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수사심의위의 시간... 檢, 계속 흘리면 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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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사심의위의 시간... 檢, 계속 흘리면 지는거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6.1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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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용 수사부실 드러낸 檢, '정보흘리기(leak)'로 만회될까
여론 아닌 '법리·사실관계'가 기준... 기소여부 판단, 공정 잣대 기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및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의 배후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키려던 검찰이 고배를 마셨다. 9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사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이유를 한 마디로 줄이자면 “혐의 소명이 부족했다”는 한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다. 검찰은 삼바 분식 및 삼성 합병 관련 수사 기록만 20만 페이지에 달한다며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했으나 오히려 이 점이 패착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막대한 수사기록을 확보했다는 것은 증거인멸의 필요성이 없다는 반증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주된 구속사유로 '증거인멸'을 앞세웠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사건 검찰 수사의 미진함 내지 부실함을 강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법원이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피고인들의 책임과 정도는 법정에서 충분한 공판과 심리를 통해 가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부회장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에 초점을 맞춘 검찰 수사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강도높게 이어졌다. 박영수 특검이 출범한 2016년 12월부터 3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50회가 넘는 압수수색, 전·현직 임직원 110명에 대한 430여회의 소환조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검찰은 혐의점을 찾지 못한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 부회장 경영권 부당 승계의 핵심이라던 삼성 분식회계 의혹의 경우, 기소도 힘겨워 보인다는 것이 검찰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삼바 증거인멸 공판도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의 법리 적용에 의문을 나타내면서 원심 파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혐의점 못 찾은 검찰, 수사정보 '흘리기(리크, leak)'로 여론반전 시도  

수사가 공전하면서 검찰 수사팀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을 드러냈다. 단적인 예가 검찰발(發) ‘리크(leak)기사’이다. '리크'는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행위를 말한다. 전형적인 피의사실공표의 하나로 그 자체가 범죄에 해당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되면서 출현빈도가 갈수록 늘고 있다.  

수사기관의 정보 흘리기와 여기에 터잡은 리크기사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유죄의 예단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 재판도 열리기 전 특정인을 인격살인하는 악습이며,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인 공판중심주의를 무력화하는 고약한 적폐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이 부회장 등 3인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일부 특정 매체는 '이 부회장 혐의가 드러났으며. 삼성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취지의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이들 매체는 박영수 특검의 삼성 수사 상황을 우호적으로 보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검찰이 흘려준 정보를 팩트 검증 없이 보도해 오보 논란을 빚었다.  

이 부회장 구속 직후부터 다시 고개를 든 이들 '리크기사'를 보면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다. 대부분 검찰 수사팀이 수년째 주장한 내용을 ‘재탕’하는데 그쳤다. 한 매체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성사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다른 매체는 삼성물산이 카타르에서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하고도 주가를 떨어트리기 위해 그 사실을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매체는 관련 보도를 통해 삼바 분식이나 시세조종 등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한 정황도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검찰발 리크기사 대부분 내용 부실... 흘려준 수사 정보 받아쓴 뒤 '단독' 붙여 

이들 매체는 대부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관련 보도 앞에 '단독'을 붙였으나 내용은 부실하다. 리크기사들이 주요 근거로 내세운 '프로젝트G'의 경우,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의 대응 전략을 담고 있을 뿐, 이 부회장이 시세조종이나 분식회계를 지시 혹은 묵인했다고 볼만한 내용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 

'프로젝트G'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문건으로, 이복현 수사팀이 새로 발견한 서면이 아니다. 이 부회장이 삼성 합병이나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주요 내용을 보고 받고 이를 묵인 내지 지시했음을 입증할만한 구체적 증거가 나왔다면, 검찰이 지금까지 영장 청구를 미뤘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건을 심리한 어떤 재판부도 시세조종 의혹이나 삼바 분식회계 의혹 관련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1, 2심 재판부와 같은 사건 상고심 전원합의체는 '삼성 합병' 및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 관한한 검찰의 의혹을 모두 배척했다. 

수사팀의 ‘리크’에 홀린 일부 매체는 검찰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원이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후에도 리크에 기대 무책임한 음모론을 기사화하는 행태는 안타깝다.  

◆이재용 기소 타당성 여부 살피는 수사심의위... 여론 아닌 법리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법원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할 만하다. 혐의에 대한 소명은 법정에서 하면 된다. 여론이 아닌 증거로 사법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검찰의 역할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관계 악화, 코로나19 대확산으로 각종 경제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혐의도 뚜렷하지 않은 기업인에 대한 수사는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최순실 사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2년 4개월여 동안 분주하게 경영 현장을 누볐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 반도체·소재 기업들이 고사(枯死) 위기를 맞았을 때, 그 숨통을 틔운 사람도 이 부회장이다. 

'1년이 뒤처지면 10년 격차가 벌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재계에서 '시간'은 사업의 성패,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 변수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 갇혀있던 1년여 동안 M&A(인수합병)과 대규모 R&D 투자는 모두 얼어붙었다. 

이 부회장은 석방 45일만에 해외 출장길에 올렀다. 유럽과 캐나다, 일본 등으로 부지런히 해외출장을 다니며 글로벌 비즈니스에 주력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베트남을 방문했고, 지난해 추석에는 연휴도 반납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삼성물산 건설현장을 찾아 구슬땀을 흘리는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등 삼성의 경영 전반을 추슬렀다.

준법 경영에 있어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진보 법조계의 맏형'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발족하고, 최고 경영진들의 비리는 물론, 내부거래와 노조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성역없는 감시체제를 구축했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달 6일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행보에 국민 여론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타당성 여부를 심의할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날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가 부의위원회를 열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의결한지 하루만이다. 수사심의위는 이달 안에 열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수사심의위의 판단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 권위'는 무시할 수 없다. 수사심의위는 2018년 1월 제도 시행 후 8차례 개최됐다. 검찰이 위원회 '권고'를 거부한 경우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다. 

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검찰발 리크기사는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수사 부실을 '언론플레이'로 만회하려는 검찰이 스스로 구악(舊惡)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이런 현상은 언제든 반복될 것이다. 

수사심의위원들이 살펴야 할 우선 대상은 '이 부회장 수사의 적절성 혹은 타당성'이 될 것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도 위원들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위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여론이 아니라 '법리'와 '사실관계'이다. 오직 공정하고 엄격한 법의 잣대만이 죄의 유무와 경중을 판가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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