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인가, 예술가들인가?... 통인시장의 혁명
상태바
상인들인가, 예술가들인가?... 통인시장의 혁명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0.11.08 0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통인시장 상인들 '생각의 방' 운영
공방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도 인기
사진=이기륭 기자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지난 7일 호후, 서울 효자동 통인시장 앞은 동네주민들로 북적였다.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시장에서 열리는 '문화 놀이터‘ 행사에 참석키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효자동 인근 공방의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통인시장 상인회가 후원한 이번 문화 잔치에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스냅사진’ 코너. 시장 앞에서 임시로 마련된 5평 남짓한 사진관에는 밀려드는 관객들로 연신 카메라 셔트가 눌러졌다.

“자! 여기보고~ 웃으세요~ 활짝!” 사진기사는 멘트를 날리면서 주민들의 밝은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엔 조금 어색해하던 주민들도 곧 이어 환한 웃음을 날렸다.

통인시장에 들렀다가 사진을 찍으러온 김명숙(78) 할머니도 사진기 앞에 앉았다.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앉아 “10년은 젊어보이게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담은 스냅사진들은 시장 앞에 나란히 붙었다. 시장통 앞에 손님들의 사진이 전시된 셈이다.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바로 옆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이웃주민들과 작가들까지 총 26팀이 참여, 손수 만든 물건들을 싼 값에 판매했다. 금속공예품과 천연비누, 책갈피에서 수제 설탕과 초상화, 악세사리까지 소재거리도 다양하다.

수공예 머리핀을 판매하는 황지연 (30) 씨는 5살짜리 딸과 함께 벼룩시장에 출품했다. 공방에서 배운 솜씨로 직접 머리핀을 제작해 들고 나온 것이다. 황 씨는 “문화놀이터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 “작지만 정성껏 만든 수공예 머리핀이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놀이터를 기획한 변민숙 리즈숍공방 대표는 “예술과 문화 작품이 주민들을 시장 앞으로 불러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한다” 며 “오늘 하루만 해도 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다녀갔다” 고 전했다.

사진=이기륭 기자

변 대표는 또 “주민들이 문화 볼거리를 즐기면서 통인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며 “시장은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통인시장 한쪽에서 고요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를 따라 가다 보니 ‘꿈보다 해몽 공작소’(이하 꿈해소)라는 자그마한 간판이 보인다.

꿈해소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전통시장’ 프로젝트 중 하나로 상인들이 고민해결을 위해 직접 운영하는 공간이다. 이번달에 전시된 것은 ‘생각의 방’이다. 7평 남짓한 공간은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안락하게 꾸며졌다. 1방 안에는 하얀 천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여기 안에는 짚으로 만든 의자와 작은 상이 놓여있다.
 
생각의 방에서 나온 한 시민은 꿈해소 앞에 있는 방명록에 짧은 글귀를 남겼다. 그는 “우연히 통인시장에 들렀다가 음악소리를 따라 왔더니 이 곳이더라”며 “고민을 버리고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로 빼곡했다. S대 여대생이라고 밝히 한 여성은 “우리나라의 시장문화와 예술이 만나, 새로운 전시문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며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다른 이들도 “여기에 들어와서 복잡한 생각이 정리된 것 같다”고 남겼다.

‘생각의 방’은 통인시장에서 우리농산물유통을 운영하고 있는 서정숙 사장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서 사장은 “우리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며 이 공간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꿈해소는 작가들이 아닌 상인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우리농산물유통 서정숙 사장뿐만 아니라 옥인정육점, 소문난김구이집, 광주상회, 엄마손반찬집 등 14개 점포 상인들이 예술가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 사대문 안의 유일한 서민생활권 골목형 시장으로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던 60년 전통의 서울 통인시장은 이제 문화의 옷을 입은 장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통인시장 상인연합회측은 “시장을 문화와 예술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면 시민들이 언제든 쉽게 찾아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