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0>조선시대 자자(刺字)와 현대의 문신
상태바
[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0>조선시대 자자(刺字)와 현대의 문신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7.11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KBS드라마 추노 캡쳐화면

"어린이는 뒤에 허물을 고칠 수 있고, 노인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자(刺字)는 마땅하지 않다."

세종이 11년 7월 30일 어전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날 회의 주제 중 하나는 절도범 처벌이었다. 승지 정연이 어린이와 노인이 물건을 훔쳤을 때의 처벌을 문의했다. 세종은 노인과 어린이의 자자(刺字)형에 대해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형조참판 유계문은 법률의 예외규정 마련에 반대한다. 자자(刺字)는 죄의 표기(表記)이므로 노인과 어린도 면제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판부사 허조는 사회적 약자 보호논리를 편다. 그는 노인과 어린이에게는 고통이 심한 곤장을 치는 대신 벌금을 내게 하는 법을 예로 들며 “자자의 고통은 태형(笞刑)이나 장형杖刑) 보다 심하다”고 주장했다. 세종은 법률의 계도적 성격과 함께 인정(人情)을 생각했다. 어린이에게는 교화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보았고, 노인은 삶을 영위할 시간이 얼마 없음을 고려했다. 임금은 형조에 지시했다. "70세 이상 노인과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자자(刺字)를 금하라.“

자자(刺字)는 죄인의 얼굴이나 팔뚝의 살갗에 상처를 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일이다. 글자는 범죄 내용에 따라 도살우(盜殺牛) 도관전(盜官錢) 창탈(槍奪) 절도(竊盜) 강도(强盜) 강와(强窩) 등 2자나 3자를 찍어 넣었다. 그러나 때로는 글자가 늘기도 한다. 세종 어대(御帶)의 금을 도용(盜用)한 상의원(尙衣院)의 장인(匠人) 김준과 박충에게는 도내부재물(盜內府財物)라는 다섯 글자의 형벌이 가해졌다. 각 글자는 1촌(寸) 5푼(分)의 방형(方形)이고, 매 획의 너비는 1푼 5리다.

조선이 채택한 대명률에는 자자의 부위를 팔뚝으로 규정했으나 현실에서는 처벌효과를 높이기 위해 얼굴에 많이 행했다. 팔에 ‘절도’라고 새겨도 옷으로 가리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세종 25년 6월 8일 형조에서는 절도 3범에게는 빰에 글자를 새기고 가족과 격리시키는 안을 확정했다.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경면(黥面)은 연산군 때는 노비에게도 확대됐다. 도망친 노예라는 뜻의 도노(逃奴) 도비(逃婢) 등을 새겼다. 그러나 가혹한 인권침해라는 비판 속에 조선 후기에는 점점 줄다가 영조 때는 법조문에서 사라졌다. 영조는 16년 4월 17일 우의정 유척기에게 자자(刺字)의 실행 여부를 확인했다. 유척기는 요즘에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보고했고, 임금은 영구히 없애라고 지시했다.

글자를 새길 때는 여러 개를 묶은 바늘다발을 사용했다. 바늘로 살점에 상처를 낸 후 먹물을 칠하는 방법이다. 피부는 바깥으로부터 표피, 진피, 피하조직으로 구성된다. 자자는 표피, 진피, 피하조직 모두에 상처를 내게 된다. 만약 표피에만 먹물을 입히면 글씨는 한 달이 지나면 흐려진다. 진피층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세포는 각질층까지 올라와 죽은 세포가 되어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턴오버(turn over)는 약 28일 주기다. 그러나 진피세포는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자자형은 진피 또는 피하지방까지 상처를 내는 방법으로 한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기는 것이다.

특히 자자형은 전문 의료인이 시행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단정하고 깔끔한 문신과는 달리 먹물이 피부 주위로 퍼진 게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얇은 진피층을 통과하면 피하층은 느슨한 조직이다. 이곳에 주입된 먹물은 한 곳에 있지 않고 주변으로 확산된다. 형벌인 자자는 지금의 문신과는 달리 관리되지 않은 흉터에 불과하다.

흉터는 모양에 따라 색소침착형, 울퉁불퉁 튀어나온 유형, 함몰형, 켈로이드형 등으로 나뉜다. 한의학적으로는 대부분의 흉터는 침 요법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흉터 밑바닥에 생긴 강한 결합조직을 끊어주면서 그 사이에서 생기는 새살들을 고르게 펴는 방법이다. 다만 피부 재생까지는 여러 차례 시술이 필요하다. 도침요법과 사혈요법도 도움이 된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