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6> 효행 장려와 정신분열증인 전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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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6> 효행 장려와 정신분열증인 전광증
  • 최주리한의사
  • 승인 2018.03.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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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전라도 고산현의 아전 석진(石珍)의 아비가 바람병(風疾)으로 날마다 한 번씩 발작하면서 기절하였다. 석진이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애절하게 기도하며 널리 약을 구하였다. 어느 날 중(僧)이 말했다. “네 아버지가 광질(狂疾)이 있다니, 참 그런가. "석진이 놀랍고 기뻐하며 증세를 자세히 말했다. 중은 “그 병은 산 사람의 뼈를 갈아 피에 타 먹이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석진은 자신의 무명지(無名指)를 잘라 피에 타 아버지에게 드렸다. 병이 조금 호전됐고, 두 번째 드리니 병이 다 나았다. <세종 11년 3월 14일>

전라도관찰사 신호는 고산현에 사는 석진의 효성을 임금에게 보고했다. 신호는 석진이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해 부모를 섬긴 것은 권장 사항은 아니라는 전제를 했다. 그러나 3가지 이유를 들어 정려(旌閭)를 청했다.

첫째, 아버지가 병든 4년 동안 자기 옷끈을 한 번도 풀지 아니하고 좋은 음식을 한 번도 먹지 아니해 파리한 몸이 되었다. 둘째, 날마다 의원과 약을 구하느라 동리 사람이나 족친들의 모임에도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셋째, 부모의 낯빛을 살펴 가며 순하게 받들 뿐, 마음을 거스른 적이 없다.

최주리 한의사

유교의 효 사상을 온 나라에 깊게 전파하려는 세종은 정려문을 세우게 하고, 석진을 아전의 업무에게 빼주게 했다. 이와 비슷한 효도는 세종실록 11년 3월 14일 기사에도 나온다. 서흥(瑞興) 사람 김여도의 딸 김효생이 주인공이다. 12세 소녀인 김효생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광질(狂疾)을 앓는 아버지를 치료했다.

광질(狂疾)은 정신분열증으로 미친병이다. 조선시대 의원이나 위정자는 광질 치료에 사람 뼈가 무관함을 알고 있었다. 의학적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잡술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의 백성은 일부 미혹되기도 했다. 석진과 김효생도 오로지 아버지 치료 일념으로 의학적 근거를 따지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하게 치료가 되었던 것이다. 세종은 백성에게 효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포상을 했다. 이에 일부 고을의 백성과 관리는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로 병이 위중한 부모나 남편을 살렸다는 허위보고도 했다.

이에 신료들은 단지 행위의 포상 중지를 요청했으나 세종은 “효행정신을 널리 전파시키는 게 더 가치 있다”며 계속 포상을 했다.

정신병인 광질은 연산군도 걸린 적이 있다. 연산군일기 11년 9월 15일 기사에는 ‘왕이 두어 해 전부터 광질(狂疾)을 얻었다. 때로 한밤에 부르짖으며 일어나 후원을 달렸다’는 내용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광질(狂疾)을 광증(狂症), 전광(癲狂)으로도 표현한다. 증상이 양(陽)의 성질이면 광증(狂症), 음(陰)의 유형이면 전증(癲症)으로 분류한다. 황제내경의 난경 오십구난(五十九難)의 논광전지병(論狂癲之病)에서는 ‘광증은 처음에 잠이 적고, 배고픔을 모르고, 자기를 귀하고 높게 여기고, 웃고, 노래하고, 떠들고, 마구 행동한다. 전증은 초기 발작 때 우울해하고, 반듯한 눈길로 무엇을 본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광증은 움직이고, 떠들고, 화내고, 욕하는 특징을 보인다. 정신분열증의 긴장형과 조울병의 조병에서 많이 나타난다. 전증은 조용히 침묵하고, 조리 없이 말하고, 멍한 상태가 많다. 정신분열병의 망상형이나 조울병의 울병 요소가 강하다. 이 증상은 침울과 어지러움 속에 졸도도 한다.

세종 때 고산현의 석진의 아버지는 날마다 졸도를 하고 한참 후에 깨어났다. 전광증에서 전증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전증은 유전, 심혈부족, 간질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치료는 담기울혈의 제거, 정신착란, 심신쇠약, 치매, 남성관심, 변비유무, 지속기간 등의 유형에 따라 탕약이 다르다. 주로 많이 쓰는 처방은 황련사심탕(黃蓮瀉心湯)을 비롯하여 영지화담탕(寧志化痰湯), 양심탕(養心湯), 가감온담탕(加減溫膽湯), 감맥대조탕(甘麥大棗湯), 화광단(化狂丹) 등이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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