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기업 살리자] 답답한 현장.. 흔들리는 풀뿌리 제조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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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기업 살리자] 답답한 현장.. 흔들리는 풀뿌리 제조업체들
  • 임현호, 이기륭 기자
  • 승인 2016.12.0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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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벼랑 몰려 감원 신드롬
썰렁한 영등포 철공소 골목.

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 100m 정도를 걸어가는 양옆에 철문 셔터를 내린 곳이 열 군데가 넘었다. 큼지막하게 '임대' 표지판을 붙인 곳도 눈에 띄었다. 문래동은 2400여 개의 부품·금형·열처리 업체들이 모인 곳이다, 한 때는 '설계도만 주면 비행기 부품을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용접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51)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볼트, 너트만 잘 깎아도 월 수백만원씩 벌었다"며 "요즘에는 하나둘씩 망해 이곳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의 밑바닥을 지탱해온 수십만 풀뿌리 중소제조업체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 기업들은 직원 수 10인 미만의 영세 기업으로, 기계부품·금속가공·봉제·인쇄 등 한국 제조업 하도급 구조의 맨 아래에 위치한다. 국내 전체 제조업 고용인원(약 392만명) 중 4분의 1이 이런 영세 소기업에서 일한다.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기 불황이 이런 소기업들부터 집어삼키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주변에는 30년 이상 사업을 해온 자존심 때문에 폐업은 안 하지만 아예 주문이 하나도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표 공업지역인 반월·시화·남동 공단에서는 최근 1년 사이 3만 명이 일터를 떠났다. 3~4년 지속된 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한 소규모 중소기업들이 인원 감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안산시 반월공단에서는 주요 교차로마다 '토지 5000평 및 건물 일체 매각'과 같은 현수막이 한두 개씩 걸려 있었다. 반월공단에는 직원 수 10인 미만에 연 매출 10억원도 안 되는 영세 도금업체들이 200여 곳에 달한다.

이곳에서 15년째 아연 도금업체를 운영하는 김모(60) 대표는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받던 주문량이 줄면서 지난달 직원 7명 중 3명을 내보냈다"면서 "가진 재산 다 쏟아붓고 남은 건 빚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도금업체의 박모(61) 대표는 "매달 400만원씩 내는 임차료를 못 벌어 공장문을 닫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직원들 줄어 텅텅 빈 반월공단.

시화공단에서 만난 금속가공업체의 여모(59) 대표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는 "5명이었던 직원을 2명으로 줄이고 집과 공장 등을 담보 잡아 5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았다"며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6000개가 넘는 인쇄 소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중구의 충무로 일대도 내수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24일 오전 서울 충무로역 뒤쪽의 인쇄소 골목에는 40여 인쇄 공장 중 20여 곳의 인쇄기가 멈춰 있었다. 동호커뮤니케이션의 김윤중 대표는 "예전에 이 골목은 인쇄물을 나르는 오토바이로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며 "지금은 보다시피 텅 빈 골목"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자금력이 취약한 소기업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왔다"고 진단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300곳을 설문 조사한 결과, 열 곳 중 세 곳(28.7%)이 '현재 경제 상황은 외환위기·금융위기에 준하는 위기 상황'이라고 답변했다고 28일 밝혔다. 실제로 인천 남동공단에 입주한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은 정상 가동률(80%)에 훨씬 못 미치는 62%에 그쳤다.

문제는 내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원장은 "내년에는 국정 혼란 지속과 미국의 보호무역 부상, 미·중 무역 마찰 등 불안 요소만 잔뜩 있다"며 "대·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제조 기반이 동반 몰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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