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양형 8장, 법인만 적용' '준법委는 삼성편'... 모두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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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양형 8장, 법인만 적용' '준법委는 삼성편'... 모두 가짜뉴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1.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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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사실 눈감고, 입맛 맞는 내용은 인용... 확증편향 드러내
美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 해석상 '기업' ‘기업인’ 모두에게 적용
삼성 준법委, 외부위원 전원 ‘反삼성’... 위원장이 인사권 독자 행사
“삼바 수사기록 증거 채택하면 파기심이 상고심 취지 위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편집자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17일, 변호인단이 설명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립 및 운영계획안’ 내용을 검토한 뒤, 위원회가 본래 목적에 맞춰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제 도입을 결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특검과 검찰이 제출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수사기록의 증거채택도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파기환송심입니다. 대법원 상고심이 판시한 파기 취지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습니다. 심리 범위 역시 상고심의 파기 취지에 따라 범위가 제한됩니다. 심리 바탕이 되는 증거 마찬가지입니다.

재판부가 특검 제출 자료의 증거채택을 거부한 것은 이미 예견된 사안이었습니다.

상고심은 삼성바이오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유무죄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증거로 채택한다면, 그 자체가 상고심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재판 불공정’을 주장했습니다.

특검은 삼성 측이 밝힌 준법감시위 운영 계획, 재판부의 전문심리위원단 구성 결정에 대해서도 ‘피고인 봐주기용 특혜’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4차 공판 직후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노총 등 친정부 성향 노동시민단체와는 잇따라 비난 성명을 발표하며 파기심 재판부 헐뜯기에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정의당 심삼정, 바른미래당 채이배 등 범여권 국회의원들도 이들과 보조를 맞췄습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심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당해 재판부를 비난하는 행위는 그것이 정치인이든 시민노동단체이든 용납되선 안 됩니다.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관 독립'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급조한 공동성명이나 조악한 토론회 발제문 몇 장으로 재단할 사안은 결코 아닙니다. 

<시장경제신문>은 이 부회장 파기심 공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재판개입’의 정도가 매우 심대하다는 판단 아래, 범여권 국회의원 및 노동시민단체 주장을 검증해 봤습니다.

본지는 범여권 국회의원과 참여연대 민변 등이 이 부회장 파기심 재판부를 상대로 낸 공동성명의 위헌성과 비민주성을 아래 관련 기사를 통해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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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이재용 파기환송심 4차공판 심층 분석
'준법감시委=이재용 봐주기' 확증편향을 경계한다

기사 이후 이들의 논조에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채이배 의원과 참여연대, 민변 등이 공동 주최한 22일 토론회의 내용을 보면,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이 부회장 파기심 재판부를 비난하는 논거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재판부가 참고할 것을 권고한 미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의 기업 준법감시제도는 ‘기업인’이 아닌 ‘기업(법인)’ 범죄를 대상으로 한다. 이 사건 피고인은 ‘자연인’ 이재용이지 법인인 삼성전자가 아니다.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구성과 운영실태를 이재용 피고인의 양형 판단에 반영해선 안 된다.

두 번째, 삼성 준법감시위는 언제든 오너의 변심에 따라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

세 번째, 특검이 제출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수사를 통해 그 범죄사실이 대부분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자료의 증거채택 거부는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

◆美 법원 양형기준 8장... ‘기업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위 3가지 논거 중 첫 번째는 최근 들어 이 부회장 파기심 재판부를 비난하는 이들이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사안입니다.

미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 준법감시제도는 기업범죄에 대한 감형요소이므로, ‘자연인’ 이재용 의 양형에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특히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 문제는 기업 즉 법인이 ‘범죄능력’을 가지는가에 대한 대륙법계, 영미법계 간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대법원과 통설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배임죄에 대한 판례를 통해 ‘법인 범죄능력 부정설’을 취하고 있습니다(1984. 10. 10. 선고 82도2595 전원합의체 판결).

반면 영미법계는 기업 즉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는 범죄 주체를 ‘논리적 인격자’로 파악하는데 반해 영미법계는 법인 단속의 사회적 필요성을 중시해 법인도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 준법감시제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법리적 차이를 살펴야 합니다. 그 전제에서 사안을 다시 보면, 미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에서 말하는 ‘기업’은 법인뿐만 아니라 ‘기업인’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미국법에 밝은 전문가들이 정준영 부장의 준법감시기구 관련 권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삼성 준법감시위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미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이 정한 준법감기기구는 기업과 기업인범죄 모두에 적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사정을 종합하면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이 적용 대상을 ‘기업’이라고 표기했다고 해서, 법인만을 대상으로 할 뿐 ‘기업인’은 제외된다는 주장은 사안을 왜곡하기 위한 악의적 해석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지형 전 대법관.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지형 전 대법관.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 이 부회장도 직접 조사할 수 있어... 경영 주요 현안 모두 감시 대상

이 부회장 사건 파기심 재판부에 대한 두 번째 비난 사유는 삼성 준법감시기구 자체에 대한 근본적 불신에서 출발합니다.

파기심 4차 공판이 끝나자마자 비난 논평을 발표한 참여연대, 표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린 범여권 국회의원들, 뒤를 이어 긴급 토론회를 연 참여연대와 민변, 경제개혁연대 등은 위원회의 출범 계기는 물론이고 그 운영방안에 대해서도 강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의 반감은 삼성 준법감시위를 바라보는 특검의 기본 시각과 거의 일치합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위원회가 오너의 입김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너가 변심하면 준법감시위는 언제는 무력화될 수 있다”는 주장의 이면을 살피면 이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이미 김지형 전 대법관이 명쾌하게 냈습니다.

