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26> 세종과 산약의 인연, 식치음식 구선왕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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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26> 세종과 산약의 인연, 식치음식 구선왕도고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5.0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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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산약은 야산에서 자생하는 마의 뿌리줄기를 말린 한약재다. =픽사베이.

이동영이 산약(山藥)을 임금께 올렸다. 임금이 그를 영릉참봉(寧陵參奉)에 제수했다. 헌부(憲府)에서 아뢰었다. 

"이동영은 고령 관노(高靈 官奴)의 자식입니다. 그가 예전에 격쟁하여 천릉(遷陵)할 것을 청하고, 이번에 산약(山藥)을 올린 것은 모두 상은(上恩)을 바란 행위입니다. 벼슬을 내릴 수가 없거늘, 하물며 영릉참봉이 어인 일입니까. 영릉참봉은 선비를 임명해야 합니다.“ <숙종 15년 1월 18일>

영릉은 세종대왕의 능이다. 노비가 산약을 올리자 숙종이 그에게 영릉참봉 벼슬을 내렸다. 이에 사헌부에서 들고 일어선 것이다. 벼슬할 수 없는 천민인데, 더욱이 왕실에서도 상징성이 큰 영릉의 관리자 임명이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숙종은 그의 영릉참봉 제수를 철회하고, 같은 등급의 다른 직으로 가도록 했다.

관청의 노비인 이동영은 약재 산약으로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산약은 야산에서 자생하는 마의 뿌리줄기를 말린 한약재다. 소화기능 촉진, 기(氣)와 진액 보충, 폐(肺)와 신장(腎臟) 강화, 담 제거, 두통과 어지러움 완화, 진정, 체력보강 등의 효과가 있다. 단백질과 무기성분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이다. 산약은 예부터 한약재나 구황식품으로 활용됐다. 

산약은 고대에서부터 사랑받았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멸하고 제후국에 봉하면서 특산물인 마를 조공 받는다. 백제의 무왕은 익산지방에서 마를 재배하던 아이였다. 

산약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식치 음식인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의 재료로 활용된다. 왕이 간식으로 즐긴 구선왕도고는 한약재로 만든 약 떡이다. 면역력 증강, 비만 억제 효과가 있다. 세종대왕은 젊은 시절에 몸이 비중했다. 비만과 운동부족은 많은 질병을 야기한다. 게다가 막중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임금은 당뇨, 신경통, 관절염, 안질 등 여러 질환에 시달렸다. 

세종시대 어의 중 한 명이 전순의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개념의 식료찬요를 쓴 그는 식치를 실천한 의사다. 조선시대 대표 식치 음식이 구선왕도고다. 세종은 생활 습관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구선왕도고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종이 구선왕도고를 섭생한 기록은 없다. 세종의 생활습관 질환과 어의 전순의가 식치를 한 점을 미뤄볼 때 개연성만 있는 것이다. 

세종은 구선왕도고의 완성품은 아니어도 재료 복용 가능성이 높다. 산약처럼 여러 음식이나 탕약에 포함되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구선왕도고에는 산약 외에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백복령, 연꽃의 열매인 연자육, 엿기름인 맥아, 콩과의 넝쿨풀인 백편두, 가시연밥의 열매를 말린 감인, 곶감의 분말인 시상, 닷맛을 내는 사당, 성인변 예방 효과가 있는 율무가 포함된다.

부작용 없는 아홉 가지 약재로 구성된 구선왕도고에 대해 동의보감은 ‘비장과 위장을 보해 소화력을 촉진하고, 입맛을 돋우고, 신장의 기운을 북돋아 원기회복과 면역기능을 길러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림촬요에서는 ‘정(精)을 기르고, 원기를 도와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 음식을 당기게 하고, 허손을 보하고, 새살이 돋게 하고, 습열을 제거한다’고 설명했다.

인조는 국상으로 인해 하루에 다섯 차례나 곡을 했다. 이에 신하들이 기력 보양 차원에서 구선왕도고 진어(進御)를 청한다. 약 떡으로 요기하면 허기가 가시고, 체력도 회복됨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인조는 “병이 나지 않았다”며 손을 내저었다.

숙종은 32년 8월에 재상인 윤증이 위중하자 어의를 보낸다. 윤증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며 진찰한 어의는 ‘약으로 구선왕도고를 써야 합니다’ 라고 임금에게 편지를 올렸다. 이에 임금은 구선왕도고와 인삼 1근을 윤증의 집에 보냈다.

세종이 즐겼을 것으로 추측되는 구선왕도고는 조선 중후기에는 왕실에서 일반화되고, 대신에게도 치료용으로도 하사된 음식이자 약이다. 요즘에는 왕실의 다이어트 떡으로 예쁘게 포장돼 출시되고 있다. 시민들이 왕의 식치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고, 몸매도 관리하게 된 것이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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