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8> 세종의 눈병 정복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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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8> 세종의 눈병 정복 선언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3.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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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편집자 주>

 

픽사베이

“나의 안질(眼疾)은 이미 나았다(予之眼疾則已矣)!” 세종은 승하 1년 전에 눈병 완치를 선언했다. 20여 년 고통받아온 안질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세종은 31년 12월 3일 신하들과 온천 요양에 대해 의논했다. 임금은 말하는 불편함이 조금 가시고, 오른쪽 다리 통증이 호전되었으나 왼쪽 다리가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설명했다. 신병 치료차 온천 행을 검토 중인 왕이 유일하게 안질은 고쳤음을 이야기 했다.

세종은 안질로 긴 세월을 고통스러워했다. 왕이 눈병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은 21년에 보인다. 7월 2일에는 숙질(宿疾) 발작과 안질의 아픔을, 7월 4일에는 눈병으로 오랫동안 나라 일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임금은 눈병 악화를 설명하며 세자에게 강무를 진행하도록 지시한다. 숙질은 오래된 고질병이고, 강무는 사냥을 겸한 군사 훈련이다.

그러나 세종은 이미 눈병을 앓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임금은 16년에 대제학 윤회 등에게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하도록 했다. 신하들이 정리한 원고를 왕은 매일 밤마다 읽으며 오류를 바로 잡았다. 12월 11일 임금이 독서의 즐거움을 이야기 한다.

“요즘 편찬한 내용을 보는 가운데 독서의 유익함을 알았다. 총명이 날마다 더하고 잠이 많이 줄었다." 이에 윤회는 "밤에 가는 글씨를 보면 눈병이 날까 두렵습니다"라고 걱정했고, 왕은 "경의 말이 옳다. 내 조금 쉬겠다”고 답했다.

지독한 독서로 인한 눈병 발병은 23년 3월 20일 실록에서 엿볼 수 있다. “임금이 모든 일에 부지런하였고, 글과 전적(典籍)을 밤낮으로 놓지 않고 즐겨보다 안질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왕도 눈의 혹사를 이야기한다.

“책을 반쯤 읽은 뒤 눈을 감고 쉬어야 다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세종 24년 8월 24일>

동의보감은 눈을 많이 사용하면 혈(血)과 눈이 손상되고, 지나친 독서는 간(肝) 손상, 풍열(風熱)로 눈을 침침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에 앞선 13년 5월 6일 기록에는 잘 안 보이는 눈을 치료하는 제주의 의녀 효덕에게 쌀과 콩 5석 등을 내려준다. 이로 살피면 세종은 안질로 20년 정도 고생한 셈이다.

왕의 눈병은 온 나라 사람의 걱정이 되었다. 27년 3월 16일에는 온양에 사는 90세의 노인 문을경이 안질약을 바친다. 임금은 노인에게 옷과 신발, 쌀 3석을 하사한다.

세종은 23년 3월 온양에서 온천을 해 효험을 보았다. 온천욕을 한 지 보름 후인 4월 4일 임금이 문안 온 도승지 조서강에게 말한다.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는 걷기에 어려웠다. 온천에서 목욕한 뒤에도 효험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젯밤에는 본초강목의 작은 글씨인 주석(註釋)도 읽을 만했다.”

조서강 등은 “안심하시고 오래 목욕하시어 영구히 치유되게 하옵소서.”라고 온천 치료를 더 청했다.

이 무렵의 세종의 증상은 심각했다. 실명 직전으로 병이 치유된 것이다. 2년 전인 21년 6월 21일 기록에서 살필 수 있다.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리고, 오른쪽 눈도 어둡다. 한 걸음 앞에 있는 사람도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왕은 1년 뒤에는 “온정(溫井)에서 목욕한 이후 눈병이 더욱 심해졌다”고 토로한다. 이천과 온양 등에서 온천을 했지만 예전과 같은 효험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온천의 약효 가능성은 의식했다. 26년 윤7월 22일에는 눈병 환자들을 초수에 보내 치료 효과를 시험하게 한다.

한의학의 안질치료는 단기적인 증상해소와 함께 인체의 균형을 잡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처방을 한다. 왕들은 온천욕 등과 함께 침을 맞기도 했다. 광해군은 눈병이 심하자 침을 맞고 휴식을 취했고, 현종은 눈 이물감과 통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일 침을 맞았다. 숙종은 왼쪽 안질로 물체 분간이 어렵자 탕약과 침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온천행을 결정한다. 영조는 국화의 일종인 감국을 안약으로 사용했다. 또 베개 속에 감국을 넣어 향기치료도 시도했다. 신농본초경은 안구건조증에 감국이 효용성을 설명했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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