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산층 외면한 '중산층 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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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산층 외면한 '중산층 임대주택'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0.03.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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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價월세 논란 경기도시공사 ‘공공임대주택사업’, 실효성 있나
경기도시공사 이헌욱 사장. 사진=경기도
경기도시공사 이헌욱 사장. 사진=경기도

"빚을 내서 집을 사려는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을 추진해 은행 대출 이자보다 적은 월세를 내면서도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겠다.”

지난해 2월 18일, 이헌욱 경기도시공사 사장은 도의회에서 열린 공사 사장 인사청문회에 후보로 나와 '중산층 임대주택' 사업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사장은 1년 후 자신이 공언한 “은행이자 보다 싼 중산층 임대주택”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득과 자산에 관계없이 무주택자가 입주 가능한 월세 130만원의 임대주택’이 바로 그것이다. 

공사는 지난해 28일 '광교신도시 중산층 임대주택 시범사업'이 같은 달 26일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광교신도시 내 A17블록에 549세대(전용면적 84㎡ 482세대, 74㎡ 67세대) 규모로 들어서는 중산층 임대주택은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등에게 20%를 임대하고, 나머지는 중산층에게 공급한다.

문제는 임대료. 공사 측이 밝힌 임대료는 주변 전세 시세의 90% 수준이다. 3년 후 입주자를 모집하기 때문에 광교신도시의 집값 상승세를 감안하면 임대료는 120만원 이상(84㎡, 보증금 1억2000만원 기준)으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리비와 보증금 대출 이자까지 더하면 고정지출비용은 월 150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월 150만원 상당을 지출하지만 '월세'라는 주거 방식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중산층 임대주택 입주자도 계약기간 만료 후 선납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때까지 낸 월세는 보전받을 방법이 없다. 주변 전세가의 90% 수준이라고 하나 입주기간이 끝난 뒤 집을 나와야 하는 월세 임차인의 입장을 고려하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경기도시공사가 주관하는 이 사업의 주된 수요자는 '월세 150만 정도를 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들을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지방자체단체가 앞장서 일부 부유층을 위한 월세 주택사업을 추진하는 배경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사는 “중산층 주거안정과 수익성을 동시에 감안한 모델”이라고 강변하지만, 도가 추진하는 위 사업이 '중산층 주거안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경기도, 도의회, 경기도시공사 관계자 누구도 '중산층'의 기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설명과 책임을 떠넘긴다는 인상만 받았다.

수차례 질문 끝에 공사는 ‘중산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중산층 임대주택은 분양주택을 대체하는 모델이다. 분양주택 청약이 가능한 무주택자가 주 수요층이며, 소득이나 자산에 대한 기준이 없으므로 중산층까지도 입주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공사가 공개한 ‘중산층 임대주택’ 자격조건을 보면, 소득 및 자산의 다소와 관계 없이 만 19세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다. 경쟁률이 높을 경우에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입주자를 선정한다. 입주 후 다른 분양주택에 청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20년 임대기간 중 언제나 이사할 수 있다. 

공사가 밝힌 입주조건을 찬찬히 다시 봐도 사업 목적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주택사업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대부분 주거 복지 구현을 사업 목적으로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수익 창출에 방점을 찍어 주택사업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세금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민간사업자의 그것과 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다. 

경기도 내부에서도 사업 목적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17일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소속 김태형 도의원은 이헌욱 사장에게 ‘사업 추진 배경’을 물었다. 이 사장은 “수익성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 사장은 “작년에 제가 취임한 이후 분양을 대체할 만한 그런 임대가 가능하냐. 지금까지는 분양을 하지 않으면 수익을 도저히 낼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배적 인식이었다고 하면, 임대로도 꼭 사업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방향으로 한번 모색을 해 보자라고 해서...(추진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의 솔직한 답변은 중산층 임대주택 사업의 목적이 '수익성'을 염두해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가 앞세운 '중산층 주거안정'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나 다름이 없다. 도 소유 부지에 고가의 임대주택을 짓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자는 발상이 과연 정부 주택정책에 부합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도의회 박재만 도시환경위원장은 “공사에 중산층 규정과 높은 임대료 문제를 수차례 지적을 했다. 최종적으로 통과시킨 이유는 전국 최초 사업인 것을 감안했다. 사업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시 의회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 놨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후보 시절 월 25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내며 강남에 있는 60평대 고급주택에 거주해 ‘황제 월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월 차임 130만원, 관리비 포함 150만원 안팎을 내는 월세주택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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