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건을 '청탁없는 요구형 뇌물'로 봐야 하는 이유
상태바
이재용 사건을 '청탁없는 요구형 뇌물'로 봐야 하는 이유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8.25 1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용 상고심 쟁점 분석 ①] 재판 좌우 할 ‘뇌물 성격’, 기준은?
국회 소추위원단 “박 전 대통령, 기업인 상대로 권력 남용”
헌재 탄핵심판 “박 전 대통령, 우월적 지위 이용, 총수들 강요” 
롯데 신동빈 회장 항소심 “박 전 대통령 강요, 기업은 피해자” 
이 부회장 사건 1심, “정경유착인데 수동적 뇌물”... 앞뒤 안 맞는 법리 구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2017년 2월16일 헌법재판소 대법정,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국회 소추위원단 대리인 이명웅(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출연금 모금은 대통령이 헌법적 권한을 남용한 결과이다. 대통령이 기업에 대한 출연을 강요하거나 개인 등의 특혜를 도모한 행위는 사실상 우월적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 남용이다.”

대법원은 23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박근혜, 최서원(최순실)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을 이달 29일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되는 사건은 이 두건만이 아니다. 두 사람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상고심 사건도 같은 날 선고된다. 박 전 대통령·최순실 사건과 이 부회장 사건은 대향범(對向犯) 관계에 있다. 뇌물죄는 받은 사람(수뢰자), 준 사람(증뢰자)을 모두 처벌하는 필요적 공범이다.

뇌물죄는 증뢰자(공여자)가 범죄에 이르게 된 경위, 그 방법과 과정 및 금액, 증뢰자와 수뢰자 사이의 관계, 두 사람의 정치·사회·경제적 위상과 역할 등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 이른바 ‘죄질’에서 차이가 난다.

경제적 이득이나 인사 혜택 등을 바라고 적극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자의 죄질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의 요구에 불가피하게 응한 사람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상호 이익을 위해 금품을 주고 받은 자들의 죄질을,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반강제적으로 이뤄진 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도 정당하다 할 수 없다.

뇌물죄 심리에서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은 그 행위의 태양(態樣)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뇌물의 성격]에 대한 판단이 사건의 전체 흐름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이 위 세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근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쪽은 수뢰자, 다른 한쪽은 증뢰자의 신분에 있는 이들 사건은 기초 사실관계가 같을 뿐만 아니라 행위 태양에 대한 판단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위 세 사건의 성격을 [청탁형 뇌물]로 볼 것인지, [청탁 없는 요구형 뇌물]로 볼 것인지 여부는 29일 상고심 전원합의체 판결의 최대 쟁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3가지 있다.

첫 번째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국회 소추위원단의 입장이고 두 번째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통해 밝힌 결정이유다. 세 번째는 이 부회장과 같은 증뢰(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판시사항이다.

◆국회 소추위원단 대리인 “박 전 대통령, 우월적 지위 남용해 기업인 강요”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왼쪽)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 첫날,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왼쪽)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 첫날,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최순실씨에 대한 기업인들의 증뢰 사실과 관련돼 탄핵심판 국회소추위원단이 어떤 입장을 같고 있었는지는 위 이명웅 변호사의 발언에 함축돼 담겨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14차 변론기일에 나온 이 변호사의 위 법정 발언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출연금 모금’의 성격을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기업에 대한 출연을 강요하거나 개인 등의 특혜를 도모한 행위’라는 부연설명은,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표현이 하나의 예시임을 시사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미르재단 등에 재산을 출연하고 특정한 개인(최순실)에게 특혜를 제공한 공통점이 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는 다름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증뢰의 성격이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이 변호사의 법정 발언은 최순실에게 특혜를 제공한 기업 총수들의 행위를 탄핵을 발의한 국회 소추위원단이 어떻게 바라봤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법정 발언을 기준으로 할 때, 상고심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 뇌물 사건의 성격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며,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행위]라고 정리할 수 있다.

◆헌재 “박 전 대통령의 기업인 상대 요구... 의견 제시 아닌 구속력 있는 행위”

이런 시각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의해 더욱 구체화됐다.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미르·K재단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출연 요구를 이렇게 판단했다.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요구는 (기업에 대한) 임의적 협력을 기대하는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중략)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

헌재는 이런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재정·경제 분야에 대한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과 영향력’을 꼽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를 진행 중인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사진=시장경제DB.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를 진행 중인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사진=시장경제DB.

특히 헌재는 [대통령이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사기업 경영에 관여한] 사례로 △미르재단 등에 대한 출연 강요 △기업을 상대로 한 특정인 채용 요구 △특정 회사와 계약 체결을 요구한 행위 등을 제시했다.

헌재의 결정 요지는 최순실 모녀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결정문의 맥락상,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불러 최씨 모녀에 대한 지원을 요구한 행위 역시 ‘대통령이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사기업 경영에 관여한’ 사례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탄핵심판 결정문은 박 전 대통령과 기업 총수 사이의 관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헌법재판관들이 대통령과 기업 총수 사이의 관계를 ‘강요’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헌재 결정 요지 중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닌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 등의 표현이 그 근거다.

◆국회-헌재-이 부회장 사건 항소심, 뇌물 성격 판단 사실상 일치... ‘요구형 뇌물’

탄핵을 발의한 국회소추위원단 변호인의 법정 발언과 헌재 탄핵심판 결정문의 기본 시각은 박영수 특검의 그것과 상반된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 뇌물 사건을 ‘정경유착’으로 단정했다. 이 부회장 사건 1심 재판부도 박 특검의 견해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반면 이 부회장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성격을 [박 전 대통령의 겁박에 의한 청탁 없는 뇌물]로 판단, 국회 소추위원단 및 헌법재판소와 같은 시각을 나타냈다.

다음은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의 판시 중 이 사건 뇌물의 성격과 관계된 부분이다.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 경영진을 겁박하고, 측근인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은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거액의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안.”

항소심 재판부는 그 판단의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1차 단독면담 이후 약 10개월간 뇌물은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 2차 단독면담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호되게 질책한 이후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승마지원이 이뤄졌다.”

◆신동빈 회장 항소심 재판부 “대통령 강요에 의한 뇌물, 기업인은 피해자”

최순실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기업 총수의 ‘수동적’ 뇌물사건으로 판단한 사례는 더 있다.

지난해 10월 5일,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 부장판사)는 최순실에게 70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회장이 최씨에게 건넨 뇌물 성격을 [국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수동적 뇌물]로, 신 회장을 [대통령의 강요에 응한 피해자]로 각각 봤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강요로 의사결정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지원금을 건넨 피해자에게 뇌물 공여 책임을 엄히 묻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오락가락 이 부회장 사건 1심 “수동적 뇌물 인정하지만 사건 성격은 정경유착?”

흥미로운 건 이 부회장 사건 1심 재판부의 태도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사건의 기본 성격을 ‘정경유착’으로 보면서도 판결문 양형이유에서는 “이재용은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사건 기본 틀을 ‘정경유착’으로 정의 내렸다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뇌물은 ‘청탁형 뇌물’로 보는 것이 법리에 부합한다. ‘정경유착’이라면 둘 사이 ‘공동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이 경우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금품은 전형적인 ‘청탁형 뇌물’의 성격을 갖는다.

반대로 이 사건 뇌물의 성격을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따른 수동적 응답’으로 본다면 앞선 ‘정경유착’ 판단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