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기의 힐링타임] 스크린은 아직 판타지에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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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기의 힐링타임] 스크린은 아직 판타지에 목마르다
  • 정선기 소장
  • 승인 2018.03.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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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러너:데스큐어’, ‘패딩턴 2’ ‘조선명탐정’ 등 아직도 판타지 영화가 인기

지난 연말,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 지옥을 무대로 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낸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은 과거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어바웃 타임> 등 연말 스크린에서 흥행을 거뒀던 판타지 장르로 승부를 걸어 새해 초에 첫 천만 관객을 달성하고 개봉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박스오피스에 머물며 롱런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1400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어 역대 개봉영화 흥행 순위에서도 <명량>에 이은 두 번째 흥행작에 올랐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이라는 풍습을 소재로 또 다른 사후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디즈니와 픽사가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 역시 올해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데 힘입어 누적 관객수가 330만 관객을 돌파했고, <신과 함께>와 더불어 판타지 열풍을 주도했다.

하지만, 아직도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은 판타지에 목마른 것일까. 영어덜트 SF 판타지 시리즈의 완결편인 <메이즈 러너:데스큐어>가 한 동안 박스오피스에서 머물렀고, 말하는 곰이라는 캐릭터 설정을 통해 실사와 에니메이션을 결합한 가족 코미디 영화 <패딩턴 2> 역시도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 설 연휴에도 판타지를 접목해 소개된 <조선명탐정> 시리즈 3편은 판소리 고전 '흥부전'을 재해석한 <흥부>와 강동원의 원맨쇼가 빛났던 <골든 슬럼버> 등 화제작에 우세를 나타냈다. 설 연휴가 지난 이달 말에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스테디셀러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영화 <나미야잡화점의 기적>도 개봉 예정이며, 내달 초 아카데미시상식 후보작들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스크린에서의 판타지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영화사

◇ '조선명탐정3', 웃음 짝패의 해학속 한국판 '엘사' 김지원의 존재감

영화 <조선 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은 괴마의 출몰과 함께 시작된 연쇄 예고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김민-서필 콤비가 묘령의 여인 월영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지난 2011년부터 코믹 사극으로 명맥을 이어오며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시리즈물로 자리 잡았다. 웃음 짝패의 위트 넘친 몸개그 해학과 입담을 따라 웃다가 보면, 흡혈귀 이야기를 소재로 괴마가 되지 않기 위해 힘을 제어해야 하는 월령 역의 김지원에 주목하게 한다.

전편에 출연한 한지민, 이연희가 김명민-오달수의 메인 캐릭터에 부속되고 수동적인 캐릭터였던 것과 달리 김민-서필과 함께 살인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는 월령(김지원 분)의 캐릭터는 이야기를 주도하는 능동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힘을 제어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를 떠올리게 한다.

설날 연휴에 <블랙 팬서>와 더불어 박스오피스에서 호조를 보인 <조선 명탐정> 3편에서는 한(恨)을 주제로 관객들의 관심이 쏠렸던 영화 <신과 함께>를 의식해서인지, 기존 탐정 추리극 장르에 더해 동양적 정서를 강조한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성찰한 '죄와 벌' 판타지가 눈길을 모았다.

설 연휴에 강세를 보이는 코미디 장르는 명절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리라는 것 같았고, 조선 시대에 초자연적인 흡혈귀의 연쇄 살인극이라는 이야기 구성은 <혈의 누><임금님의 사건수첩> 등을 떠올리며 우리 고유의 판타지 스토리를 더해 볼거리가 배가됐다. 김지원은 극 중 비밀스러운 사연을 지닌 홍일점 캐릭터로 채 등장, 사차원의 엉뚱함과 시크함을 매력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지원 외에도 신출귀몰하는 묘령의 흑도포 역을 맡은 이민기, 카리스마 있는 장군으로 변신한 김범 등 기존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꽃 미모 스타들로 인해 눈호강까지 시켜준다.

사진=영화사

◇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로봇을 통한 생의 아이러니 통찰

사이버 펑크 SF영화의 고전이 된 <블레이드 러너>의 메가폰을 잡은 SF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관객을 향한 애정이 담긴 <블레이드 러너:파이널 컷>도 설날 연휴에 CGV 단독으로 국내 스크린에 정식 개봉하며 판타지 열풍에 동참했다. 지난해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속편으로 개봉해 내달 초 개최되는 아카데미시상식 후보에 올라 SF 영화의 바이블처럼 여겨졌던 <블레이드 러너 : 파이널 컷>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82년에 국내 개봉관에 처음 공개된 후 팬덤을 형성하면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재편집 과정을 통해 무려 5개의 판본을 만들었고, 1992년에 발표한 '디렉터스 컷'에 장면들이 추가되고 디지털 복원 과정을 거쳐 지난 2008년 제 2회 충무로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필자에겐 파이널 컷의 엔딩이 모든 버전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주인공의 내래이션으로 인해 관객에게 종영 후에 여운을 허락하지 않았던 오리지널 컷과 달리, '파이널 컷'은 극 중 복제인간 헌터로 변신한 형사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의 정체성과 다양한 은유가 곳곳에 숨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조명한 '명불허전' 고전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인조 인간 로봇(휴머노이드)을 통해 생의 아이러니를 통찰한다. 기술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 인류가 맞이하게 될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며 30여 년 전 영화 속 배경이 되는 2019년을 그려냈는데, 아직 한 해가 남았지만 실제로도 그러한 듯 보인다.

