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힘겨운 글로벌 진출기... 일본 접고 '대만' 집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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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힘겨운 글로벌 진출기... 일본 접고 '대만' 집중, 왜?
  • 이준영 기자
  • 승인 2023.03.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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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B2C 이커머스 비중 8.08% 불과... 성장 가능성 높아
아마존재팬이 꽉 잡고 있는 일본... 퀵커머스 승부수
쿠팡재팬 진출 한 달 후 경쟁업체 속속들어오며 과열
로켓배송 도입, 물류창고 마련... 성공 가능성 높은 대만
로켓배송 차량. 사진= 쿠팡
로켓배송 차량. 사진= 쿠팡

쿠팡이 지난 2021년 6월 일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로켓'이 아닌 '퀵커머스'로 진출했지만 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철수했다. 국내에서의 몸집 키우기에는 한계가 있어 해외 시장 확장을 노렸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쿠팡은 일본에서는 실패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인 대만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물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쿠팡재팬은 2021년 6월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일본이 전 세계 4위 규모의 전자상거래 시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망은 밝았다. 2021년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일본의 '전자상거래 시장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이커머스 시장 중 B2C 이커머스 비중은 8.08%에 불과했다. 일본인들이 오프라인과 현금 결제를 선호하는 성향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이커머스의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쿠팡이 일본에 진출하기 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TV도쿄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쿠팡의 일본 진출을 언급하며, 한국의 로켓배송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일본에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 것"이라며 일본에서 쿠팡이 정식 출범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손 회장의 발언은 큰 파장으로 이어졌다. 로이터 통신은 손 회장이 쿠팡 측과 소프트뱅크의 관계사 'Z홀딩스'를 통해 쿠팡 서비스를 일본에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Z홀딩스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 간 통합을 위해 출범한 중간 지주회사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달랐다. Z홀딩스를 통하지도 않았고, 쿠팡의 정체성인 '로켓배송'이 아닌 '퀵커머스' 형태로 진출한 것이다. 

만일 쿠팡이 Z홀딩스를 통해 일본에 진출했으면 네이버-야후재팬-쿠팡이라는 조합이 완성된다. 국내에서는 쿠팡과 네이버가 경쟁 관계지만 일본에서는 협력 관계로 형성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쿠팡재팬, '로켓' 장착 못해... 퀵커머스로 선회

쿠팡이 국내에서 수조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로켓배송'이다.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빨라야 이틀 뒤에 받아볼 수 있는 택배를 바로 익일에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후 쿠팡은 새벽배송, 당일배송까지 추가하며 국내 이커머스의 물류 인프라 경쟁을 불을 붙였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말로 통할만큼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서비스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로켓'을 뺐다. 그리고 퀵커머스를 선보였다.

쿠팡의 결단은 일본 현지 이커머스 기업 간 경쟁을 피하고, 현지인에게 새로운 서비스로 브랜드를 각인시키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후 시장 추이에 따라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또 일본 상황도 로켓배송을 배제하는데 한몫했다. 로켓배송 서비스 실행에는 대규모 물류센터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은 아마존재팬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아마존재팬은 2010년 현지 플랫폼 '라쿠텐'을 제치고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아마존재팬은 당일배송, 수령일 지정 서비스 등 배송 관련 특화 서비스를 선보이며 일본 시장을 장악했다. 후발주자인 쿠팡이 아마존재팬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려면 더 빠른 배송과 차별화된 특화 서비스를 선보여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출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팡은 2021년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5조원의 여유자금을 확보했다. 하지만 일본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컸다. 업계 2위인 라쿠텐의 경우 지난해 매출 18조원에 영업손실 3조원을 기록했다. 시총도 10조원 수준이다. 그만큼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쿠팡이 일본에서 로켓배송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분석이다. 반면, 당시 일본 내에 우버이츠 등의 퀵커머스 업체들이 있었지만 쿠팡이 내세운 '생산자 직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없었다는 점에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또 아마존이 자리잡은 이커머스 시장 대비 퀵커머스 시장은 절대적인 1위가 없어 경쟁도 덜했다.

 

아마존재팬이 선점한 日 시장... 쿠팡에게는 악재

쿠팡은 '생산자 직배송'이라는 퀵커머스 카드로 승부를 걸었지만 예측과는 어긋난 상황으로 흘러갔다. 경쟁기업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퀵커머스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특히 Z홀딩스의 반격이 큰 충격으로 작용했다. 쿠팡이 일본에 상륙하고 1달여가 지난 2021년 7월 Z홀딩스가 아스쿨과 데마에칸의 협업을 통해 퀵커머스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일본 아스쿨은 Z홀딩스가 대주주로 44.9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1993년 사무용품 통신판매 서비스를 시작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20년 5월 말 기준 B2B부문에서만 약 745만개의 상품을 취급할 만큼 폭넓은 소싱 능력을 보유한 곳이다. 안정적인 공급원이 있다는 것은 Z홀딩스의 퀵커머스 속도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요소다. 

또 데마에칸은 당시 일본 내 음식 배달업 시장점유율 2위 기업이었다. 현재는 점유율 49%로 1위에 올라 있다. 이 또한 Z홀딩스가 2020년 8월 31일 기준 35.79%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다. 데마에칸은 최근 네이버 라인과 계열 연계를 통해 9200만명의 잠재적 고객을 확보했다. 

더불어 같은 시기인 2021년 7월 푸드판다까지 일본 퀵커머스 전쟁에 참여했다. 푸드판다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8개국에서 200개 이상의 퀵커머스 스토어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Z홀딩스가 보유한 라인, 야후재팬, 페이페이 등을 활용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아시아 지역 퀵커머스 운영 능력이 검증된 푸드판다까지 들어오며 쿠팡재팬의 계획이 틀어지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일본에 진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경쟁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사업을 영위하면서 지속적인 출혈을 감내하기 보다 빠르게 철수해 대만 사업 집중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시장 실패했지만... 대만은?

쿠팡이 일본에서 아쉬운 결과를 낳았지만 대만에서는 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일본 진출 때는 로켓배송이 없었지만 대만에서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대만의 인프라도 긍정적이다. 대만은 한국처럼 인구 밀집도가 높고, 인터넷 이용률도 2020년 기준 89%에 이른다. 여기에 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류 열풍이 거세지며 K콘텐츠를 비롯한 한국 상품에 대한 인기가 높다.

쿠팡은 대만에서 로켓배송 서비스를 490대만달러(약 2만2000원) 이상 주문하면 다음 날까지 상품을 무료로 배송해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490대만달러 미만 주문 시 배송비는 75대만달러(약 3300원)다.

로켓배송 대상 상품군은 분유와 기저귀, 물티슈 등 생필품과 식료품 수만가지에 이른다.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위해 대만 북부 지역에 대형 물류센터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상품을 대만에서 구입할 수 있는 로켓직구 상품수 역시 풍부하게 준비했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로켓배송의 경쟁력을 내세워 성공적인 안착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커머스가 배송의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쿠팡이 처음 선보였던 로켓배송은 단순히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사랑 받은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의 택배기사와 다른 쿠팡맨의 친절함과 배려, 번거로웠던 교환·반품을 쉽게 만들어준 서비스 등의 스토리텔링이 지금의 쿠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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