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칼럼] 담철곤 회장님, 더 이상 情만으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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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칼럼] 담철곤 회장님, 더 이상 情만으로는 안됩니다
  • 이기륭 기자
  • 승인 2016.11.0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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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연구개발비 비중 0.16%, 3년 만에 반토막… 업계 최저 수준

"담철곤 회장님, 이제 더 이상 정(情)만으로는 안됩니다." 

국내 제과업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매대에는 처음보는 새로운 과자들이 앞다퉈 자리를 차지하다가 또 몇 달 뒤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한다.

새롭고 독특한 맛에 열광하는 최근 소비자들의 입맛은 기업이 신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한때 제과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던 '허니버터'는 이제 흔하디 흔한 맛이 돼 버렸고 올 상반기 시장을 강타한 '바나나'와 '청포도'도 더이상 특별할 게 없는 맛이 됐다. 

이렇게 변화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면서 국내 제과업계의 고민은 깊어졌다. 

이미 국내 제과 시장이 포화 상태인데다 성장세도 주춤해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야심차게 선보인 신제품의 시장 반응이 좋다 싶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쟁업체들은 곧바로 미투 제품을 쏟아내고, 시시 각각으로 변하는 소비자 트렌드를 좇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신제품 연구·개발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제과업계 1위인 오리온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낸다.

오리온은 지난해 7개, 올해 총 14개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종류만 놓고보면 1년 만에 신제품 개수를 2배 늘린것 같지만 매출에서 연구 개발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0.0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차별화된 아이디어나 신규 제품을 개발해 선보이기보다는 '이 맛 저 맛' 트렌드 좇기에 급급해 기존에 있던 제품에 새로운 맛을 입힌 제품이 대부분이다. 그 때문인지 오리온이 올해 선보인 한 신제품은 출시 3개월도 안돼 편의점에서 발주 정지를 당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오리온의 이러한 소극적인 전략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오리온의 매출액 중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지난 2012년 0.32%에서 점점 줄어들다가 지난해 0.16%로 3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지난해 오리온의 연구개발비용은 11억4600만원이다. 이 중 원재료비 9억7700만원을 제외하면 실제 연구개발에 들어간 위탁용역비와 기타 비용은 1억6900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타 업체와 비교해도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롯데제과의 지난해 연구개발비 비중은 0.42%,해태제과와 크라운제과는 각각 0.3%, 농심은 1.1%, 빙그레는 1.31%로 집계됐다. 

오리온은 업계 리더라는 타이틀이 무색할만큼 기업 성장의 씨앗 역할을 하는 연구·개발에는 유독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구 개발비를 대폭 늘리고 신제품을 무작정 많이 쏟아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지 않은채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는 것은 기업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오리온의 대표적인 장수 제품인 '초코파이 情'은 올해 처음으로 편의점 파이 제품류에서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올 초 식음료 업계 트렌드로 떠오른 '바나나'에 시장을 빼앗기면서 자매품인 '초코파이 情 바나나'는 물론 롯데제과의 '몽쉘 초코&바나나'에도 밀리며 휘청였다. 

오리온 '초코파이 情 바나나' 출시로 전체 파이류 시장 규모 성장세는 증가했지만 오리지널 제품인 '초코파이 情' 매출 신장세는 오히려 주춤해지는 등 역효과를 맞았다. 반짝 트렌드 좇기에 급급하다 결국 제 살을 깎아먹은 꼴이 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리온 초코파이 정은 수년간 파이 제품의 독보적인 1위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그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늘 새로운 맛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영향으로 식음료 트렌드 주기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은 더이상 '정(情)'에만 이끌리지 않는다. 온 국민이 42년째 사랑해 온 '초코파이 情'일지라도 언제 어떤 신제품에 자리를 빼앗기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현실이 됐다. 

제 2의 '초코파이 情'은 어설픈 트렌드 좇기 식으로는 결코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을 오리온의 수장인 담철곤 회장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담철곤 회장님, 제 2의 초코파이 情을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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