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엘리엇의 위장 주주친화책"... 현대차 주총 법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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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엘리엇의 위장 주주친화책"... 현대차 주총 법리 분석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3.26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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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법 전문가 김병연 건대 로스쿨 교수 인터뷰
美 ‘Dodge vs Ford’ 판결로 본 엘리엇 요구 부당성
"기업의 존재 가치,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있지 않아"
"이사회가 내린 합리적 경영판단, 위법 없다면 존중해야"
"사내유보금, 수소차 전기차 개발 흐름 등 고려하면 정당"
자본시장법 전문가인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일 오후, 학교 로스쿨관 교수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엘리엇 주주제안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22일 막을 내린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주주총회는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메니지먼트의 주주제안 통과 여부가 최대 현안이었다. 엘리엇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문 홍보대행사를 선정해 국내 언론과 현대차그룹 주주를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이들은 현대차가 과도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주주에 대한 배당에 인색하다며 보통주 기준 21,000만원이 넘는 고액 배당을 요구했다. 엘리엇이 요구한 주주제안이 주총을 통과한다면 현대차가 준비해야 하는 배당금은 4조5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엘리엇이 요구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 안건도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 현대차와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 임원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것은 ‘이해 상충’ 비판을 받았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및 사업 재편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이사회 정원을 현행 9명에서 11명으로 늘리자는 제안 역시, 단기 차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동주의펀드의 요구사항이란 점에서 진정성에서 의심을 받았다.

엘리엇의 공세는 어느 때보다 거셌지만, 주주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주주총회 결과 현대차, 현대모비스 주주들은 엘리엇의 제안을 외면했다. 주총 표 대결 결과 엘리엇의 제안은 채 30%를 얻지 못했다. 반면 두 회사 이사회가 상정한 제안은 원안 그대로 주주들의 지지를 받았다.

주주총회는 끝났지만 엘리엇의 공세가 여기서 멈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전 세계 주요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저평가된 한국의 실정을 잘 아는 엘리엇이 투자원금을 회수해 완전 철수를 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엘리엇 뿐만 아니다. 국내외 행동주의펀드는 주주친화정책이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란 논리를 펴면서, 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안이 민감하고 인화력이 큰 만큼 행동주의펀드의 움직임은 국내 산업계와 증권전문가, 언론은 물론 정치권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쉬운 것은 이들의 요구 사안을 법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한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주주제안의 의미와 그 한계, 주주의 권리와 책임, 기업과 주주 간에 벌어지는 소송과 국내외 판례, 회사법 및 자본시장법 관련 해외 입법례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의 견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지는 자본시장법 전문가인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엘리엇 주주제안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주주총회 이틀 전인 20일 오후, 건국대 로스쿨 김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기업 관련 법제를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김 교수는 엘리엇의 제안을 항목별로 나눠 각 제안이 안고 있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엘리엇 주주제안, 법리적 측면에서 조명할 필요 있어  

엘리엇이 주주제안의 형태로 요구한 위 3개 핵심 이슈에 대해서는 그동안 “국부유출”, “경쟁사에 대한 기밀 기술 유출 우려”, “수소차 전기차 등 미래 첨단 기술 개발 흐름에 역행하는 행태”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엘리엇이 현대차와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고위 임원을 지낸 인사를 현대차의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고, 현대차가 제시한 대규모 투자계획에 반대의견을 밝히면서, “단기 차익만을 노린 행동주의 펀드의 추한 민낯을 드러냈다”는 신랄한 비판도 나왔다. 

‘주주 이익 중심주의’ 관점에서 사안을 다시 살피면 이런 행위를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주주 이익 극대화가 영리회사의 근본 목적’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논리는 ‘주주가치 제고’, ‘주주 친화적 경영 강화’ 등의 수식어를 앞세운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학술적 차원에서 엘리엇 주주제안이 안고 있는 맹점을 지적한 김병연 교수의 견해는,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의 행태와 기업의 존재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사옥 전경. 사진=시장경제DB

◆“현대차 사내유보금 확충은 존중받아야 할 경영판단” 

김병연 교수는 엘리엇이 주장한 과도한 사내유보금 및 고액배당 주장에 대해, 191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닷지자동차 대 포드자동차’(Dodge v. Ford) 사건 판례를 예로 들며 “당시 판결은 ‘회사의 존재 목적이 오직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있다’는 점을 선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 법원은 시장 및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이사회가 내린 ‘힙리적 경영판단’을 존중하고, 법원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사가 주도하는 수소차 전기차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예상하기 어렵고,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사내유보금 확충을 과하다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의 견해는 엘리엇의 주장과 크게 다르다.

엘리엇은 “기업이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일정 수준의 유보금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대차의 사내유보금 보유 비율은 경쟁사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과도하다”며 “유보금을 풀어 적극적인 배당 증액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한발 더 나아가 회사 측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공개한 40조원 규모의 선행 기술 및 신규사업 투자 계획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회사가 제시한 투자계획이 모호하고, 이것이 주주의 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김 교수는 앞서 소개한 ‘닷지(Dodge) vs 포드(Ford)’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현대차가 미래 기술 개발 및 불확실한 세계 경제 상황에 대비해 사내유보금을 확충한 행위를 주주 이익에 대한 침해로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김 교수는 “회사의 미래 기술 개발 및 이를 위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소액주주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며 “현대차의 사내유보금 확충은 존중받아야 할 경영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엘리엇의 고액 배당 요구는 과거 한국에 진출했다가 철수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행태와 같다”고도 했다.

