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환경보일러 설치' 中企의견 듣는 척... 환경부의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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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환경보일러 설치' 中企의견 듣는 척... 환경부의 뒤통수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0.03.2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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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개선 의견 수렴 중... '미확정 사안' 안내공문 발송 논란
서울시 공문... '배수구 간격' 언급 없어 1등급 사실상 강제
설치 장소 배수구 있어도 간격 3m 넘으면 1등급설치 어려워
환경부 "서울시가 안내 잘못"... 서울시 "환경부 방침 따른 것"
정부 정책 맞춰 2등급 보일러 개발한 中企만 손해... '역차별' 논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하계1차 청구아파트를 방문, 친환경 보일러 설치 현장을 둘러보고 미세먼지 저감에 동참한 주민, 지자체, 업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사진=환경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하계1차 청구아파트를 방문, 친환경 보일러 설치 현장을 둘러보고 미세먼지 저감에 동참한 주민, 지자체, 업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사진=환경부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한 친환경 저녹스 보일러 공급이 중앙정부와 업계 간 불협화음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환경부는 보일러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이달 27일까지 제도 개선 관련 의견을 수렴키로 했으나 서울시가 일선 보일러 설치 업소를 대상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안내해 혼란이 커지고 있다.

환경부 측은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서울시가 잘못 통지했다”며 혼란의 책임을 서울시에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확정된 내용은 아니지만, 조만간 법이 바뀌니까 혼선 없이 준비하라고 안내한 것”이라며 “(환경부가) 알려주지 않은 걸 무단으로 배포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업계 의견 수렴 기간 중 미확정 사안을 지방자치단체가 공문을 통해 안내했다는 사실은 책임소재를 가려야 할 사안이다. 환경부가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라는 사실을 서울시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책임 공방은 그만큼 가열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환경부의 이중적 행태를 꼬집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체 반발에 겉으론 의견수렴에 나섰지만, 그럴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환경부, 서울시, 보일러업계 간 갈등의 배경에는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미세먼지 저감 및 대기질 개선 정책’이 있다. 보일러업계는 지난해 4월 환경부가 관련 법령(대리관리권역의 대기 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올해 4월 3일부터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에 맞춰 ‘친환경 저녹스 콘덴싱 보일러’ 개발에 착수했다.

콘덴싱 보일러는 온수를 가열할 때 발생하는 고온의 배기가스를 활용해 열효율을 크게 높였다. 질소산화물을 비롯한 배기가스 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미세먼지 저감 및 대기오염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정부는 콘덴싱 보일러 보급 비율을 빠른 시일 안에 높이기 위해 제품 설치비용 90만원 가운데 최대 20만원을 대상 가정에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의 비용 지원 방침까지 확정되면서 친환경 컨덴싱 보일러 보급 정책은 순풍을 타는 듯 했으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문제는 현장에서 발생했다. 콘덴싱 보일러는 제품 특성상 설치 장소에 배수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배수구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설치 장소와 거리가 있는 경우, 콘덴싱 보일러는 사실상 설치가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는 “보일러와 배수구 간 거리가 3m 이상 떨어지면 겨울철 응축수 배수관이 동결돼 보일러가 정상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20세대 이하 연립주택이나 2009년 이전 지어진 노후 주택의 60%는 배수구가 없다. 물리적 구조의 한계로 콘덴싱 보일러 보급에 경고등이 켜지자 정부와 보일러업계는 대안을 모색했다.

업계는 배수구가 없는 노후 주택에 설치가 가능하면서도,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크게 줄인 ‘친환경 저녹스 일반 보일러’ 개발에 성공했다. 이 보일러는 콘덴싱 기능이 없는 일반형임에도 불구하고, 콘덴싱 보일러에 근접한 성능과 친환경성을 갖췄다.

지금까지 ‘친환경 저녹스 일반 보일러’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두 곳이다. 다른 기업도 같은 방식의 보일러 개발을 진행 중이다.

업계는 이미 개발을 끝낸 ‘친환경 저녹스 콘덴싱’ 제품을 1등급 보일러, 최근 2곳의 기업이 개발에 성공한 ‘친환경 저녹스 일반형’ 제품을 2등급 보일러라고 부른다.

환경부는 2등급 보일러가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면서 노후주택에 설치할 수 있다는 특장점을 인정하고, 해당 제품 설치 가정에도 1등급과 같은 지원금을 제공키로 했다.

2등급 보일러 지원금 정책은 시행 직전 갑자기 유예됐다. 지난해 환경부는 입장을 번복해 2등급 보일러에 대한 정부지원금 지급을 유보했다. 업계 내부에서는 “환경부가 2등급 보일러에 대한 지원금 지급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대신 친환경 성능이 없는 기존 일반보일러 설치를 허용했다. 업계 반응을 종합하면, 환경부는 올해 말까지 일반보일러 설치를 용인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의 방침 변경에 대해서는 ‘미세먼지 저감 및 대기질 개선’ 관련 정부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경부를 믿고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2등급 보일러를 개발한 기업들 입장에서 볼 때, 역차별이란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본지는 지난달 <친환경보일러 먼저 만든 죄?... 환경부 '지원금 유예' 역차별 논란> 기사를 냈다. 본지 보도 직후 환경부는 보일러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이달 27일까지 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이달 6일 노원구가 지역내 보일러 관련 업체에 보낸 공문. 사진=시장경제
이달 6일 노원구가 지역내 보일러 관련 업체에 보낸 공문. 사진=시장경제

하지만 서울시는 의견 수렴 중에 '가정용 저녹스(친환경) 보일러 설치지침'이 담긴 안내문을 25개 자치구를 통해 시내 보일러 대리점과 시공업체에 발송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등급 보일러 설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배수구' 존재 여부다. 배수구가 보일러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응축수 배수관을 설치할 수 있다. 보일러와 배수구 간 거리가 3m 이상 떨어지면, 겨울철 배수관 동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일선 보일러 대리점에 보낸 안내문을 살펴보면, 보일러 설치 지점과 배수구 간 거리는 상관없이 보일러실 안에 배수구만 있으면 1등급 보일러를 설치해야 한다. 보일러 본체와 배수구 간격 문제는 언급이 없다. 보일러실에 배수구가 없어도, 문이나 벽 등에 관이나 구멍이 있어 배수관 연결작업이 가능하면 배수구를 갖춘 것으로 본다는 내용도 있다. 

보일러 설치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보낸 공문대로 하려면 콘크리트 벽이나 철문에 타공작업을 추가로 해야 한다는 뜻인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배수구가 떨어져 있어 1등급 보일러 설치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가구엔 2등급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등급 보일러가 아니면 설치해선 안 된다는 지시나 다름 없는데 2등급 보일러는 왜 개발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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