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칼럼] 벤처정책, 파격이 필요하다
상태바
[시경칼럼] 벤처정책, 파격이 필요하다
  • 정준 칼럼
  • 승인 2017.01.09 0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준

정준 / 벤처기업협회장

최근들어 현 정부의 벤처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집권 5년차에 들어서면서 점검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현 정부가 벤처·창업 활성화를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창업현장은 오랜만에 과거와는 다른 활력이 느껴지고 있으며 벤처투자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벤처업계 현장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직 뭔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벤처·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우수인재 유치를 위한 스톡옵션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하고 엔젤투자를 포함해 민간투자가 증가해야 한다. IPO(기업공개) 및 M&A(인수·합병) 등의 회수시장이 활발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벤처업계나 정부의 인식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부의 벤처활성화 대책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메뉴인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개별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많은 정책들은 충분히 과감하지 않았고 여러 선진국 제도의 추격형이었지 흐름을 바꿀 정도의 파격적이고 선도형 정책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 경제가 정말로 창조경제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제도를 조금 개선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며 우리 경제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과감한 정책들이 필요해 보인다.

'엔젤투자 소득공제'가 한 사례이다. 엔젤투자는 일반적으로 창업 후 벤처캐피탈 투자를 받기 전까지 스타트업의 성장에 필요한 자금 공급원으로서 벤처생태계 조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벤처산업의 침체와 엔젤투자에 대한 각종 정책적 혜택 축소 등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암흑기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현 정부 들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엔젤투자 규모가 벤처캐피탈 규모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음과 비교할 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벤처업계는 그간 지속적으로 엔젤투자 소득공제 대상기업의 확대를 요청했다. 즉 현재 벤처인증기업으로만 국한돼 있던 대상기업을 창업지원법상 지원기업(창업 7년 이내기업)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의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엔젤투자자가 30%대에 불과하니 소득공제 가능 투자대상 기업 확대를 통해 이를 현실화 해달라는 요청이다. 

창조경제를 기치로 한 현 정부 들어 엔젤투자 소득공제 대상기업 확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대안은 업계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기존 벤처기업 이외에 추가된 대상기업이 '창업 3년 이내 기업으로 기술평가 우수기업'이었는데, 추가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바로 기존 벤처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즉, 실질적으로 투자대상 기업의 확대효과가 미미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실질적인 확대를 주장하자 지난해 정부가 제시한 추가 확대범위는 '연간 R&D 3000만원 이상 창업기업'이었다. 이번에도 9000여개로 추정되는 대상기업 중 약 50%는 벤처인증기업이 차지한다. 정부의 과감한 제도개선을 통한 엔젤투자 활성화를 기대했던 벤처업계는 실망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세형평성은 매우 중요하고 또한 비과세혜택을 늘리기 어려운 현실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엔젤투자에 대한 과세로 얻는 미미한 세수확대 효과에 비해 엔젤투자 활성화를 통한 민간 투자자금 유입은 창업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을 대체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성공한 벤처기업을 양산해 미래 세수확대를 위한 투자일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이 패러다임 변화 수준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추진하는 개혁과 세부 방안이 충분하지 않다면 향후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혹독할 수밖에 없다. 창조와 파괴적 혁신은 기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에도 필요하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