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감사보고서' 이재용 파기심 증거로... 檢, 독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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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감사보고서' 이재용 파기심 증거로... 檢, 독배 들었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11.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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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심 2차 공판서 드러난 檢전략... 감사보고서 '양형 증거'로 신청
檢 "승계 위한 개별현안 존재, 명시적 구체적 청탁" 거듭 주장
'뇌물의 수동성' 앞세운 변호인단 항변 무력화 목적
감사보고서 "공단 직원, ‘합병 주총’ 앞두고 기업가치 등 자료 왜곡" 
자료 왜곡과 이 부회장-박 전 대통령 '독대' 사이 인과관계 입증 불가
주총 의결 7월 17일, 독대는 7월 25일... 시점 불일치
1심 재판부 "합병 관련 청탁 독대 과정서 없었다"
이달 22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이달 22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이달 22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2차 공판이 끝나면서 이 사건 공소유지를 맡은 박영수 특검과 검찰의 향후 전략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특검은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국민연금공단의 2018년 특정감사 보고서’와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 사건 공판 중 일부 기록’을 새로운 증거로 신청했다.

특검이 신청한 국민연금 특정감사 보고서는 지난해 7월3일 공단 측이 약 2개월에 걸쳐 내부감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를 정리한 문건이다.

해당 보고서는 2015년 7월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당시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표를 던지게 된 과정을 살핀 뒤, 합병 전 제일모직 및 제일모직이 최대주주로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 산정, 합병 시너지 산출 등이 부적절하게 이뤄졌다고 결론 내리고 일부 직원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삼바 증거인멸 공판 기록’ 중 특검이 증거 신청한 기록은 분식회계 의혹 관련 내용이다.

특검의 증거 신청은, 이 부회장 사건과 삼성바이오 이슈를 ‘기초 사실관계가 같은 동일 사건’으로 묶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검찰 전략, 양형 기일서 변호인단 항변 원천 봉쇄

서울중앙지검 현관. 사진=이기륭 기자.
서울중앙지검 현관. 사진=이기륭 기자.

흥미로운 점은 위 자료들을 ‘양형 증거’로 신청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 달 6일 열릴 예정인 양형 심리기일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및 삼성 합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 ‘수동적 뇌물’ 법리를 앞세운 변호인단의 항변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파기심은 유무죄 심리와 양형 심리를 구분해 기일을 열고 있다. 22일 열린 2차 공판은 유무죄 심리기일로, 특검과 변호인단은 각각 상반된 입장에서 항소 이유를 밝혔다.

특검은 ‘최서원 판결’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카드를 꺼내 들어,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부분까지 전부 재심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대법 전원합의체가 유죄로 판단한 마필 3마리 상당 가액 및 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의 뇌물성을 반박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이 사건 대법 전원합의체 주심 조희대(사법연수원 13기), 안철상(연수원 15기), 이동원(연수원 17기·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뇌물 등 혐의사건 상고심 주심) 대법관 등 3인이 낸 소수의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검과 변호인단이 각각 나름의 법리를 전개하면서 이 사건 주요 쟁점에 대한 유무죄 판단 당위성을 다퉜으나 파기심 흐름을 바꿀만한 ‘깜짝 반전’은 없었다.

22일 공판이 열리기 전부터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서는 “이 사건 무게 중심은 양형 심리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유력했다.

앞서 이 사건 1차 공판이 열린 지난달 25일, 정준영 부장은 특검과 변호인단에 ‘파기환송심 취지에 적합한 증거 신청’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정 부장판사는 “양형 기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부장판사의 당부는 ‘이 사건 주요 쟁점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대법 전원합의체를 통해 대부분 정리됐으므로, 파기심 취지를 헤아려 그 범위를 벗어나는 공방은 가급적 자제해 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무죄 심리 기일이 큰 틀의 변화 없이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되면서 내달 6일로 예정된 양형 심리기일의 비중이 한결 더 높아졌다.

