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삼바 공소 근거... 檢, 짐작으로 "증거인멸" 주장 되풀이
상태바
빈약한 삼바 공소 근거... 檢, 짐작으로 "증거인멸" 주장 되풀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9.26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바 증거인멸' 첫 공판… '검찰-변호인단' 치열한 법리 공방
檢, 이재용 경영승계-합병-분식회계-증거인멸을 '가정'해 설명
辯 "가능성만으로 증거인멸죄 불성립... 죄형법정주의 반해"
서초동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삼성전자 및 삼성바이오 임직원들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판가름할 첫 번째 공판이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검찰은 이날 모두절차를 통해 공소사실 전반을 설명했지만, 혐의를 떠받치는 법리구조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검찰은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특정을 이날 공판에서도 미룬 채 “회사 컴퓨터 내 파일 2만여건을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본죄 성립여부와 별개로 증거인멸죄는 성립될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반면 변호인단은 “증거인멸죄는 최소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건을 전제로 할 때 성립된다”며 “검찰의 논지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일어난 증거인멸 행위가 종국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폈다. 

2015년 5월 이뤄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릴 필요가 있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가 발생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인 증거인멸 지시가 내려졌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짐작'에 바탕을 둔 '가설'을 제기하자 변호인단은 “(가설이) 사실인지 입증하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자 검찰은 "일련의 의혹들의 진위 여부를 '단정'한 것은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섰다. 검찰은 "금융당국의 전문적 판단 하에 고발이 이뤄졌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행위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삼바 회계기준 변경… 시점 불일치"

검찰은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핵심 계열사인 바이오로직스 가치가 고평가 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그런데 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면서 맺은 ‘콜옵션’ 계약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할 때부터 85%의 지배력을 갖고 있었지만,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50%-1주'를 내줘야 한다. 주총 의결권을 위해선 52%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바이오로직스 단독으로 주총 의결을 할 수 없으므로 결국 양사가 절반씩 지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검찰측 판단이다. 

또한 검찰은 바이오로직스가 콜옵션의 존재만 공시했을 뿐, 주요 내용을 모두 누락했고 회계처리에서도 자본잠식 상태를 피하기 위해 사실상의 ‘부채’인 콜옵션을 미반영하면서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봤다. 

이에 변호인단은 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검찰측에서 포괄적으로 분식회계를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바이오로직스의 회계기준 변경은 합병 이후에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변호인단은 “모직-물산 합병을 위한 양사 주주총회는 삼바가 회계기준을 변경하기 전에 이미 열렸다”며 “합병을 위해 회계기준을 변경했다거나 증거를 감추려고 자료 폐기를 했다는 주장 자체가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증거인멸죄의 법리상 본죄인 분식회계 관련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증거인멸죄도 성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컴퓨터와 서버 등에서 일부 자료가 삭제된 것에 대해 “증거를 인멸한다는 생각보다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자료가 공개될 경우, 별건 수사 등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업무와 무관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자료를 정리하려 한 것일 뿐, 금융위의 감리와 관련된 자료를 삭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검찰에 출석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 검찰은 두번에 걸쳐 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법원에 기각됐다. 사진=이기륭 기자

◆ 수사 가능성 만으로 '증거인멸' 성립한다는 檢… '증거 특정'은 또 미뤄

검찰은 “합병이 불공정한지 단정적으로 말한 적 없고, 단지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라며 “연장선상에서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해도 증거인멸죄의 성립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대법 판례에 따라 타인의 형사사건이 기소가 되지 않거나 무죄라 해도 수사를 예측해 증거를 인멸, 은닉했다면 범죄사실 성립에는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다. 증거는 유·불리와 상관없이 수사의 대상이 되는 모든 자료를 의미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변호인단은 “증거인멸죄는 적어도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건을 전제로 해야 성립된다”며 “이 사건 사실관계는 이미 다 공개돼 있고, 회계기준 변경에 대한 논란만이 있을 뿐이므로 거짓으로 재무재표를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판례는 이 사건의 특정 사정에 비춰봤을 때,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지적이다. 

변호인단은 “수사 가능성만으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며 “증거인멸죄 적용 범위를 검찰 주장과 같이 넓게 확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측이 재판에서 증거 특정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인멸했다고 주장하는 증거가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검찰을 향해 “이 사건의 결정적 근거가 된 내부자료가 무엇인지 밝힐 수 있느냐”고 물었다.   

검찰은 “분식회계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라 여기서는 언급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필요하다면 말할 수 있겠지만, 차후에 말씀 드리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 사건 2차 공판은 다음달 2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속개될 예정이다. 2차 공판에서는 변호인단측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