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바 증거인멸 공판과 검찰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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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삼바 증거인멸 공판과 검찰의 궤변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10.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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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에피스 사업보고서상 기업가치 수조원대”
“보고서 기준으로 하면, 설립 당시부터 공동지배로 봐야”
기업가치, 보고서 아닌 연구개발 성과·거래실적으로 판단
검찰, ‘신생 기업’과 ‘성공한 기업’의 가치 혼동
무리한 논리 전개... 분식회계 의혹, ‘수사 부실’ 반증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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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사업을 크게 성공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탓에 내다 팔 수 있는 제품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제부터 연구를 시작해 반드시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장밋빛 계획만 있을 뿐이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능력이 있지만, 성공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기업의 현재 가치는 얼마일까?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기업의 주식은 저마다 미래가치를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사업가들은 ‘성공’을 목표로 한다. 작정하고 실패하기 위해 회사를 차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미래가치는 기업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가 주가에 반영된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래가치란 ‘신기루’와 같은 면모를 지닌다. 객관적인 가치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앞서 든 예시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제아무리 경영 능력이 좋은 사업가, 또는 대기업이라 해도 맨주먹으로 회사를 일궈 반석에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당장 내다 팔 수 있는 제품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서만 가지고는 성공을 말할 수 없다. 만일, 이 회사의 경영진이 달랑 계획서 하나만을 가지고 투자자를 대거 모집해 놓고 사업에 실패한다면, ‘사기죄’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할 것이다. 

신생 기업의 ‘가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증거인멸 공판을 취재하면서, 검찰이 법정에서 제시한 논리가 '궤변'에 가깝다고 느껴져서다.

이제 막 설립돼 내놓을게 아무것도 없는 회사와 다수 제품 개발에 성공해 시장에 안착한 회사와의 차이는 분명 크다. 주식에 매겨지는 가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검찰은 공소장에서 '초창기 회사'와 '성공한 회사'의 가치를 혼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10월 2일 열린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 2차 공판에서 검찰은 “2014년 이전에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며 “삼성은 사업계획서 및 맥킨지 보고서 등을 통해 에피스 설립 초기부터 그 가치를 평가한 만큼, 당연히 콜옵션 행사 가능성도 판단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주장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에피스 설립 당시 작성된 사업계획보고서를 보면 향후 이 회사의 기업가치가 수조원에 달하므로, 설립 시점에 이 회사의 가치를 보고서와 같이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검찰은 '사업보고서를 근거로 하면, 설립 시점부터 에피스를 '공동지배'로 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논리를 기준으로 하면, 신생기업은 R&D 성과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 설립 전 만들어놓은 사업보고서상 기업가치가 수천억 내지 수조원대로 기재돼 있다면, 실제 연구개발 성과와 무관하게 금융권으로부터 수천억원대의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상장도 인수합병도 마찬가지다. 사업보고서만 있으면 국내외 평가기관의 인증이나 수출실적이 전혀 없어도, 회사가 원하는 만큼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일은 없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것이 말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검찰의 논리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궤변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사재판도 아닌 형사공판에서 검찰이 피고인들의 죄책을 논하면서 이런 황당한 논리를 전개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이날 검찰의 법정 진술은, 마치 '계란이 어차피 부화해서 닭이 되니, 계란과 닭의 가격은 같다'는 말처럼 들렸다.

검찰의 이상한 논리 전개는, 이 사건 분식회계 의혹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한 수사 부실을 반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공소사실이 탄탄한 기초 위에 놓여있다면 법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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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전문가도 꼬집는 검찰의 '억지'... 삼바 회계 놓고 금융당국도 '오락가락'

국내 재계 1위인 삼성이라도 2012년 당시 생경한 분야였던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의약품과 동등한 복제의약품을 개발·생산하는 분야다. 까다로운 임상시엄을 통해 품질과 안정성을 입증해야만 판매 승인이 난다. 이른바 '카피약'과는 개발방식과 프로세스가 전혀 다르다.

카피약은 오리지날의약품과의 약물생동성(생물학적동등성) 시험만 통과하면 바로 허가를 받을 수 있지만, 바이오시밀러는 前임상-임상1상-임상3상의 단계를 거쳐 복제약의 안전성과 부작용 여부를 심사받은 뒤 비로소 시판허가를 받을 수 있다. 

당시 삼성은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경험도, 기술도, 인력도 갖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초장기 삼성바이오 창업멤버들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을 만큼 여건이 열악했다. 그래서 손을 내민 회사가 미국의 글로벌 제약기업 바이오젠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바이오젠과 합작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바이오젠은 신생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주저했다. 반도체 D램 및 휴대폰 분야 세계 1위인 삼성이라고해도 바이오시밀러 생태가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 사업이 성공할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바이오젠은 에피스에 대한 투자규모를 줄여 이 회사 지분의 15%만을 챙겼다. 

