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정취 물씬, 경북 왜관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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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정취 물씬, 경북 왜관 5일장
  • 서진기 기자
  • 승인 2016.12.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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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방어의 요충지로 일찍이 물류 풍성
지역특산물 많이 내놓는 초겨울이 핫시즌

[경북 왜관 5일장]  “이기가 집에서 담근 된기장이라 하는긴디 된장하고 비슷혀 보이제? 근디 전혀 다른기라.”

방금 막 노상에 대야를 내려 놓은 할머니의 상품이 급속도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닌게 아니라 색은 된장과 비슷해 보이는데 형태와 모양새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재료가 콩이 아닌 보리란다.

처음 보는 지역 특산품에 만드는 법을 물으니 할머니는 이내 손님이 아닌 걸 눈치채고 설명해 줘도 모른다며 아예 무시를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에 옆 노점 야채 파는 할머니가 “총각 나이를 봐라. 된기장을 알 만한 나이가 아이네. 고마 하고 알려줘뿌라”고 핀잔을 주니 그제서야 귀찮은 듯 설명을 이어갔다.

“이기는 기존의 콩으로 만든 된장하고는 차원이 달라 이 지역에서만 맹글어 먹제. 그래서 외지인들은 잘 몰라.”

설명이 이어지던 중 서울에서 왔다는 50대 중년 남성이 손에 들 수 있을 만큼의 된기장을 꾸러미로 들어 올렸다.

계산을 해보니 6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 남성은 “이게 들고 갈 수 있는 최대치”라며 고향을 찾을 때마다 이곳을 들른다며 “오늘은 운이 좋아 된기장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고 연신 흡족한 표정이다.

더불어 기차 시간도 여유 있게 맞춰 시장을 둘러보는 습관까지 생겨 정신건강에 상당히 보탬이 된다는 이 남성은 다음번엔 친구들에게 이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고민이라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만큼 된기장은 현지에서도 자주 나오는 상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기분좋게 거래를 마친 할머니에게 마저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준비된 재료로 된기장을 만드는데는 약 5일이 소요된다는 비교적 간단한 답변과 생업에 연관된 부수적인 소일거리로 때때로 만들기에 본인 역시 자주 장에 들고 나올 수 없다는 대답이 다였다.

한마디로 만들고 싶을 때만 만든다는 것으로 찾는 사람에 비해 늘 공급이 부족하니 당연히 시장에서 각광받는 특산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예로부터 구미와 대구 정 중앙에 위치한 왜관은 지리적으로도 낙동강을 앞에 두고 있어 나루터와 더불어 자연스레 장과 주막이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역할이 왜관 전통시장으로 이어져 매월 1일과 6일에 5일장이 서고 있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왜관 전통시장은 평일에도 지역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붐빈다.

인구의 규모나 지방이라는 태생적 패널티를 생각해 볼 때 납득이 쉽진 않지만 시장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참기름과 떡을 취급하는 떡골목을 둘러보면 의문은 금세 풀린다.

왜관 5일장의 규모만큼이나 넓은 일명 참기름 골목이라 부르는 시장 떡골목은 왜관 시장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기 전까지 왜관 시장의 역할을 한 원조시장이었다.

자세히 보니 골목마다 40년 세월을 담은 시장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게다가 읍. 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40여 곳의 가게들이 들어차 있다. 외지인의 눈에 비친 왜관 시장의 떡골목은 그래서 의문투성이다. 아무리 봐도 인구 3만5천의 왜관이 감당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크다.

보통 다른 시장에 기름짜는 집이 많아야 2~3개 있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다. 가게 주인들은 “시장규모에 비해 기름 짜는 집이 너무 많다”고 푸념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모두 30~40년을 한 업종에 종사해 온 분들이라고 한다.

의문은 얼마 되지 않아 곧 풀렸다.

칠곡군 관계자를 수소문하여 얘기를 들어 보니 이들의 경쟁력은 가게마다 특색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주 간단 명료한 해답이다. A 가게는 기름을 잘 짜내고 B가게는 쑥떡을, C가게는 인절미를, 그리고 D가게는 송편을 잘 만든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필요할 때마다 가게를 바꿔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시장이 시작할 무렵에 생긴 3개의 떡집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40여개로 늘어난 건 순전히 각자 가지고 있는 하나씩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떡골목의 왕성한 상권은 어떻게 지금의 시장으로 옮겨졌을까? 선견지명을 가진 한 상인이 1970년대 초 시장에 들어오면서부터 변화는 일어났다.

청과상을 계획하던 이 상인은 기존 떡골목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떡골목 가장자리(현재 왜관시장)에 가게를 열었고 얼마 후 청과상을 중심으로 양쪽 100m에 가건물을 지어 5일장을 전전하던 상인들과 노점상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후 상권은 자연스레 기존의 떡골목에서 지금의 시장으로 차츰 이동하기 시작했다.

청과상 한 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주변 땅을 사고 상가를 지어 5일장을 떠돌던 장돌뱅이와 노점들을 챙긴 것이 지금의 왜관 전통시장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떡골목은 197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왜관 전통시장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5일장 분위기와 지역 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줘 관광시장으로 성장할 만한 곳이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도대체 왜관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건물들이 남아 있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칠곡군 관계자는 “왜관은 한국전쟁 당시 대구 비행장 사수를 위한 요지로, 왜관 철교 등이 낙동강 방어의 선봉이자 교두보였다”고 밝혔다.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인 까닭에 당시 주둔했던 미군 부대가 아직도 왜관에 있으며 한국 전쟁 이전에도 지역 거점 역할을 하여 근 현대사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엔 칠곡군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왜관철교를 비롯, 인근 칠곡보를 중심으로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수도권과 인근 대구에서도 자전거로 왜관을 찾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들을 왜관시장과 엮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장사할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가을과 초겨울엔 지역 특산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고 하니 왜관시장은 지금이 핫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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