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이재용 구속영장' 청구, 공판주의 무시한 檢의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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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이재용 구속영장' 청구, 공판주의 무시한 檢의 오기"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6.0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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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 구속사유, 주거부정·도주우려·증거인멸
50회 압색, 430회 소환... '증거인멸' 해당 안 돼
檢 적용 혐의 '다툼의 여지 상당'... 불구속 사유
법조계 "조서와 자백, 구속에 기대 수사하는 행태 전근대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 관련해 ‘무리한 수사’라는 법조계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이 부회장에게 적용할만한 구속사유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앞서 4일 검찰은 법원에 이 부회장과 최지성 삼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팀장(사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적용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8일 오전 10시 30분 열릴 예정이다. 심리는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는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발부는 법조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뇌물 등 혐의 공판 파기심이 진행 중이고, 변호인단이 검찰 수사의 당부를 살펴달라며 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사실을 고려할 때 '검찰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조금씩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무엇보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영장 발부 사유가 존재하는지를 놓고,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  

법률이 정한 구속사유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주거 부정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등 3가지가 전부이다. 실무상으로는 사안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도 영장 심사 결과를 가르는 중대 변수이다.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 부회장의 경우 법이 정한 구속사유 가운데는 해당사항이 없다. 대한민국 재계 1위 기업집단 총수에게 주거부정이나 도주우려를 적용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검찰이 무려 50여 차례에 걸쳐 삼성 각 계열사와 관련 기관 등을 압수수색하고, 삼성 전현직 임직원 110여명을 상대로 430회가 넘는 소환조사를 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증거인멸'도 구속사유로 보기 어렵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 자체가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이란 점에서 재범위험성도 적당치 않다. 혐의의 당부를 떠나 경영권 승계라는 이슈 자체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 및 중요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 역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될 구속사유는 아니다. 결국 남는 건 '사안의 중대성' 뿐이다.

그러나 이 사유는 구속영장을 불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앞서 설명한 법률상 구속사유 3가지 중 최소한 하나가 '소명'된 뒤에야 논할 수 있는 보조적 사유이다. 법률상 구속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안의 중대성만으로 영장을 발부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주된 혐의에 있어 '다툼의 여지가 상당한 경우', 법원은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다.  

앞서 지난해 검찰은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를 상대로 두 차례나 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증거인멸과 사안의 중대성을 구속사유로 꼽았으나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법원이 제시한 기각 사유는 이렇다. 

"주요 범죄의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가 수집돼 있다.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사진=시장경제신문DB

◆'증거' 아닌 '조서'에 의존하는 檢... '공판중심주의' 원칙과 충돌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인 ‘공판중심주의’에 반한다는 견해도 있다. 

'조서 중심주의'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를 중심으로 유무죄를 가린다. 수사 과정에서 고문, 인권침해 등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조서 중심주의'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유죄의 가장 강력한 증거로, 피의자나 참고인을 소환조사해 작성한 '조서'를 애용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금지된 밤샘조사, 피의자 포토라인 촬영 허용, 반복적인 소환조사와 압수수색 등 구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조서 중심주의'와 관계가 깊다. '조서'를 중시하는 검찰 입장에서 본다면,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는데 있어 이들 방식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검찰이 이 부회장 혐의 입증과 관련돼 손에 쥐고 있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사건 관계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받아낸 '신문 조서'이다. 

'피의자 신문조서'와 '자백'에 기댄 검찰의 수사방식은 다분히 전근대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 법원은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조서 중심주의'를 폐기하고, 2003년 ‘공판중심주의’를 전격 도입했다. ‘공판중심주의’는 피의자를 범죄자로 단정하지 않고, 법정에서 나온 모든 증거를 살펴 유·무죄를 판단하는 원칙이다. 

검사장 출신 A 변호사는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볼 때 혐의 소명이 어려울 것 같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 발부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검찰의 영장 청구를 이렇게 촌평했다.

“무엇 때문에 특정 기업과 특정 기업인에 그리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 ‘거악척결’을 앞세운 오기로 비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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