◆“기업 존재 가치,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있지 않아” 

‘닷지(Dodge) vs 포드(Ford)’ 판결은 주주 이익 극대화를 강조하는 ‘주주 중심주의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판결이다. 해당 판결에서 미국 미시건주 대법원은 포드자동차에게 거액의 특별배당을 명령했다.

반면 ‘기업이해관계자 중심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위 판결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라는 데 의미가 있다.

위 소송에서 포드 지분 10%를 보유한 닷지 형제는 포드자동차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하나는 거액의 특별배당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포드자동차가 추진한 대규모 신규 공장 설립계획 철회였다.

1심 법원은 포드자동차 주요 주주인 닷지 형제의 청구 및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시건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특별배당 청구는 인용하면서도 공장 설립 금지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에 이르게 된 경위, 핸리 포드와 닷지 형제의 관계 등 사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닷지 형제가 포드에 요구한 사안은 엘리엇이 현대차에 제안한 그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미시건주 대법원은 닷지 형제에 대한 특별배당을 명령하면서도, 대규모 자동차공장 건립 사안에 대해서는 “포드 이사회의 경영판단을 존중한다”며 닷지 형제의 금지명령 신청을 기각했다.

◆“경쟁사 전직 임원을 현대차 사외이사로 추천... 지배주주 충실의무 위반”

김 교수는 엘리엇이 현대차그룹과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고위 임원을 지낸 인물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행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특히 그는 “경쟁사 임원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행위는 경영상 문제를 떠나 법리적 측면에서도, 지배주주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이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우리 법은 지배주주의 충실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현대모비스 이사회 정원 증원 요구에 대해서는 “이사회 정원 증원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면서도 “현대차와 경쟁 관계에 있는 사외이사를 후보로 추천하고 고액 배당을 요구한 사정을 볼 때, 엘리엇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이사회 정원 이슈를 악용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김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가치 제고’ 주장에 대해 “기업이 경영성과를 내고 수익이 증대되길 진심으로 원한다면 주주로서 출자를 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그런 건 없고 오직 배당 확대만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엘리엇의 요구는 회사의 이익,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상법의 대원칙은 물론이고 ‘지배주주의 충실의무’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편집자 주] 
‘닷지(Dodge) v. 포드(Ford)’ 판결

1903년 2월 헨리 포드(Henry Ford)는 닷지(Dodge) 형제와 자동차 부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닷지 형제는 핸리 포드에게 엔진, 변속기어 등 자동차 핵심 부품을 공급했다.

핸리 포드가 출시한 ‘Model A’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같은 해 6월 ‘포드 자동차회사’(Ford Motor Company)가 설립됐다. 설립 당시 최초 투자자는 닷지 형제를 포함해 11명이었다. 닷지 형제는 회사 지분 10%를 보유하는 조건으로 10,000 달러 상당의 현금과 현물을 출자했다.

포드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이후 급상승했다. 회사는 설립 2년 만에 주주들에게 고액 배당을 시작했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닷지 형제는 1913년 7월 핸리 포드와 결별하고 독립적인 자동차회사를 만들었다. 닷지 형제가 1914년 설립한 ‘Dodge Brothers’는 곧 포드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닷지 형제는 줄곧 포드사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매년 포드사로부터 막대한 배당금을 받았다. 1911년부터 1915년까지 닷지 형제가 포드사로부터 받은 특별배당(정규배당 제외) 금액은 4,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포드사의 배당금이 경쟁사의 자금원이 되는 현실에 핸리 포드는 1916년 7월,  연간 수권자본의 60%로 정해진 정규배당 이외에 더 이상의 특별배당은 없다고 선언했다. 핸리 포드는 “특별배당을 하지 않음으로써 확보한 자금은 향후 기업의 신규 투자 및 신제품 개발에 쓰겠다”고 말했다.

이 시기 포드사의 한 해 영업이익은 약 6000만 달러, 사내 잉여금은 약 1억1,200만 달러에 달했다. 사내 잉여금 중 현금은 약 5,400만 달러였다.

닷지 형제는 포드가 막대한 현금을 쌓아 두고 주주들에 대한 배당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같은 해 11월 소송을 냈다. 이들은 “비상시에 필요한 합리적 수준의 금액을 제외한 모든 회사 이익의 배분”을 청구했다. 이어 포드사가 추진 중이던 신규 공장 건설을 막아달라며 금지명령을 신청했다.

포드사는 자동차시장의 폭발적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디트로이트 인근 River Rouge에 대규모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1917년 12월 5일 원심법원은 닷지의 청구 및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포드사에 1900만 달러 규모의 특별배당을 명령하고, 공장건설도 금지했다.

포드는 1심 판결 직후 항소했다. 1917년 2월 이 사건 항소심을 맡은 미시건주 대법원은 원심과 다른 판결을 내렸다. 특별배당 요구에 대해서는 닷지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공장건설 사안에 있어서는 신청을 불허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공장건설 사안과 관련해 내놓은 판시이유는 그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긍정하는 밑바탕이 됐다.

재판부는 River Rouge 공장 설립에 관한 ‘경영판단의 위법성’을 다툼에 있어, 그 전제로 “이사회가 회사의 설립 목적 및 그 권한 범위 안에서 신의성실에 따라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때 재판부가 사용한 “판사는 경영전문가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유명하다.

재판부는 판시 이유를 통해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가변성, 기업의 지속가능성 등은 회사의 경영을 맡은 이사회의 판단 사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즉 이사회가 법률에 위반한 의결을 하거나, 의결과정에 절차적 위법성이 없다면, 기업의 구체적인 경영판단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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