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7> 왕의 치아관리와 치통으로 사직하는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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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7> 왕의 치아관리와 치통으로 사직하는 신하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3.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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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편집자 주>
픽사베이

"화지량 만호(花之梁 萬戶) 박장수가 졸곡(卒哭) 전에 고기를 먹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사람을 때려 이(齒)를 부러뜨렸습니다." <세종 4년 10월 21일>

형조에서 종4품의 무관인 만호 박장수의 비행을 임금에게 보고한 실록 내용이다. 세종은 상을 당한 처지인데도 음주가무에, 고기를 먹고, 사람의 치아를 부러뜨린 박장수의 직첩(職牒)을 빼앗고, 곤장 1백 대의 벌을 내린다. 직첩은 관리의 임명장이다. 

최주리 한의사

세종실록 11년 8월 15일 기사에는 대제학을 지낸 이행(李行)의 사직 상소가 실려 있다. 79세의 고령인 이행은 건강 악화로 업무수행 불가능함을 아뢴다. 

"이(齒)가 다 빠지고, 다리에 힘이 없습니다. 일어나고 서는 것이 힘들고, 먹고 마시는 일이 더욱 어렵습니다. 기침도 가끔 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싶습니다. 원컨대 부모의 분묘(墳墓)가 있는 강음(江陰)에 돌아가 여생을 마치게 하여 주소서." 

임금은 이행이 고령으로 치아 상태 등이 심히 악화된 것을 보고 사직을 허락했다.

세종 22년 3월 24일에도 좌찬성 이맹균이 역시 노쇠를 이유로 사직을 청한다. 70세인 그는 "이(齒)와 머리(髮)가 이미 쇠(衰)하고, 병도 심하고, 정신이 혼모(昏耗)하고, 걷기가 어렵다"고 아뢰었다. 그러나 그는 세종의 윤허를 받지 못해 퇴직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옛사람을 심히 버겁게 한 게 치주질환이다. 노화로 치아가 거의 상실된 경우나 사고로 치아가 손상된 경우나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치통의 공포는 임금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조선에서 치아가 가장 약한 왕이 성종이다. 극심한 통증에 성종은 중국 사신에게 약을 구하도록 한다. 임금의 질환은 국가의 기밀사항이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1년 넘게 여러 약을 썼음에도 고통이 계속되자 성종은 중국 사신에게서 약을 구하게 한 것이다.

성종은 또 노비 출신의 여의사 귀금에게 치료 비법을 공개하라고 강요도 한다. 귀금은 치충(齒蟲) 치료의 명의인 장덕의 제자다.

성종은 11년 7월 21일 중국 사신 환송연을 베푼다. 사신이 술을 올리자 성종은 치통(齒痛)을 이유로 거절한다. 왕은 사신에게 받은 곡소산(哭笑散)을 먹고 치통이 조금 덜한데, 술을 마시면 다시 아플 것을 걱정한 것이다. 이에 사신은 "제게 진통약이 있습니다. 청컨대 다 드시옵소서"라고 했고, 임금이 드디어 다 마셨다. 곡소산은 사향, 유황, 웅황, 후추 등을 혼합한 약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치통의 원인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다. 풍열(風熱), 풍랭(風冷), 열(熱), 한사(寒邪), 독담(毒痰), 어혈(瘀血), 충식(蟲蝕)이다.

풍열은 몸이 뜨겁고, 치은이 붓고, 고름이 생기고 악취가 난다. 풍랭은 허증으로 충치가 없고, 잇몸이 붓지 않으나 치아가 흔들린다. 열은 위에 열(熱)이 쌓여 잇몸이 붓고 구취가 난다. 한사는 차가운 것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전신질환과 연계된다. 독담은 가래와 기침이 심하다. 이비인후과 질환과 연계돼 있다. 어혈은 잇몸의 풍열로 피가 나고 담이 생겨 바늘로 찌르른 듯한 아픔이 있다. 충식은 벌레가 이를 갉아먹고, 간혹 음식 찌꺼기가 끼어 발생하는 질환이다. 

현대의학 용어로는 치은염, 치주염, 풍치, 구강염, 구취로 볼 수 있다. 동의보감은 이 같은 치통의 근본 원인을 위(胃)의 습열(濕熱)과 풍사(風邪)로 보고 있다.

구강질환 치료의 한 방법을 위열 처치에서 찾는다. 치아가 입, 잇몸, 치아와 경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위와 장에 열이 쌓이면 구내염 등 구강과 치주질환과 입 냄새를 유발한다. 풍치는 자극성 음식, 위열 등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위의 열을 없애면 치통의 일부와 구취 해소가 된다. 
  
처방 중 하나가 사위열탕(瀉胃熱湯)이다. 동의보감은 위열로 인한 잇몸 부기, 잇몸 염증, 잇몸 허는 증상, 치통, 구취 용도로 설명한다. 치통과 구취 예방에 좋은 사위열탕은 박하, 당귀, 천궁, 생지황, 황련, 적작약, 치자, 방풍, 목단피, 형개, 감초가 들어가 있다. 그러나 속이 냉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청위산(淸胃散)도 위열로 인한 치통, 몸에 열이 오르고, 얼굴이 붓고, 머리가 땅기는 증세에 처방한다. 청위산에는 황련, 승마, 당귀, 목단피, 생지황 등이 포함돼 있다. 위의 열을 내리는 처방에는 가감감로음(加減甘露飮), 용뇌계소환(龍腦鷄蘇丸)도 일반적이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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