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기피 신청 '인용률 0.1%' ... 이재용 특검, 속보이는 여론戰
상태바
법관 기피 신청 '인용률 0.1%' ... 이재용 특검, 속보이는 여론戰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3.01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경pick] 박영수 특검의 '정준영 재판부 기피' 속내는?
'주관적 우려·의심' 외 특별한 사정 없어... 인용가능성 희박
檢, 우호매체에 수사 정보흘리기 舊態... ‘여론몰이’ 재현 우려
삼바 이슈-합병비율 관련 의혹, 파기심 심리 범위에 포함안 돼
박영수 특별검사팀 기자회견. 사진=시장경제DB.

“재판장의 결정은 ‘양형 사유 중 특검이 제시한 加重要素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減輕要素에 해당되지도 않는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운영과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만 양형심리를 진행하여... (중략)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는 예단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24일 늦은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심 공소 유지를 맡은 박영수 특검은 이 사건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 1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내면서, 그 이유를 위와 같이 밝혔습니다.

A4용지 약 두 페이지 분량의 기피신청 사유를 살피면 특검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재판장이 이 부회장 등 피고인에 대한 양형 판단을 함에 있어, 피고인 측에 유리한 감경요소 반영에는 적극적 모습을 보이는 반면, 불리한 가중요소 채택에는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특검은 자신들이 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검찰 수사 자료,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 관련 자료의 증거 신청을 재판부가 기각한 점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사건 ‘뇌물의 적극성’을 이미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재판부가 상고심 취지에 반해 위법한 재판 진행을 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는 재판부에 대한 특검의 불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검의 24일자 기피신청 사유 중 [재판장이 ‘피고인 이재용은 강요죄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대목을 보면, ‘불만’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특검은 ‘정준영 부장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도입 관련 입장을 번복했다’는 점도 짚었으나, 재판의 진행과 심리는 공판 과정에서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보이는 태도나 진술의 신뢰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법관 기피 신청’ 인용률 0.1% 이하... 주관적 우려 내지 의심, 기피 사유 안 돼 

형사소송법이 법관에 대한 기피 제도를 명문화한 이유는 ‘재판의 공정성 및 신뢰도’ 확보에 있습니다. 당해 재판의 진행이 심히 공정을 잃거나 잃을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는 법관에 대한 기피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피신청 재판은 그 법관이 속한 법원의 합의부에서 합니다. 단, 해당 법관은 기피신청 사건 심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즉시항고가 가능합니다.

판례를 볼 때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이 인용된 비율은 0.1%가 채 안 됩니다. 재판의 공정성 상실을 우려할만한 ‘객관적 사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은 대부분 기각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법관 기피 사유는 △법관 자신이 사건 피해자인 때 △사건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 이해관계 내지 친족 관계가 있는 때 △법관이 이 사건 수사, 조사 등에 참여한 때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등입니다(같은 법 17조, 18조1항).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입니다.

판례에 따르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는 신청자의 주관적 인식만으로는 부족하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그렇게 판단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존재해야 합니다.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란 ‘주관적인 사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의 판단에서 그런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1. 3. 21. 2001모2 결정.

구체적으로 법관이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 친분이 있거나 적대관계에 있는 경우, 법관이 유죄를 예단하거나 사건 당자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경우 예외적으로 법관 기피신청이 인용됐습니다.

법관과 피고인, 피해자, 혹은 증인·감정인 사이 밀접한 인간관계가 있거나 있었음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정도가 아니라면, 기피신청은 대부분 기각됩니다. 특히 일방의 단순한 의심이나 주관적 우려 내지 추측은 기피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인용 가능성 희박한 기피신청 낸 속내... 특검, ‘여론몰이’ 舊態 재현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현실적으로 특검의 법관 기피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정 부장판사가 과거나 현재 이 부회장 혹은 삼성과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될만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고, 달리 이를 증명할만한 객관적 사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기피신청 사유에 그 점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특검의 기피신청은 아무리 좋게 봐도 위에서 설명한 ‘단순한 의심이나 주관적 우려 내지 추측’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사정을 잘 아는 특검이 ‘기각’될 것을 알면서 기피신청을 했다면, 여기엔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특검에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인용 가능성 희박한 기피신청제도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앞서 특검의 시각을 계승한 검찰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 과정에서 일부 우호 매체에 수사 정보를 흘리는 방법으로, 여론몰이에 나서는 구태를 재현했습니다.

◆삼바, 삼성 합병 의혹... 양형 가중요소 될 수 없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이기륭 기자.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감경요소만 받아들이고 가중요소는 배척했다’거나 ‘정 부장판사의 재판 진행은 상고심 취지에 반해 위법하다’는 특검 주장은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특검이 재판부에 증거 채택을 요구한 자료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삼성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과 관계돼 있습니다. 이 부회장 죄질의 불량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들 자료의 증거 채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특검 주장입니다. 양형 판단에 있어 ‘죄질 불량’은 가중요소이므로, 이들 자료가 증거로 채택된다면 파기 전 보다 더 높은 선고형도 가능할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재판부가 위 자료의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특검이 낸 이의신청마저 기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유가 다릅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및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 관련 특검 공소사실을 인용한 재판부는 없습니다.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파기 전 항소심) 재판부는 물론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들 사안에 대해서는 특검 공소사실을 배척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 및 그 판시 이유를 기준으로 심리 범위가 제한되는 파기환송심이므로, 위 두 사안은 파기심의 심리 범위 밖에 있습니다. 양형 판단을 위한 심리라고 해서 달리 볼 이유가 없습니다.

두 사안 모두 기소조차 안 된 수사 중인 사안입니다. 이들 자료를 양형 가중요소라고 주장하는 특검 논리는 억지스럽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뇌물의 적극성’을 이미 인정했다는 특검 주장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승계작업’의 존재와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뇌물의 성격’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고 해서 ‘뇌물의 적극성’까지 인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같은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항소심·상고심 재판부는 ‘뇌물의 수동성’을 분명하게 판시했습니다.

신 회장 뇌물공여 등 혐의 사건은 범행 원인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 사건과 같습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