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대선과 채무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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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대선과 채무탕감
  • 김흥수 기자
  • 승인 2017.03.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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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뒤로 하고 정치권은 이제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향해 숨가쁜 질주를 시작했다.

유권자인 국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이런 저런 공약들을 발표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를 두고 각 후보 진영이 발표하는 공약을 보면 정치인은 없고 사기꾼만 있는 선거 아닌가 싶다.

가계부채 문제를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 채무 탕감이다.

채무탕감이라는 대선공약이 사법부의 권위를 침해하는 심각한 위헌의 성격이 있는지 알면서도 그런 공약을 발표하는지 아니면 몰라서 그런 공약을 발표하는지 의아하다.

채권채무의 관계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입각해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채무자의 사정이 불가피해 채권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할 처지가 되었을 때 사법부의 중재를 통해 채무를 탕감 받는 절차가 개인회생 및 파산면책제도이다.

‘사적자치의 원칙’은 근대 민법의 3대 원칙 중 하나로 이에 대한 조정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다.

행정부가 나서서 채무조정을 한다는 것은 ‘사적자치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고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이다.

지난 해 ‘서민금융진흥원’을 입법화 하는 과정에서도 제기됐던 문제점이었고 결국 채무조정 기능을 제외한 지금의 서민금융진흥원이 출범을 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어려운 서민들의 채무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채무자들이 사법부의 절차를 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내 놔야 할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이 되면 사법부의 권위를 침해하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스스럼없이 발표하는 대선주자들을 볼 때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인지 봉건시대의 군주가 되겠다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또한 채무탕감 공약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방지책이다.

2003년 신용대란 이 후 우리나라는 급격한 금융변화를 맞았고 이에 따라 채무자들의 채무탕감 또한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발전했다.

법원의 개인회생이나 파산제도를 이용해 본인의 채무를 전액 탕감 받을 수 있으며 간단하게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자는 물론이고 많게는 채무원금의 70%까지 탕감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채무탕감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채무를 탕감해 주는 제도의 발전만큼 금융기관의 연체율이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도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돈장사 못 해먹겠다’며 두 손 들고 내빼는 금융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돈을 못 빌려줘서 안달이 난 금융기관들뿐이다.

채무탕감과 모럴 해저드는 돈을 떼이는 게 싫은 금융기관들이 억지로 엮어 만든 프레임일 뿐이다.

금융기관들이 제공한 프레임을 생각 없는 언론들이 확대재생산하고 정치인들은 그 안에 갇혀 모럴 해저드 방지 운운하는 생각 없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 갇혀 이해관계의 반대편에 있는 채무자들을 돕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10여 년 전, 해저드는 골프장에서나 찾으라고 일갈했던 어느 파산부 판사의 말처럼 채무자들의 모럴 해저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모럴 해저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정치인들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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