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6> 조선·일본의 외교약재와 코뿔소 뼈 '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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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6> 조선·일본의 외교약재와 코뿔소 뼈 '서각'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6.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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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태종 17년, 명나라 사신 황엄이 조선의 임금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바친다. 또 왕세자에게 선물을 드린다. 왕세자가 받은 선물은 코뿔소 뼈로 만든 허리띠인 서각대(犀角帶) 1개, 코끼리 어금니로 만든 젓가락인 상저(象筯), 수를 놓은 비단 주머니인 수낭(繡囊)이다. 당시 왕세자는 세종의 큰 형님인 양녕대군이다. 황엄이 사람을 보내 사탕(沙糖) 1그릇, 금금(衿錦) 1단(段), 상저(象筯) 20쌍(雙), 겸철토환흑광조대(鉗鐵吐環黑廣條帶) 1요(腰)를 바쳤다. 임금이 경연청에서 사신을 인견(引見)했다. 또 통역 선존의와 내관 노희봉에게 육조조계청에서 다례(茶禮)를 행하게 하였다. 황엄이 또 세자에게 서각대(犀角帶) 1개, 상저(象筯) 열 쌍, 수낭(繡囊) 하나를 올렸다. <태종 17년 7월 17일>

세종은 즉위 후 일본국과 일본의 영주들로부터 30회 가깝게 서각(犀角)을 선물 받는다. 조선에서 나지 않는 서각은 일본이나 유구, 명나라에서 구해야 한다. 조선과의 교역을 원하는 일본은 서각 등의 귀한 약재를 외교에 활용했다. 일본은 세종 5년에 서각이 포함된 수많은 남방의 약재와 특산물을 바치면서 대장경 선물을 요청하기도 한다. 

세종은 처음에는 서각 등이 포함된 일본의 선물을 거절했다. 세종 2년 11월에 대마도주 도도웅와(都都熊瓦)가 단목(丹木) 4백 근, 호초(胡椒) 1백 50근, 필발(蓽發) 50근, 서각(犀角) 1개를 보내왔다. 조선은 1년 전에 대마도를 정벌했었다. 불안한 대마도 도주 도도웅와(都都熊瓦)는 생존을 위해 세종 2년 윤1월에 조선으로의 귀속을 청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선물을 받지 않고, 사신을 예로 대접하지 않았다. 대마도주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사신은 “조선(朝鮮)을 부모처럼 우러러 섬기고 있습니다. 딴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마도 정벌은 일본과 일본 각지의 영주에게 충격이었다. 특히 조선과 인접한 큐슈 지방의 영주들은 안보 불안 해소와 경제, 문화적 실익을 위해 조선에 자주 사신을 보내왔다. 이때마다 빠지지 않는 선물이 코뿔소 뼈인 서각이었다.

서각은 조선에서 고관의 허리띠와 귀한 약재로 활용했다. 정승급인 1품 관원의 관대(官帶)를 서각(犀角)으로 만들었고, 칼집의 재료로도 사용했다. 코뿔소의 뿔 끝 부분을 가루로 만들거나 얇게 썬 서각은 해열제, 해독제 등으로 쓰인다. 진나라 이전의 고대 중국의 도교사상이 녹아있는 갈홍의 포박자에서는 ‘서식백초지독급중목지극(犀食百草之毒及衆木之棘) 소이능해독(所以能解毒)’으로 표현했다. 코뿔소는 모든 풀의 독을 먹고 많은 나무의 가시를 먹어도 능히 해독시킨다는 의미다.

성질이 찬 서각은 출혈, 토혈, 하혈, 뇌출혈에 많이 쓰인다. 본초강목에서는 약효를 심신안정, 풍독(風毒)해소, 사정(邪精), 귀신에 홀리는 귀매(鬼魅), 갑작스런 졸도, 경기(驚氣) 해소, 열독에 의한 광언(狂言) 치료, 간 보호, 독소해소, 옹저(癰疽)와 창종(瘡腫) 완화로 설명한다. ​동의보감에서는 황달과 피부 발진에 서각이 유용하다고 적었다. 원래의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에도 서각이 포함돼 있다. 현재는 개체 수가 급감한 코뿔소가 국제보호동물로 규정돼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규합총서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소개된 서각은 위(胃)에 열(熱)이 많은 경우에 쓰는 가감감로음(加減甘露飮), 눈이 약화됐을 때 쓰는 경효산(經效散), 편두통을 치료하는 궁서원(芎犀元) 등 다양한 처방에 적용됐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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