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려면 계약금 3500만원 내라?... 서러운 '행복주택' 입주예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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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려면 계약금 3500만원 내라?... 서러운 '행복주택' 입주예정자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9.08.1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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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행복주택, 계약금 내야 집구경 가능... 사전점검도 못해
‘사전점검‧샘플하우스’ 명확한 규정 없어 SH공사 입맛대로 시행
입주예정자들 “살 집 보는데 돈부터 내라니… 못 가진 게 죄”
SH공사. 사진=시장경제신문DB
SH공사.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종명‧장혜민 씨(35, 신혼부부, 가명)는 최근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위치한 행복주택에 당첨됐다.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돼 기분이 좋았지만 기쁨도 잠시 서러움이 밀려왔다. 행복주택에 당첨되면 대략 3개월 안에 입주를 해야 하는데, SH에서 집을 구경하고 싶으면 계약금(1770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집을 보고 계약을 하는 게 상식인데, 행복주택은 계약을 해야만 집을 보여준다는 것에 부부는 어안이 벙벙했다. 임대 아파트의 평판이 좋지 않던 터라 만에 하나 집이 마음에 안 들어 취소를 하게 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큰 상황이다.

최근 당첨자들 사이에서 행복주택 입주 과정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첨자들이 계약금을 내지 않으면 집을 구경할 수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 사전점검 불가능, SH직원에 따라 어느 지역은 집을 볼 수 있고, 어느 지역은 볼 수 없는 형평성 문제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행복주택이란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해 직장과 학교가 가까운 곳에 지어진 임차료가 저렴한 도심형 아파트다. 

현재 입주예정자들이 가장 거세게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은 SH가 계약금을 내야 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행복주택 계약금은 임대보증금의 20%다. 지역마다 집값이 다르기 때문에 계약금도 천차만별이다. 싼 곳은 1000만원대에서 비싼 곳은 3500여만원에 이른다.

2019년 1차 행복주택 중 임대보증금이 가장 높은 곳은 ‘래미안 신반포 리오센트’다. 임대보증금은 1억7300만원으로 계약금이 3460만원이다. 좋든 싫든 집 한번 보기 위해 3460만원을 내야한다. 내지 않으면 계약 취소 또는 입주 전까지 실제 집을 볼 수 없다.

계약 취소 시 위약금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계약은 온라인으로 신청하지만 계약 취소는 방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SH는 “계약금을 내야 집을 보여준다는 것을 입주공고문에 넣어놨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이런 조항은 있을까. 본지가 직접 ‘2019년 1차 행복주택 입주자공고문’을 확인해 봤다. 그 결과 ‘계약금을 내야 집을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문구는 찾을 수 없었다. 당첨자에게 전달한 계약안내문에도 ‘계약금을 내야 집을 보여줄 수 있다’는 취지의 문구는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모집공고문에 ‘홈페이지에 게재한 전자팸플릿은 최초 입주자 모집 공고시 제작된 것으로 개발계획변경 등으로 인해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인허가 과정에 따라 구조, 설비, 발코니 등이 달라 질 수 있다’, ‘학교 건립 계획 등이 취소될 수 있다’ 등을 적어놓고 ‘반드시 방문해 이 같은 것들을 확인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SH에 ‘계약금을 내야 집을 보여준다’는 조항이 모집공고문 어디에 있는지 다시 물어봤다. SH는 “모집공고문 11번 임대신청관련 문의 3번 조항 ‘금회 공급단지는 현장 여건상 견본주택은 공개하지 않으며, 팸플릿(서울주택도시공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자팸플릿)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는 조항이 ‘계약금을 내야 보여준다’는 조항이다”고 설명했다.

‘견본주택이 없다’는 내용을 ‘계약금 내면 집을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설명해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또 있다. 입주자들이 사전점검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SH는 “우리가 직접 시공사와 협의해 사전점검을 한다”고 밝혔다. 당첨자들은 자신들이 수년 동안 살아야 하는 만큼 사전점검은 입주예정자들도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당첨자인 이 모 씨 부부는 “집주인이 SH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SH직원들이 살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거주하는 곳이지 않느냐. 수년 동안 살 사람에게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주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SH직원들이 과연 입주자 눈높이에서 사전점검을 해줄지도 미지수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전점검’, ‘계약금 내야 집 구경 가능’ 정책이 SH직원 마다 달라진다는 점이다.

SH는 서울 전역에 나눠져 있는 임대아파트를 관악동작센터, 강서센터, 성북센터 등 13개 센터로 관리하는데, 센터에 따라 ‘사전점검’, ‘계약금 내야 집 구경 가능’ 정책을 어디는 하고, 어디는 안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점검과 관련해 ○○○○센터는 “8월 20~24일 10~16시 사이에 단 한번 추진하는 것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센터는 “당첨자들의 사전점검은 없다”고 밝혔다. 구경하는 집도 ○○○○센터는 “없다”, ○○○○센터는 “단지와 조율 중이다” 등이라고 밝혔다.

SH본사 차원에서 일관된 정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센터 직원들이 단지와 협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이 결정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9일 SH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오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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