그는 지난 9일 준법감시위 위원장직 수락 이유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성이 변화를 택한 타이밍이 썩 좋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뤄내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고 실패는 커다란 불명예로 남을 수 있어 두려우나 실패는 있어도 불가능은 없기 때문에 결국 이뤄낼 것입니다.”

김 전 대법관에 따르면, 위원회는 위법사항 발생 시 삼성 측에 시정을 권고하고 재발 방지 방안 마련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해당 계열사 이사회가 위원회 권고를 수용치 않는다면 그 이유를 보고해야 하며, 위원회는 그 사실을 자체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습니다.

위원회가 홈피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위반사항 제보를 받는 시스템도 구축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권한은 위원회의 직접조사권입니다.

국내외 많은 글로벌 기업이 준법감시기구를 갖추고 있으나 해당 위원회가 독립적인 자체조사권을 보유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김 전 대법관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기업 준법감시기구는 많지만, 위원회가 자체조사권을 보유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습니다.

위원회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 수행을 위해 사무국 등 지원조직도 갖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접조사권과 함께 눈여겨볼 권한은 위원장의 독립적 인사권과 위원 강제해촉 불가 조항입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직접 선임한 7명 위원 중 삼성 측 내부위원은 단 1명, 나머지 6명은 시민사회 언론계 법조계 학계에서 각각‘재벌 개혁’, ‘대기업 지배구조개편’ 활동에 매진한 인사들입니다. 성향상 반(反)삼성 내지 ‘안티 삼성’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 진보성향 인물로 위원회가 구성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 전 대법관 성향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사법부 인적 물갈이를 위해 진보성향 법조인 5명을 대법관에 임명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김 전 대법관입니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진 유족들의 추천을 받아 조정위원장을 지낸 이력이 있습니다. 그는 회사 측과의 협의를 통해 성공적으로 보상안을 이끌어내며 조정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김 전 대법관은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근로자 사망사고 당시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을 받아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김 전 대법관 및 외부위원들의 과거 활동상을 고려할 때, 위원회가 오너의 입김에 휘둘릴 것이란 주장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원을 해촉할 수 없습니다. 선임권은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행사하며, 해촉은 위원 자신의 자발적 의사가 아니라면 위원회의 동의를 구해야 할 사안입니다. 위원 구성과 운영에 있어 삼성 측이 개입할 빈틈은 찾기 어렵습니다.

위원회 감시 대상 역시 매우 포괄적입니다.

외부 단체 등에 대한 후원은 물론이고 계열사간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합병과 영업양수도, 회사의 인적·물적 분할, 인사 및 조직개편, 협력사 하도급 등의 현안이 모두 감시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재용 부회장도 계열사 대주주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원회의 감시·통제대상 중 한 명입니다.

◆“파기심 재판부가 삼바 수사기록 증거 채택하면, 그것이 재량권 일탈”

특검과 참여연대, 민변 등은 ‘재판 불공정’ 주장의 근거로, 재판부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자료의 증거채택을 기각한 점을 꼽기도 합니다.

채이배 의원이 민변, 참여연대 등과 공동 주최한 22일 토론회에서도 삼바 수사자료의 증거채택을 거부한 재판부 결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본지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심층취재하면서 이 부분 특검 주장의 모순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양재식 특검보는 17일 공판에서 삼성바이오 수사기록 증거제출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호인단은 우리가 분식회계 입증하려 한다고 말하는데, (자본시장법)은 회계처리기준 위반해서 재무제표 공시한 경우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저희가 언제 회계처리기준 위반 입증한다고 했나? 재무제표 허위성 입증한다고 했나? 그런 거 아니다. 이재용 피고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삼성이 조직적으로 합병을 추진하다 보니 그 뒷수습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입증하려는 것.”

위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특검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다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의 위법성을 살피기 위한 전제로써, 삼바 수사기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앞서 특검은 지난해 11월 22일 이 사건 파기심 2차 공판에서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부분까지 모두 재심리해야 한다”며, 삼성 합병 및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양 특검보는 앞선 공판과 전혀 다른 레토릭을 써, 삼바 수사기록 증거채택의 필요성을 강변했으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삼성바이오가 대규모 분식회계에 나섰다’는 기존 주장을 철회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검의 시각을 그대로 계승한 검찰이 ‘삼성 합병과 삼바 분식회계 의혹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 이를 반증합니다. 중요한 것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자료의 증거채택을 거부한 재판부 판단을, 재량권 일탈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파기심은 대법원 상고심 주문과 판시 이유에 터잡아 그 범위 안에서만 심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심리의 바탕이 되는 증거 또한 상고심 파기 취지와 그 이유를 기준으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부는 첫 공판이 열린 지난해 10월25일, 이런 사실을 특검과 변호인단 양쪽에 당부했습니다.

“이 사건 공판은 파기심으로 대법원의 파기취지를 따라야 합니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해 항소이유서를 내기 바립니다.”

위 당부에는 심리 범위가 제한되므로, 증거도 그 취지에 맞게 제출해 달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국정농단 사건’ 심리 범위 밖에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사건, 최순실씨 일가 사건, 뇌물공여자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건, 이 부회장 사건 1~3심 등 모든 사건을 들여다봐도 삼성 합병과 삼바 분식회계를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거나,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출발점으로 인식한 재판부는 한 곳도 없습니다.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6차례나 사건 전체를 심리한 이 사건 상고심 참여 대법관들도 삼성 합병과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연결지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파기심의 심리 범위가 상고심 주문과 판시 이유를 기준으로 제한됨을 고려하면, 삼바 수사기록에 대한 재판부의 증거채택 기각은 법리상 당연한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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