위 두 개의 문건 중 ‘삼바 분식회계 의혹 관련 수사기록’은 유무죄 심리기일에서도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다뤄졌다.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삼성 합병의 출발점으로 보고, 두 사건을 동일한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검찰의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앞으로 있을 양형 판단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국민연금 특정감사 보고서’이다.

◆양형 기일 전망, 檢 '국민연금 감사보고서' 인용... 이 부회장 연결은 ‘추론’으로

삼성물산.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물산. 사진=이기륭 기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위 문건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검찰은 위 문건을 통해 국민연금 임직원들이 ‘합병 찬성’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조직적인 자료 왜곡에 나섰음을 주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문건의 내용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자세하게 설명한 뒤, ‘자료 왜곡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국민연금 간부의 배후에 옛 삼성 미래전략실이 있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검찰은 이 부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전략실 임원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명시적 혹은 묵시적 승인을 했을 것이란 ‘추론’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임원들을 기소하면서 위와 같은 추론이 포함된 공소장을 작성했다.

검찰이 이 사건 파기심 1, 2차 공판을 통해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개별현안이 존재했다’, ‘순환출자고리 해소,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이 바로 이 부회장 그룹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한 개별현안이다’,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은 그룹 차원에서 이들 개별현안을 진행했다’ 등의 주장을 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개별현안 처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청탁했다’는 추론을 거듭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추론’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조명하면 이 사건 본질은 ‘대기업 총수가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 적극적 개별적 명시적 청탁을 하면서 뇌물을 공여한 사건’이 된다. 이 경우 뇌물의 수동성은 인정할 여지가 없다. 특검의 전략이 통한다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된는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 역시 크게 낮아진다.

◆국민연금 내부 자료 왜곡... ‘독대’와의 연결 여부, 언급 全無

그러나 검찰이 선택한 전략은 자칫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국민연금 특정감사 보고서’ 자체가 치명적인 허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위 추론이 재판부를 설득하려면, 국민연금 감사보고서에 나오는 ‘자료 왜곡’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독대에 의한 결과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 입증을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독대 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야만 한다. 백번 양보해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국민연금 측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라도 나와야 한다.

이 사건 1심 재판부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판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찬성 의결과 박 전 대통령·이 부회장 사이 독대와의 관련성을 부정했다.

1심 재판부는 한발 더 나아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합병 찬성 방침을 결정하기 직전, 이 부회장이 홍완선 당시 연금공단 이사장을 만난 사실에 대해서도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1심 재판부의 이 부분 판시.

“이 부회장이 ‘합병 성사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건 맞지만, 그 발언을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시 면담 사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볼만한 증거도 없다.”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전 국민연금은 두 회사의 주요 주주였다. 합병을 앞둔 회사의 대표가 주총에 앞서 의결권을 가진 기관투자자를 만나 “도와달라”고 한 말을, ‘부정한 청탁’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이와 달리 판단할 다른 증거도 없다는 것이 판시 이유이다.

1심 재판부는 안종범 전 경제수석,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원영 전 청와대 복지수석 등이 일관되게 “삼성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점, 이를 탄핵할 다른 증거가 없는 점도 판시 이유로 꼽았다.

◆1심 재판부~대법 전원합의체, 삼성 합병 관련 특검 공소이유 배척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국민연금 특정감사 보고서는 2015년 7월 초, 당시 기금윤용본부 일부 직원들이 제일모직과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각각 산출한 과정을 제한적으로 들여다봤을 뿐, 그 이상의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검찰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의 산물임을 입증할 추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시점 불일치’도 검찰이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이다.

기업 간 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합병비율 산정과 주주총회 의결이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은 2015년 5월 26일, 자본시장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산정됐다. 이는 엘리엣 vs 통합삼성물산, 일성신약 vs 통합삼성물산 사건 재판부가 모두 인정한 공지의 사실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두 회사 합병안건에 대해 ‘찬성’ 방침을 정한 시기는 같은 해 7월10일, 두 회사의 주주총회가 열린 날은 같은 달 17일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2차 독대는 7월25일 열렸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들어 “이 부회장이 25일 단독면담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청탁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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