위 이틀 앞두고 삼바 직원 소환... ‘절박함’ 드러내

이 부회장 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이복현 부장검사)가 24일 삼성바이오 직원들을 소환 조사한 배경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26일 오전 청사 회의실에서 비공개로 현안위원회를 개최한다. 이날 위원회 소집 목적은 이 부회장 및 삼성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적정성, 타당성 논의에 있다. 법조계,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활동가 등 시민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 타당성도 검토할 예정이다.

대검 수사심의위는 검찰 수사팀이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이다. 어떤 식으로든 삼성 수사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심의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대검 수사심의위 개최를 이틀 앞두고 벌인 삼바 직원 소환 조사는 검찰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삼성바이오 "2012~2014년 회계처리 적법... 입증 서면 제출할 것"

이 사건 핵심은 삼성바이오의 2012~2014년 회계처리 변경이 ‘분식회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삼성바이오측은 회계처리 변경이 적법했으며, 분식회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단독지배기업(종속기업, 자회사)으로 판단하고, 연결회계를 적용했다. 회사 측은 이 판단을 2014년까지 유지하다가 2015년 변경했다. 그해 9월과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종의 판매를 허가했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는 공동투자자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2015 회계년도 재무제표에서 삼바는 에피스를 단독지배기업이 아닌 '공동지배기업'(삼바-바이오젠 공동지배)으로 보고,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지분법 회계를 적용하면서 에피스의 지위는 종속기업에서 관계사로 바뀌었다. 

2018년 11월 증선위는 금감원 2차 감리 결과를 반영해 삼성바이오가 4조5000억원대 분식을 범한 것으로 판단하고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재무제표 재작성, 과징금 80억원 부과 등을 의결했다. 삼성바이오가 2012~2014년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을 의도적으로 공시하지 않는 방법으로, 삼바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 증선위 판단의 요지다. 

이 사안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은 3년 사이 세 차례나 번복됐다. 2016년 금감원의 위탁을 받아 삼바 감리에 나선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적법’ 판단을 내렸다. 2017년 5월 참여연대 등의 요구에 따라 재감리(1차 검리)를 시작한 금감원은 2018년 7월 ‘2015년 재무제표만 위법’으로 말을 바꿨다. 금감원은 같은 해 11월14일 2차 감리 결과를 발표하면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모두 위법’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날 재판에서 삼성바이오 변호인단은 “이 사건은 2012~2014년 삼성바이오의 연결회계 처리가 타당했는지가 핵심이며, 다른 것은 부수적 쟁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안은 회계기준에 입각한 기술적 주장 많다”며 “이에 대한 준비서면을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증선위측은 증거 제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증선위측 변호인에게 “지난 기일에 증거를 정리해 추가 제출해 달라고 했는데, 법령이 아닌 감리 시행규칙을 제출했다”며 “실무지침 등 나머지 자료도 추가로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 다음 변론기일은 8월 26일 오전 11시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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