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0> 침향과 내의원 외부인 출입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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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0> 침향과 내의원 외부인 출입금지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5.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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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침향은 조선왕실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왕들은 침향이 포함된 약으로 질환 치료를 시도했다. ⓒ네이버 블로그

"앞으로 약재(藥材)의 반입과 반출 외에는, 비록 대언(代言)이라도 내약방(內藥房) 출입을 금하라." <세종 6년 2월 9일> 

1424년 2월 9일 세종은 내약방에 외부인 출입금지를 명한다. 임금이 내약방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지시한 것은 희대의 도난 사건 때문이다. 내약방의 사령(使令)이 진상약(進上藥)과 침향(沈香)을 도둑질한 것이다. 내약방은 왕실의 전용의료기관이다.

조선 개국과 함께 설치돼 세종 25년(1443)에 내의원, 고종 때는 태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령(使令)은 관청에서 심부름이나 죄인에게 곤장을 치는 등을 업무로 한다. 내의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사령이 임금 전용 약제실에 들어가 진상약과 침향을 훔친 것이다.

세종은 이를 국왕 경호 시스템 붕괴로 보았다. 임금의 건강을 다루는 특수 의료기관 약품 보관실에 비표도 없는 비의료인 출입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이에 관련 책임자인 지신사 곽존중과 동부대언 정흠지가 대죄를 청했고, 임금은 향후 대책으로 고위관료라도 관계자 외에는 내약방 출입금지를 명한 것이다.

하지만 20년 후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세종 27년 3월 14일 내의원의 하인 두 사람이 주사(朱砂)와 침향(沈香)을 빼돌려 팔다가 적발됐다. 임금의 약을 손댄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국문이 열렸고, 임금은 승정원에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한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 도난 사건은 모두 내부자 소행이었다. 

임금을 위한 약재임에도 불구하고, 내의원의 내부자를 유혹한 약재가 침향이다. 세종실록에 23차례가 기록된 침향은 당시 금 보다 귀했다. 남쪽나라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생산되는 침향은 주로 일본의 중개무역을 통해 공급됐다. 

일본은 침향을 바치면서 대장경판(국보 제32호) 선물을 요청한다. 그만큼 가치를 높게 여긴 것이다. 임금은 양국 우호증진을 위해 대장경 양도를 고려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반대를 하자 고민한 뒤 “한자판은 조종조로부터 서로 전하는 것이 다만 한 부 뿐”이라며 일본의 청을 거절했다.

침향은 일본에서 계속 공급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구하기 어려워졌다. 조선에서 값 후려치기로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일본인이 공급을 포기한 것이다. 임금은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건전한 상거래를 지시한다. 

“침향은 명나라에서 수입하기 어렵고, 왜에서 많이 가져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헐값으로 사려고 했다. 그들은 다시는 침향을 갖고 오지 않는다. 침향은 왜에서도 나지 않는다. 왜인도 다른 나라에서 구해온다. 비록 그 값의 갑절을 준다 하더라도 가할 것이다.” <세종 14년 10월 20일>

침향은 조선왕실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왕들은 침향이 포함된 약으로 질환 치료를 시도했다. 숙종이 변비와 소변을 다스리기 위해 팔미지황탕에 침향을 더했고, 몸이 허약한 경종은 신비침향환으로 심신 안정을 꾀했다. 침향은 외교 약재로도 활용됐다. 일본이 대장경을 구하기 위해 세종에게 침향을 바쳤고, 명나라는 조선에게 원병을 청하면서 인조에게 침향을 선물했다. 당시 명나라는 청나라에 밀려 조선의 힘을 빌려야 할 처지였다.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진 침향은 전신에 약효가 미친다. 두뇌는 맑게 하고, 위와 장은 보하고, 남성의 정력은 키운다. 소변이 잦고, 하복부가 차거나 월경불순에도 효과적이다. 호흡이 곤란한 만성기관지천식, 급성위장염, 혈관운동성장애, 허약체질에도 보조약재로서 효능이 뛰어나다.

본초강목에서는 ‘삿된 기운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명나라 본초학 연구서인 이시진(李時珍)에서는 ‘상열하한(上熱下寒), 상기(上氣), 천식에 유용하다. 변비와 기울(氣鬱)이나 기허(氣虛)가 원인인 약한 소변, 양기(陽氣) 부족 때 처방한다’고 안내했다.

동의보감에서도 ‘성질이 뜨겁고, 맛이 맵고, 독이 없다’고 설명한 침향은 항균, 기관지, 천식, 관절 등에 효과가 좋다. 이에 따라 공진단을 비롯하여 고총침환(古蓯沈丸), 고침부탕(古沈附湯) 등 다양한 처방의 약재로 활용된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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