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기소조차 못해"... 檢 비판한 증거인멸 1심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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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부정 기소조차 못해"... 檢 비판한 증거인멸 1심 재판부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12.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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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인멸 재판 1심 선고 "유죄지만 분식회계와는 무관"
변호인단 "특정도 안 됐는데 증거인멸이라니..."
재판부 "檢, 분식회계 의혹 장기간 수사 불구 기소도 못 해"
판례 해석 차이에 따라 항소심 파기 가능성 열려 있어
분식회계 판단 유보... 檢 절반의 승리, 변호인단 선방 평가도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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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개시 사실을 알면서 자료를 일거에 지웠다면, 자료가 설사 (본죄와의)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관련 판례에 따라 증거인멸 및 은닉 혐의가 확립된다.”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 공판 과정서 나온 검찰 의견 진술 중 일부.

“법원이 증거인멸죄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는데 그 뒤에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 무죄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중략) 삭제 자료가 2000건이 넘는다는데 자료 대부분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검찰이) 삭제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범죄사실 입증은 불가능하다.”
-삼바 증거인멸 혐의 공소장 허점을 지적한 변호인 항변 중 일부. 

분식회계 의혹으로 촉발된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 1심 공판이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 선고로 마무리됐다.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이 사건 1심 선고 기일을 열고, 이OO 부사장 등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 8명 모두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른바 ‘증거인멸 대책회의’ 참석자들에겐 징역 1년6월에서 2년의 실형을, 다른 피고인들에게는 징역 6월에서 1년6월의 형과 함께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했다.

이날 선고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끈 이유는, 표면적 혐의인 증거인멸죄 성립 여부가 아니라 ‘본죄’인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었다.

재판부가 판시이유를 통해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돼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힌다면,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이재용 부회장 파기심 공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와 관계없이’, 증거인멸죄 성립 자체만을 판단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쳐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며 지지부진한 검찰 수사 실태를 비판했다. 특히 재판부는 "(기소를 하더라도) 치열한 법정다툼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본죄 성립 여부를 따지지 않고 증거인멸 유죄 판단을 내린 배경에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검찰은 이 사건 공판 초기부터 대법 판례를 인용해 “행위자들이 수사 개시 사실을 알고도 증거 인멸 행위에 나섰다면, 해당 증거가 본죄와 관련성이 적어도 증거인멸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인멸 증거가 본죄와 관련이 있음을 특정해야 한다’는 변호인단의 공세에 “증거인멸 행위 자체가 범죄 성립의 증거”라고 맞섰다.

본죄 혐의 입증과 관계없이 증거인멸죄 성립이 가능한지 여부는 이 사건 핵심 쟁점이었다.

특정도 없이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다면 ‘본죄와의 관련성’은 사실상 무제한 확장된다. 이는 특정이 필요치 않은 것과 같다. 증거인멸죄 구성요건 중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 부분이 형해화된다는 문제도 있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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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은 “검찰이 삭제했다는 증거 대부분이 회계와는 관련이 없고, 삭제된 자료가 2000건이 넘는다면서 불과 20건만을 증거로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백번 양보해 ‘특정’을 하지 못하겠다면 증거로 제출은 해야 한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항변이었다. 변호인단은 “삭제된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증거인멸죄 성립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대법 판례에 근거해 검찰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변호인단의 항변은 배척했다. 

재판부가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이 사건 증거인멸 항소심 재판부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1심 재판부 유죄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대법 판례에 대한 해석의 결과'라는 점에서, ‘원심 파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대법 판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 1심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재판부가 본죄에 해당하는 분식회계 혐의 판단을 유보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반쪽 승리’이자, 변호인단의 ‘선방’이라는 평가도 있다.

1심 판결에 대해 법조계 한 관계자는 “분식회계 혐의 재판이 시작도 안 된 상태에서 재판부가 삼성 측 항변을 받아들일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여론재판에 내몰릴 수 있다는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심 재판부가 법리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심 판결이 파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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