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열 교수 "삼바 기소는 전문성 부족한 檢의 중대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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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열 교수 "삼바 기소는 전문성 부족한 檢의 중대 오판"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9.07.1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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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열 교수 발제] ‘논란의 분식회계, 삼성바이오 재판을 말한다’ 토론회
"전문성 부족한 검찰의 중대 오류, 비상식적 부담까지 짊어진 기업"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논란의 분식회계, 삼성바이오 재판을 말한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논란의 분식회계, 삼성바이오 재판을 말한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분식회계 의결로 촉발된 삼성바이오 수사가 정점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경영학·법학 전문가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사건을 재조명하는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단법인 시장경제제도연구소와 자유경제포럼은 17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논란의 분식회계 삼성바이오 재판을 말한다'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 발제에 나선 전문가는 이동기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국제경영) 교수, 이병태 KAIST 경영대 경영공학부(정보경제학) 교수,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자본시장법) 교수, 이헌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한변 공동대표) 4명이다. 사회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맡았다. 토론회는 참석한 전문가들이 각각 발제를 한 뒤 종합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 증선위가 고발한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검찰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반(反)기업 성향 시민단체 등이 삼성바이오와 이재용 부회장 등을 고발한 사건도 특수2부에 맡겼다. 검찰은 올해 2월 전국 일선 지검과 지청에서 배테랑 특수통 칼잡이를 대거 차출해 특수2부 검사 인력을 18명까지 늘렸다.

특수2부는 현재까지 삼성전자, 삼성바이오, 삼성바이오에피스 소속 임직원 8명을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전날에는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와 임직원 2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나아가 검찰은 민감한 수사 상황을 일부 매체에 리크(Leak)하는 방식으로 여론 추이를 살피고 있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를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이 무슨 죄(罪)인가"라고 개탄했다.

마이크를 고쳐 잡은 권재열 교수는 "2017년 사드 사태로 촉발된 중국의 지속적인 보복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이 지금까지 고전을 겪고 있음에도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대한민국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제위기의 역사가 야속하게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정치권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해 대기업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야기된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한·일(韓日) 간의 갈등을 기업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회계영역에서도 국내의 어느 대기업을 사지(死地)로 몰고 있는 것을 보면 정부의 기본입장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나치게 과도한 처벌, 이대로 괜찮은가"

권재열 교수는 삼바 사건을 원점에서 되짚기 시작했다.

권재열 교수에 따르면 금융위는 구(舊)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의거해 런던에 소재한 비영리 민간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작성한 국제회계기준(IFRS)을 우리말로 옮긴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을 2011년부터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IFRS를 도입한 최초의 국가가 됐다. 그러나 일본은 IFRS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K-IFRS는 원칙중심(Principle-based)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K-IFRS는 각종 회계처리에 관련된 나열식 규칙이나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원칙과 근거만을 제시하고 있다. K-IFRS는 오랫동안 한국 회계제도의 축을 형성해온 규정 중심(Rule-based) 회계기준을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전히 규정중심의 감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회사와 감사인이 느끼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대기업을 향한 칼날은 과거에도 날카로웠다. 

한국은 구(舊) 외부감사법에 따른 형사책임이 다른 국가의 관련 법제에 비해 상당히 무거운 편으로 평가받았다. 구법 하에서도 형사책임과 별도로 회계부정에 대해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과태료와 같은 행정제재도 부과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은 이에 추가해 기존의 처벌을 상향함과 동시에 과징금 제도까지 두고 있다.

구법 제20조 제1항 제8호는 '회계처리 기준에 위반해 허위의 재무제표·연결재무제표 또는 결합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한 때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었다. 이러한 처벌이 과도해 비례원칙에 위배되는 것인지 여부가 문제됐지만 대법원은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권재열 교수는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구법상 허위의 재무제표 작성행위에 대한 처벌이 범죄와 비례관계가 있는지에 관해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에 대한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외부감사법은 해당 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제39조 제2항 제1호)으로 정해 처벌 수위를 상향했다. 권재열 교수는 "이 죄에서 파생돼 외부감사인이 부담하는 2차적 책임 허위감사보고서를 작성한 행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처벌할 것을 규정하는 등 한국은 지나치게 과도한 처벌을 두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계처리기준은 금융위로부터 위탁을 받은 한국회계기준원이 정한다.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하도록 권한이 위임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다의적 표현까지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권재열 교수는 "K-IFRS는 IFRS를 우리말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다보니 문맥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까닭에 가독성이 떨어져 원문을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푸념도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 입장에서 법규범의 의미 내용을 명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외부감사법상의 처벌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권재열 교수는 "현실이 이러한데도 외부감사법이 명확하지 않은 회계처리기준이나 회계감사기준을 범죄구성요건으로 내세워 허위재무제표작성죄와 허위감사보고서작성죄의 최고형을 대폭 상향시킨 것은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수범자인 기업들과 외부감사인의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권재열 교수는 "실증적인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K-IFRS가 도입된 후 기업회계담당자들이 재무제표 작성비용이 현저히 증가했다고 평가했고 외부감사인의 84.6%가 감사환경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K-IFRS 도입 이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 기준 해석이 곤란하다는 점, 문서화의 증가가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내용이 불명확한 회계처리기준과 회계감사기준을 시행하면서도 그 불명확성으로 인한 비효율을 수범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도대체 기업은 무슨 이유로 이러한 부담을 져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 "오류만 무성, 검찰은 회계전문가가 아니다"

권재열 교수는 "회계전문가가 아닌 검찰의 전문성이 부족한 탓에 회계를 제대로 처리한 회사와 이를 제대로 감사한 외부감사인에 대해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할 가능성(1종 오류)과 제대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회사와 외부감사인에 대해 법률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가능성(2종 오류)이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1종 오류와 2종 오류가 존재함에도 검찰이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평한다면 이러한 오류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제1심에서 회계전문성이 미흡한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1종 오류가 발생하면 기업은 이러한 판단에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제2심 또는 상고심을 통해 그 오류가 제거돼야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안임에도 제1심에서 유죄가 되고 제2심 법원에서 무죄로 판단받는다면 그만큼 기업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권재열 교수는 "법리를 다투는 과정에서 기업의 주가가 추락하거나 명예가 실추하는 것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라고 청중에게 물었다.

반대의 문제도 있다. 만약 2종 오류가 발생하면 기업은 검찰의 판단을 기꺼이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오류가 묻혀버리는 까닭에 법원에 의한 사후적 구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게 된다.

2종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기업이 장래에 법률을 위반할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이에 검찰 판단의 효과성(effectiveness)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기업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검찰의 판단 경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기업은 제1종의 오류를 염려해 애초부터 책임을 피한다는 단순한 목적을 두고 과도하게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기업 성장의 정체와 직결된다.

권재열 교수는 "뿐만 아니라 1종 오류로 인한 비용이 2종 오류로 인한 비용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데 검찰의 기소결정 여부는 기업 의사결정의 위험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과도한 문서화 작업이나 의견 조회와 같이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취하는 데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면 이는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검찰이 제대로 된 판단능력이 없다면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연일 삼성을 목조르는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행보가 결과적으로 경영환경을 악화시키고 나아가 한국경제에 있어 크나큰 악재(惡材)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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