대신 회사가 수년 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성공하고, 유럽 및 미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용'으로, 삼성바이오와 콜옵션 약정을 맺었다. 약정에 따라 바이오젠은 미래 일정 시점에 에피스 발행주식의 최대 '50%-1주'까지 지분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에피스 설립 당시 이 회사의 대주주는 85% 지분을 보유한 삼성바이오였다. 이사회 지명권도 삼성바이오가 5명 중 4명을 지명할 수 있었던 반면, 바이오젠은 방어권을 위해 단 1명의 이사를 지명할 권리만 가졌다. 대표이사 지명권 역시 삼성바이오 측이 가졌다. 이런 구도는 2018년 6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는 2012년 설립시점부터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2015년 하반기까지,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단독지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바이오젠은 미국 나스닥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서 “삼성바이오가 2012년부터 에피스를 지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하반기부터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는 주식 구매비용보다 지분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즉, 콜옵션을 행사함으로써 3520억원의 비용만으로 2조원 상당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2종이 2015년 9월과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각각 국내 판매승인을 받으면서 기업가치가 급상승한데 따른 것이다. 

K-IFRS(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진 경우, 회계처리 방식은 ‘단독지배(연결 회계)’가 아닌, ‘공동지배(지분법 회계)’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우왕좌왕했다. 2016년 금감원은 참여연대 등이 제기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중순 이뤄진 1차 감리에서는 ‘2015년에도 연결처리를 해야 했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고,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을 부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같은 해 8월 바이오젠이 실제로 콜옵션을 행사하면서 금감원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삼성이 옳았던 셈이다. 

금감원의 갈지자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증선위에서 2차 감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판단을 번복했다. 이번에는 에피스 설립시점부터 이 회사를 ‘공동지배’로 판단해야 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주장은 '애초부터 공동지배’로 봤어야 한다'는 금감원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주장은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럴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설립 초기 에피스 상황에 비춰보면 상당한 무리가 있는 억지해석이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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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포스트 반도체' 사업으로 점찍은 '바이오시밀러'... 이대로 주저앉나

모순과 추단·예단에 기대고 있는 검찰의 증거인멸 혐의 공소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측면이 크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검찰이 이번 삼바 증거인멸 혐의 공소사실에 '구멍'이 많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인지 공판에서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분식회계 혐의와 증거인멸 혐의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을 전제로 한다. 이를 편의상 '본죄'라고 부른다. 증거인멸죄에 대한 당부 판단은, 본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끝난 뒤 공판을 병합하거나 또는 본죄 공판을 지켜본 뒤 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베태랑 수사검사들은 본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먼저 한 뒤, 증거인멸 혐의는 나중에 들여다본다. 본죄에 해당하는 분식회계 혐의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도 모른 채, ‘증거인멸’ 혐의를 따지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삼성바이오측은 공판에서 일부 자료들이 삭제된 사실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분식회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금감원 감리 과정에서 모든 자료를 이미 충실하게 제출했고, 당시 제출된 자료에는 ▲바이오젠과의 합작계약서 ▲지분비율 ▲이사회 구성 ▲판매승인과 관련한 자료 등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즉 분식회계 혐의를 감출 목적으로 증거인멸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삼성바이오측 항변 요지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검찰이 삼성을 대상으로 벌인 압수수색 횟수는 무려 19회에 달한다. 회사 실무자들은 자료 외부유출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자료가 삭제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법의 영역에선 어떤 자료가 어떻게 삭제됐는지를 판단해 죄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까지 삭제됐다는 자료에 대한 '특정'을 하지 않고 있다. '인멸된 자료가 본죄인 분식회계와 관련이 있다는 점'(특정)은 검찰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검찰이 그나마 특정했다는 20여개 자료도 ‘분식회계’와는 거리가 있다.    

인멸된 자료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것이 분식회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특정'하지 못한다면, 증거인멸죄의 죄책 자체를 논하기 어렵다. 

삼성은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포스트 반도체’로 육성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향후 연평균 31.5%의 고성장을 거듭해, 2025년에 이르면 시장규모가 663억불(한화 약 7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바이오시밀러 시장 선점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반면, 삼성바이오는 일부 정치권의 반기업 정서와 검찰발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만 보고 있다. 

사정당국은 기업이 잘못을 했다면 마땅히 매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부풀려진 의혹만으로, 특정기업을 표적삼아 집요하게 괴롭히는 먼지털이식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 이런 행태는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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