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대출 옥죄면서 "포용적 금융"... 황당한 당국
상태바
서민대출 옥죄면서 "포용적 금융"... 황당한 당국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9.05.17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경25시] 윤석헌 "한국 금융사 포용 수준, 해외에 비해 미흡"
오늘도 남탓... 서민·자영업자 금융지원 없이 기업 팔비틀기 골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이기륭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이기륭 기자

서민·자영업자 대출을 억제한다던 당국이 금융기업에 포용적 금융을 주문하는 모순(矛盾)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표변을 거듭하면서 혼란만 부추기는 갈지(之)자 행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16일 서민·자영업자에 대한 국내 금융사들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윤석헌 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2019년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포용적 금융을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자발적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금융회사의 경우 점포망 축소에도 고령층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발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경기둔화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금융애로도 지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헌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금융포용 수준은 해외 대형 금융회사에 비해 미흡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의 신뢰를 받으며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금융소비자를 중시하는 금융포용 중심으로 문화와 행태를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 치솟는 서민대출 증가를 우려하며 규제를 강화하겠다던 금융당국 수장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발언이다.

지난달 10일 금융당국은 올해 자영업자 대출 총량을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근 가계대출을 옥죄기 시작하면서 풍선 효과로 자영업자 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서민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금융당국은 6월부터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지표도 도입키로 했다. 은행권처럼 평균 DSR와 고(高) DSR 비중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고강도 규제를 의미한다.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제2금융권을 당국이 꽉꽉 조일 경우 갈 곳 없는 서민들이 사채시장으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2금융권 대출 규제는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지방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뜻 모를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서민들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숨통을 틔워 줄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 수장은 관계형 금융을 확대해야 한다느니,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느니 기업 팔 비틀기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대출 연체율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올해 1분기 금융권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0.75%로 전년 말(0.63%) 대비 0.12%p 상승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84%로 지난해 말에 비해 0.75% 올랐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가계와 자영업자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업권별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호금융과 여전업권의 연체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1분기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은 0.29%, 보험 0.61%, 상호금융 1.57%, 저축은행 4.56%, 여전사 3.15%로 집계됐다. 대출 유형별로는 여전사의 오토론, 카드대출의 연체율 증가폭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지난 수년 간 개인사업자대출을 가파른 속도로 늘리는 과정에서 상환능력 심사가 느슨하게 이뤄졌고 시차를 두고 부실이 현재화되기 시작했을 소지가 있다"며 금융회사로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대출 연체율이 상승했지만 위험한 수위는 아니라는 안일한 인식도 드러냈다.

업계에선 "어느 관료 집단보다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금융당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윤석헌 원장은 학자 시절 뚜렷한 소신을 인정 받아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취임 1년 평가는 상당히 엇갈린다. 그냥 호랑이가 아닌 종이 호랑이라는 비아냥이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의 경우 정작 서민금융은 외면한 채 금융위원회와 밥그릇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 기억만 가득하다. 급진적 성향에 치우친 탓에 금융감독원이 반(反)기업 정서로 가득찼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민·취약계층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 접근성 확대와 같은 포괄적인 개념이 아니다. 당장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저리(低利)로 대출을 받아 생계를 지탱하길 원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 탓에 매출은 급감했고 자영업자 3명 중 1명은 폐업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자영업자들에게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윤석헌 원장은 "자영업자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제공하는 경영컨설팅의 경우 생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연체율 하락으로 이어져 금융회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스스로 대책을 마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책상에서 손을 흔들며 탁상공론(卓上空論) 하기에 여념 없어 보인다. 

지난 6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소상공인 50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를 보면 자영업자들은 자금지원 확대와 세금부담 완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설문 자료가 나온 이후 수많은 언론들이 이 문제를 조명했다. 그러나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정부 당국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남탓과 무능이 어우러져 오묘한 하모니를 이룰 뿐이다. 얼마나 더 자영업자들이 무너져야 정부 당국이 꿈틀거리기라도 할지 오늘도 고구마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