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9> 왕들의 감기와 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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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9> 왕들의 감기와 식치
  • 최주리
  • 승인 2018.04.0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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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편집자 주> 
민간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수분보충과 면역력 증강을 위해 도라지를 차로 마셨다. =픽사베이

"요즈음 전하께서 감기로 인하여 평안하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진선(進膳)은 평상시와 같습니다." <세종 24년 1월 3일>

세종은 명나라와의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익을 위해 명나라 사신을 환대했다. 사신은 오래 머물면 한 달도 체류한다. 기간이 길면 왕이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것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때는 신하를 대신 보낸다.

신하는 통상적으로 임금의 몸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장 흔한 게 감기다. 세종 24년 1월 3일 도승지 조서강은 명나라 사신을 방문, 임금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명나라 사신은 “임금의 감기가 심하지 않고, 수라를 잘 드신다니 진심으로 기쁘다”고 말한다.

세종은 열흘 후에는 우부승지 강석덕을 사신과 만나게 한다. 역시 왕이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감기였다. 임금은 미각을 잃지 않았다. 이는 심한 감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감기는 글자 그대로를 보면 외부의 나쁜 기운(氣)이 몸에 들어온 것(感)이다. 좋지 않은 기운은 차가운 한기(寒氣)와 바람인 풍기(風氣)가 많다. 때로는 몸의 컨디션이 떨어지는 심리적 기분이나 기운도 의미한다. 몸이 으스러지게 춥고 떨리는 것은 외부의 풍한사를 이겨내려는 몸의 저항이다.

심한 감기가 아니면 약 보다는 음식으로 생리적 기능을 높이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현대 의학으로도 감기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감기는 150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감기 유무는 면역력에 크게 좌우된다. 화학 작용을 하는 약만으로 생리기능을 활성화하고 저항력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감기는 공통 반응에 개인의 면역력에 따라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감기를 
한의학에서는 정기(精氣)를 키우는 방법으로 해소한다. 동의보감 잡병 내상문에서는 치료에서 약 보다 음식이 우선임을 설명한다. 

"몸을 편안히 하는 근본은 음식이고, 질병 치료는 오직 약물에 달려 있다. 바르게 먹지 못하면 생명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고, 약성에 밝지 못하면 질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음식은 사기(邪氣)를 물리쳐 장부를 편안하게 하고, 약은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천성을 길러 기혈을 돕는다. 자식 된 도리로 음식과 약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 임금이나 부모에게 질병이 있으면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고, 낫지 않으면 약을 쓴다. 그러므로 효자는 음식과 약 두 가지의 성미(性味)를 깊이 알아야 한다."

동의보감은 특히 허약한 노인은 감기 기운이 있어도 고한(苦寒) 약물이나 한토하삼법(汗吐下三法)처럼 강한 치료법은 삼가도록 했다. 이는 노인과 허약자에게는 식치법(食治法)을 추천하는 의미다.

감기에는 큰 범주의 음식인 약차(藥茶)가 많이 애용됐다. 특히 왕실에서는 약차를 장복했다. 승정원일기에는 가벼운 감기에 복용한 차로 소엽다(蘇葉茶), 갈근다(葛根
茶), 인동다(忍冬茶) 등이 기록돼 있다. 

소엽다는 소엽가지로 끓인 차로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맛이 난다. 곽란(霍亂), 기체(氣滯), 담음(痰飮)에 좋다. 소엽을 생강과 함께 끓이면 소강다(蘇薑茶), 귤껍질과 함께 음용하면 소귤다(蘇橘茶), 칡뿌리인 갈근과 함께 사용하면 소갈다(蘇葛茶)나 갈근소엽다(葛根蘇葉茶)가 된다. 모두 초기 감기에 효과가 뛰어나다.

의방유취와 식료찬요에는 감기에 걸리면 따뜻하게 먹고, 땀을 내는 방법으로 소엽과 생강으로 쑨 죽 처방법이 실려 있다. 영조는 추운 날에 왕릉을 찾을 때 감기 예방과 치료 차원에서 소엽다를 마셨다.

민간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수분보충과 면역력 증강을 위해 도라지를 차로 마셨다. 도라지는 기침과 가래, 염증,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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