영화 속에서 낮이 사라진 듯 햇빛이 자취를 감추고 네온에 의지해 살아가듯 우리나라의 하늘은 중국발 미세먼지 공포로 회색빛에서 흙빛으로 변해버렸고, 구글의 다양한 서비스를 비롯해 자신의 GPS(위치 정보)를 제공해야 스마트폰에 내려받은 지도앱이나 버스도착정보 등을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CCTV, 블랙박스, 통신망과 소셜네트워크는 흑암 속 감시와 통제 사회를 그려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의 섬뜩한 기시감을 전한다. 특히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가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 또는 침해한다며 '판옵티콘(Panopticon)'이라 비유해 경고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처럼 영화 속 세계는 현대 사회에 대한 묵시적 예언처럼 다가온다.

게다가 영화음악가 반젤리스의 여운 깊은 사운드트랙과 함께 극 중 타이렐 회장(조 터겔 분), 레이첼(숀 영 분), 개프(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 분) 그리고 로이(룻거 하우어 분)의 주옥같은 명대사는 귀 호강을 시킨다. 또한, 30여 년 만에 스크린에서 되살아난 숀 영의 고혹적인 자태는 눈부시고, 그녀의 옷차림은 최근 유행하는 오버핏 패션을 예견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사진=영화사

◇ '셰이프 오브 워터', 교감과 소통이란 근원적 욕망 그려낸 판타지 로맨스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 최다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세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우주개발 경쟁이 과열된 1960년대 미소 냉전 시기에 미국 볼티모어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을 배경으로 언어 장애를 겪는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가 괴생명체(벤 위쇼 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낸 로맨스 판타지 영화이다.

환상적인 상상 속 세계가 현실에 오버랩되는 15분간 황홀경을 선사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교감과 소통이란 근원적 욕망을 조명하면서 우리가 통제와 폭력에 맞서 기적을 바라기 위해서는 연대와 공의를 쫓아야 한다는 성찰을 전한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모태로 괴생명체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에도 솔직한 엘라이자는 언어장애를 겪고 있고 우주개발의 비밀을 가졌을 거라고 여기며 괴생명체를 학대하는 보안 책임자에 맞서는 흑인 청소부, 동성애자, 산업 스파이 등 여러 소수자들의 연대를 조명한다.

특히 인간과 전혀 다른 종의 괴생명체에 음식을 주고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을 통해, 음식과 음악이 소통과 교감의 공통된 언어라고 사유케 하면서 영화 <컨택트>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외계인과의 만나는 시퀀스를 떠올린다.

사진=영화사

◇ '패딩턴2', 선의와 교화의 아이콘, 패딩턴이란 장르의 예고

마지막으로, 런던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난 말하는 곰 패딩턴의 도시생활 이야기를 그려낸 <패딩턴 2>는 전편에 이어 장소를 감옥으로 옮겨와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마말레이드 덕후를 만드는 푸드 테이블과 런던의 명소를 페이퍼토이로 정교하게 옮겨낸 팝업북을 소품으로 활용해 트렌디함을 더한 어드벤처 영화가 됐다. 저절로 엄지를 치켜올리게 할 신의 한 수라 할 만큼.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며 숙모의 생일 선물로 점찍어 둔 런던의 명소를 담은 팝업북을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반부와 도난당한 팝업북 도둑으로 몰려 감방 생활을 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패딩턴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돋보인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패딩턴 구명에 나선 브라운 가족의 추리와 슬기로운 곰빵생활, 팝업북 향방을 쫓아 추격전까지 펼치며 가슴 따뜻한 휴머니티를 선사한다.

사진=영화사

이번 편에서는 좋은 것만 생각하게 만드는 선의와 자신의 이익보다 어려운 처지의 남을 돕는 교화의 아이콘으로 오색 오감의 미장셴을 선사하고, 꿀잼 패러디와 오마주는 장르별 시그니처물을 모아놓은 콤보세트로 패딩턴이란 장르를 예고케 한다. 즉, 세탁물을 잘못 돌려 죄수들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판타스틱한 미장셴과 '셜록 홈즈'의 영민한 추리, '미션 임파서블'의 액션, 웨스턴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펼치는 뮤지컬 시퀀스까지 장르의 시그니처물에 대한 헌사처럼 다가오는데, 또 하나의 시그니처가 될 패딩턴 브라운의 스위트홈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 글은 정선기 감성전략소셜미디어 연구소 소장과 시장경제신문의 협의에 따라 블로그 'Morningman 시크푸치'에서 퍼 왔습니다. 

<글쓴이 정선기>

영화/심리학/건강/강연/미디어 등 다섯 가지 분야를 주제로 한 정보성 컨텐츠를 큐레이팅해 온 칼럼니스트이다. 특히, 영화인문학을 기초로 힐링 큐레이터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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