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8> 원경왕후의 노산과 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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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8> 원경왕후의 노산과 난산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6.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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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태종과 원경왕후 (사진 = 2008년 KBS2 드라마 대왕세종)

"중궁(中宮)이 해산을 하였다. 임금이 김여지에게 하교하셨다. 중궁(中宮)이 늘 난산(難産)을 해 내가 걱정이 많았다. 이제 경 등이 성심으로 약을 지어서 근심이 사라졌다. 마음이 매우 흡족하다." <태종 12년 6월 23일>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는 몇 명의 왕자를 나았을까. 왕실족보인 선원록에는 원경왕후 소생으로 4남 4녀가 기록돼 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세종), 성녕대군,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정선공주다. 그런데 태종 12년(1412) 6월 23일에 원경왕후가 또 한 명의 왕자를 출산한 기록이 보인다. 정선공주를 낳은 지 8년, 성녕대군을 출산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당시 원경왕후는 48세였다. 지금으로 봐도 지극히 노산이었다. 특히 원경왕후는 매 번 난산(難産)을 했었다. 

태종은 원경왕후가 왕자를 낳자 크게 기뻐하며 관계자들을 포상한다. 또 늦게 얻은 왕자의 수명을 길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양육을 맡긴다. 운명을 점치는 사람으로부터 ‘이 해에 태어난 왕자는 목숨이 길지 못하다’는 점괘를 들었기 때문이다. 태종과 원경왕후는 자식이 없으면서도 잘 키워줄 사람으로 태조의 후궁인 성빈 원씨를 택했다. 태종은 성빈 원씨를 마음의 어머니로 예우했었다. 태종은 신덕왕후는 아버지 태조의 첩으로 본 반면에 성빈 원씨는 아버지와 결혼한 계비(繼妃)로 여겨 계모(繼母)로 생각했다. 하지만 성빈 원씨에게 간 왕자는 왕실족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는 유아기에 숨진 탓으로 볼 수 있다. 

원경왕후는 모든 자녀를 힘들게 출산했다. 태종이 말한 중궁매유난산지병 여의위우(中宮每有難産之病 予以爲憂)에서 알 수 있다. 태종은 원경왕후를 아예 난산 병으로 규정했다. 원경왕후는 아들 셋을 내리 사산 또는 출산 직후 잃었다. 큰 아들인 양녕대군은 아들의 출생 순서로는 네 번째였다. 원경왕후의 출산은 지극히 난산이었던 것이다. 이로 볼 때 세종도 어렵게 얻은 아들임을 유추할 수 있다. 

전통시대에 노산(老産)과 난산(難産)이 겹치면 산모와 아기 모두 위험했다. 현대에도 35세 이상의 임신은 고위험군에 속한다. 임신 합병증을 비롯하여 임신 중 고혈압증, 조산, 난산, 산후출혈, 전치태반, 기형아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40세 이상에서는 20대에 비해 유산, 사산, 기형 위험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한다. 산모의 신체가 노화될수록 염색체 돌연변이 가능성도 커진다. 난산도 분만 시간 지연으로 모체와 태아에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다행히 의학이 발달한 현대는 노산이나 난산이나 철저한 산전관리와 충분한 영양섭취, 적당한 운동, 적절한 조치로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통시대에 산 원경왕후는 고질인 난산에 노산이 겹쳤다. 출산은 했지만 아기의 건강도는 떨어졌을 수 있다. 난산의 원인은 골산도 이상, 만출력 미흡, 태아나 태반 위치 이상, 산모의 질환 등이다. 원경왕후의 고질적인 난산은 처방 약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지속적인 난산임을 감안하면 골반의 이상, 만출력 약화, 임신중 고혈압증 등도 생각할 수 있다. 

왕실에서는 난산에 최생단(催生丹), 달생산(達生散) 등을 처방했다. 선조 37년 11월 17일 중전이 전날 밤부터 진통으로 힘들어했다. 인목왕후의 난산(難産) 기미에 어의들은 최생단과 다른 방문의 약을 썼다. 그 결과 다음 날 비로소 공주를 낳았으나 사태(死胎)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난산의 예방과 치료약으로 달생산을 들었다. 

자궁의 기혈순환을 좋게 하는 달생산은 자궁문을 잘 열리게 하고 진통시간을 크게 줄여 순산을 돕는다. 출산 1개월 전부터 복용하는 달생산을 효종비인 명성왕후는 산달에 황금을 더해 마셨다. 조선 후기 왕실 여인이 많이 복용한 달생산의 주 약재는 인삼, 자소엽, 감초, 대복피, 진피, 당귀, 지각, 백출, 사인, 백작약, 청총 등이다. 

이밖에도 태아의 비만을 막는 신침원(神寢元)과 축태환(縮胎丸), 난산과 역산을 치료하고 아기를 빨리 나오게 하는 삼퇴산(三退散), 신응흑산(神應黑散), 삼퇴육일산(三退六一散), 신험산(神驗散), 여신단(如神丹) 등도 쓰였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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