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삼바 분식회계 혐의 소명 ‘실패’... 수사부실·한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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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삼바 분식회계 혐의 소명 ‘실패’... 수사부실·한계 드러냈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7.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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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 대표 두번째 영장 기각... 분식회계수사 급제동
법원 “혐의 다툼 여지 있어”...CFO, 재경팀장도 기각
검사장 출신 변호사 “정상적 법원이라면 기각 당연” 
김 대표 횡령 혐의 추가... “검찰의 전략적 패인” 
검찰에 출석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 사진=이기륭 기자
검찰에 출석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 사진=이기륭 기자

“중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가 수집돼 있다.” 

검찰이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를 상대로 청구한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두 달 전인 5월25일 증거인멸혐의를 적용 첫 번째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한 검찰은 증거인멸교사 혐의 외에 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 유가증권 사기 상장,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최소 4가지 이상의 혐의를 붙여 영장을 재청구했으나 법원의 문턱을 넘는데 실패했다.

올해 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를 전담수사팀으로 지정,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및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의혹을 묶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검찰의 그 동안 행보를 볼 때, 두 번째 영장 기각은 의미가 매우 크다.

지난해 11월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는 보유하고 있는 에피스 지분 가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4조5000억원 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의결하고,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선위 의결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사실로 단정 짓고 이 사건을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봤다. 이런 시각은 박영수 특검에 합류했던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현 검찰총장)과 한동훈 파견검사(현 중앙지검 3차장)의 기본 인식에 터잡고 있다.

특히 검찰은 [분식회계→삼성바이오 기업가치 부풀리기→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비율, 모직에 유리하도록 결정→이재용 부회장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 완료]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수사 초기부터 최종 목적지가 이재용 부회장 수사 및 구속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의 시각에서 본다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 부회장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으로 분식회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검찰 수사는 기초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는다는 점에서, '삼바 분식회계 이슈'는 검찰이 반드시 넘어야 할 난제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검찰이 연초부터 전국 지검과 지청에서 특수통 칼잡이를 대거 차출해 특수2부의 몸집을 크게 키우고, 19번에 걸쳐 압수수색을 실시한 배경에는 이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절박함이 있다. ‘별건 구속’이란 비판까지 받으면서 김 대표 개인의 회삿돈 횡령 혐의를 두 번째 영장에 포함한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김태한 대표에 대한 영장 발부 여부는 삼성바이오 사건의 변곡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영장 발부에 성공한다면 이 부회장을 향한 검찰의 수사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영장 발부에 실패한다면 검찰의 삼성바이오 수사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20일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김태한 대표에게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주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이 말은 곧 검찰이 분식회계 혐의 ‘소명’에 실패했음을 뜻한다.

‘소명’은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의 추론을 말한다. 반면 입증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확실한‘ 범죄의 증명을 의미한다. 구속영장 발부는 ’입증‘이 아닌 ’소명‘으로 족하다. 즉 구속영장 발부는 ’범죄에 대한 심증 혹은 추론‘ 만으로도 가능하다.

법원이 김태한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을 기각한 이유가 ’소명 부족‘이란 사실은, 검찰의 분식회계 혐의 수사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분식회계가 벌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수준의 소명에도 실패했다는 건, 검찰의 수사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 동안 일부 특정매체에 민감한 수사 정보를 흘리면서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 사건 쟁점인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선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일부 임직원의 증거인멸 사실을 분식회계의 결정적 증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직원들의 자료삭제 혹은 은닉 정황은 분식회계의 정황증거일 뿐 직접증거가 아니다.

무엇보다 19번에 달하는 압수수색으로 심리적 불안감이 극에 달한 임직원들의 정서 상태를 고려할 때, 증거인멸 정황 자체를 분식회계의 '스모킹 건'으로 보는 시각에는 무리가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A는 “정상적인 법원이라면 기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영장 청구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답했다.

그는 “대부분의 회계학자, 경영학자들이 ’분식회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주요 혐의로 삼아 영장을 재청구했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는 “영장 재청구를 하면서 본죄와 무관한 횡령을 끼워 넣은 것도 전략적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할 거면 처음부터 별건 혐의를 넣었어야 했다. 처음엔 증거인멸만 적용했는데 뒤늦게 횡령 혐의를 추가한 건 분식회계 혐의 소명에 자신이 없다는 속내를 판사에게 드러낸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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