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陽地)만 찾은 포스코 최정우... 철강협회장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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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陽地)만 찾은 포스코 최정우... 철강협회장이 안보인다
  • 노경민 기자
  • 승인 2022.07.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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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인사이트] 철강협회장 역할 부재 도마위
철강협회장 겸임 최정우 회장, 리더십 논란
화물연대 파업 과정서 존재감 거의 없어
파업기간 중 '철의 날' 기념식서 'ESG'만 강조
업계 "리더 역할 아쉬움... 현장 돌아보며 고충 들었어야"
이달 10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철강협회장)이 광양제철소에서 4고로 화입식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포스코
지난달 10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철강협회장)이 광양제철소에서 4고로 화입식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포스코

"위기상황 속 최고의 배는 리더십"이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이 격언은 최근 국내 철강업계가 처한 상황에 딱 맞지 않을까 싶다. 철강업계는 코로나대확산에 따른 글로별 경기 위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화물연대 총파업 후폭풍으로 기업의 운임비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14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8일 간 이어오던 총파업을 중단했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은 추정치로만 2조원이 넘는다.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철강사는 1조15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파업기간 동안 출하 지연된 물량은 약 72만1000톤으로 집계됐다. 포스코만 하더라도 화물연대 파업으로 육송 출하가 지연된 물량이 30만톤에 달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철강업계를 패닉상태로 내몰았다. 현대제철은 인천과 포항공장의 일부 전기로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인천공장은 지난달 20~29일 열흘간 120톤 전기로 가동을 멈췄다. 포항공장은 같은 달 20~27일 8일간 100톤 규모 전기로 가동을 정지했다. 포스코도 지난달 선재 1~4공장과 냉연 2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생산라인 운영에 상당한 차질을 겪었다. 

화물연대 파업은 국토부장관이 경기 의왕 컨테이너 기지를 직접 방문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로 최악의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철강협회장의 역할 부재가 그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이번 파업은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로부터 비롯됐다. 자연스럽게 그 해법을 찾기 위한 협상 테이블도 정부 당국자들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렇더라도 업계를 대표하는 철강협회장의 존재와 역할이 너무 희미했던 것은 아닌지 지적하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철강협회장은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겸임하고 있다. 그가 파업기간 중 정부와 화물연대간 막후 교섭을 지원했다거나 답보상태에 있던 협상 타결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 회장은 화물연대 파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9일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3회 '철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포스코, 현대제철은 한국철강협회, IBK기업은행과 함께 1500억원 규모의 '철강 ESG 상생펀드'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최 회장은 "ESG는 대기업만이 아닌 산업 전체가 당면한 과제로 ESG 경영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철강회사들을 적극 지원해, 업계 전체에 ESG 생태계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 최대 현안인 화물연대 파업 관련 언급은 없었다. 굳이 비슷한 발언을 찾자면 "상생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목이 전부였다. 행사를 취재한 다수 기자들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망했지만 끝내 언급은 없었다. 

'철의 날' 기념행사 다음 날인 10일, 최 회장은 광양제철소로 향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4고로가 2차 개수를 마치고 1년 6개월 만에 재가동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최 회장은 광양제철소 4고로 화입식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명품 고로로 재탄생한 날이자, 포스코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해 의미가 깊다"며 "제철소의 상징인 고로처럼, 포스코도 세계 최고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해 포스코그룹의 굳건한 버팀목이 돼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국내 산업 물류 시스템의 취약한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물류 생태계 정책 전반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책 손질과 별개로 철강협회장의 역할 부재 논란 역시 되짚어 봐야 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최 회장의 활동과 관련해 "철강협회가 화물운송의 조속한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6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공동 입장문을 냈다"며 "추가 협의를 위해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의 이 기간 대외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철강업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각 업계에서 화물연대 파업을 중단해 달라는 의견서를 내긴 했는데, 이는 철강협회 산하 위원회에서 작성한 의견서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파업의 쟁점이 정부에 직접적으로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최정우 회장이 직접 나설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화물연대 파업 최대 쟁점은 '안전운임제 연장'이었다. 이 제도는 화물 기사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처음부터 일몰제가 적용돼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화물연대는 일몰제를 폐지해 동 제도의 지속적 적용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나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철강협회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최 회장의 역할과 위상을 고려할 때 그의 처신이 아쉽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다.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정부와 화물연대 사이를 오가며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중재자 내지 메신저의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최소한 파업 현장을 둘러보며 업계 고충을 수렴하고 화물연대 집행부와 소통 채널을 넓히려는 시도 정도는 했어야 한다는 불만도 있다. 

철강협회장을 1년에 몇 차례 의례적인 행사에 업계를 대표해 얼굴만 비추면 되는 선언적·형식적 자리로 인식해선 곤란하다. ESG펀드 조성도, 신형 고로 탑재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철강업계 전체의 혈맥이 막혀 공장을 멈추는 최악의 상황이 빚어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최 회장의 미온적 행보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혁신은 공언(空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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