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6> 세종과 돼지고기 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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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6> 세종과 돼지고기 식치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8.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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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픽사베이

“생고기 반입은 중지하고, 궁궐에서 소요되는 고기는 1일 돼지 1마리로 충당하라.” <세종 25년 3월 4일> 

궁궐에는 수많은 사람이 산다. 왕과 수십 명의 왕실가족, 500명 안팎의 궁녀가 상주한다. 왕을 호위하는 군사 2000여 명이 근무하고, 수백 명의 관리와 인부가 오간다. 궁궐은 3000 명 이상이 숨 쉬는 공간이다. 매일 수천 명이 먹을 식자재가 공급되어야 한다. 이중 왕과 왕의 가족 먹거리는 특별하게 신경 써야 했다.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다.

세종은 25년에 식자재 문제를 거론한다. 음력 3월은 농사를 준비하는 때다.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백성에게 진상품은 버거울 수 밖에 없다. 이를 생각한 임금은 밭의 채소 외에 특이한 나물이나 생고기를 올리지 말도록 지시한다. 세종은 생고기 금지배경을 설명한다.

"마른 고기와 제철 물건은 진상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노루와 사슴 등을 사냥하려면 심한 폐단이 있다. 또 먼 궁궐까지 옮겨야 하기에 상할 수도 있다. 이제 농사철이 시작되는데 민폐 우려가 있다.“ 

임금은 이와 함께 대안으로 궁궐에 필요한 육류는 돼지고기로 대처할 뜻을 밝힌다. 이에 대해 도승지 조서강은 “우리나라 사람은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궐내에서 어찌 쓸 수가 있습니까”라며 반대한다.

조선 초에는 돼지고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조서강은 백성도 즐기지 않는 돼지고기를 왕과 왕족, 고관들이 상복할 수는 없다고 한 것이다. 조선인의 돼지고기 기피는 다른 나라에서도 알 정도였다. 명나라 영락제는 김을현 등 조선의 사신을 맞자 먹거리에 신경 쓴다. 영락제는 광록시에 지시한다.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하라.

돼지고기는 조선 후기에도 선호되지는 않았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병이 날까봐 돼지고기를 피한다고 했다. 

그런데 세종은 왜 돼지고기 상식을 생각했을까. 이는 건강 측면에서 풀이할 수 있다. 인체에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본능이 있다. 세종은 몸에서 돼지고기가 당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은 당뇨, 안질, 종기, 부종, 설사 등 많은 질병을 앓았다. 당시 세종을 치료한 어의 중 한 명이 식료찬요를 쓴 전순의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개념의 식료찬요에는 돼지고기를 이용한 식치(食治)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먼저, 당뇨 음식이다. 당뇨는 하루에 물을 몇 말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고, 몸이 허약해지는 병이다. 이 경우 삶은 돼지 위와 된장 음료를 갈증 때마다 마신다. 고기도 씹어 먹고, 쌀과 양념을 넣어 죽으로 복용해도 좋다. 돼지 창자는 허갈과 소변에 유용하다. 본초강목은 돼지의 위는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맛이 달다’며 ‘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다음, 부종과 창만에는 잘게 저민 돼지 간을 된장 생강 산초 등을 넣어 익힌 음식으로 먹는다. 부종이 다리에서 배까지 심하게 진행되면 돼지 간을 식초로 씻고 마늘에 버무려 먹는다. 또 세종이 심하게 고통당한 안질은 껍질을 벗긴 돼지 간, 뿌리를 제거한 총백, 계란 3개를 된장에 풀어 끓인 국으로 복용한다. 간장이 허약하여 먼 거리를 보지 못하는 증상에 좋다. 

크고 작은 질환에 시달린 세종은 전순의로부터 돼지고기 음식의 효용성을 들었을 것이다. 또 복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시 조선인의 일반적 시각과는 달리 돼지고기에 긍정적이었을 수 있다. 

실제로 돼지고기는 우수한 식품이다. 지방질이 많고, 부드럽고, 열량도 높다. 특히 단백질과 비타민 B1의 함량이 높다. 돼지고기의 비타민 B1 함유량은 쇠고기와 닭고기에 비해 8~10배에 이른다. 또 비타민 B6, B12, 리보플라민 등도 풍부하다. 본초강목에서는 수은중독과 광물성 약 중독을 치료하는 효능을 들었다.

돼지고기가 찬 체질의 소음인은 설사를 일으킬 수 있지만 건강한 상태라면 체질별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이 좋다. 식치의 첫단계는 체질별 음식을 가리는 것 보다 누가 보더라도 해로운 음식을 먼저 삼가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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