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명이 15개 대포통장을... 중고나라 '먹튀' 극성
상태바
[단독] 1명이 15개 대포통장을... 중고나라 '먹튀' 극성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6.02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같은 명의 농협통장 15개 돌려가며 사기거래
최소 45명 피해... "현행법 탓에 구제 길 막혀"
최근 사기 사건이 잇따르면서 중고나라 측은 피해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사진=중고나라 제공
최근 사기 사건이 잇따르면서 중고나라 측은 피해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사진=중고나라 제공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서 동일인 명의의 농협 적금통장 15개가 사기거래에 악용돼 최소 45명이 3,000만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 측은 잇따른 사기거래 피해 제보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이를 제지할 규정이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2일 취재진이 중고나라 사기거래 피해자들로부터 단독 입수한 배모씨 명의의 농협 적금통장 계좌는 총 15개에 달했다. 사기거래에 이용된 휴대전화는 13개다. 피해자 모임 관계자는 4월 말까지 해당 명의 계좌들을 이용한 중고나라 사기 판매가 보고됐다고 전했다.

통상 한번 사기거래에 이용된 계좌는 중고나라는 물론 사기조회 사이트 더치트(thecheat) 등에 등록돼 재차 사용하기 어렵다. 이에 용의자는 중고나라에 매물을 올릴 때마다 천안농협 신방통정 지점에서 비대면 채널로 배모씨 명의의 적금계좌를 만들고, 휴대폰 번호까지 바꾸는 치밀함을 보였다.

한 피해자는 "용의자가 중고나라에서 사용한 아이디는 과거 정상 거래 이력 10여건도 있고 (피해자가 입금을 요구한) 농협 계좌도 이상이 없어 별다른 의심 없이 대금을 입금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중고나라' 사기거래 피해자들로부터 단독 입수한 배 모씨 명의의 농협 적금통장 계좌는 총 15개, 사기거래에 이용된 휴대전화는 13개에 달했다. 사진=피해자 제보
취재진이 중고나라 사기거래 피해자들로부터 단독 입수한 배모씨 명의의 농협 적금통장 계좌는 총 15개에 달했다. 사진=시장경제 DB

피해자들은 경찰에 진정서를 내고 농협과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당장 피해를 구제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번 사건처럼 물품대금을 대포통장 등으로 입금받은 뒤 잠적하는 유형의 범죄는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 신속한 조치를 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사건 피해가 전국에 퍼져있어 수십건에 달하는 피해 사실을 모두 조사·취합해 관할 경찰서로 이첩하는데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노인·주부 등 금융취약계층을 노린 보이스피싱 피해가 급증하면서 2020년 11월 20일을 기해 시행됐지만, 금융사기피해의 범위를 보이스피싱과 스미싱 등으로 제한하고 있어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한 '먹튀' 피해자들은 환급금을 받을 길이 없다.

피해자 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는 천안신방통정에서 발급한 비대면 적금계좌를 이용해 '중고나라' 사이트에 허위 매물을 올린 뒤 대금을 이체받고 잠적하는 수법으로 최근까지 총 45명의 회원에게 건당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혔다. 현재까지 자발적으로 피해 금액을 공개한 회원들의 피해규모만 총 3,163만원에 달했다. 사진='중고나라' 피해자 제보
피해자 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는 천안농협 신방통정 지점에서 발급한 비대면 적금계좌를 이용해 중고나라 사이트에 허위 매물을 올린 뒤 대금을 이체받고 잠적하는 수법으로 최근까지 45명의 회원에게 건당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혔다. 사진=시장경제 DB

농협 관계자는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며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입장만 듣고 지급정지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규정상 가능하지 않다"면서 "(내부적으로) 어떤 과실이나 규정을 위반한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여전히 해당 명의로 추가 계좌 개설이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대형은행 관계자는 "특정 고객에게 지급 정지나 추가 계좌 개설을 막는 정도의 조치를 금융사가 자의적으로 할 수는 없다"며 "그런 대응을 하려면 엄격한 요건과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들이 반복적으로 동일인 계좌를 이용한 사기거래 정황을 전달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제1금융권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하고 대략적인 피해 규모까지 나왔다면 사건이 추후 어떻게 결론이 나건 동일인이 추가적인 계좌 개설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목적 등을 확인하는 안전장치는 있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행권에 이미 인공지능(AI)을 통한 비정상거래 탐지 시스템이 일반화된 시대에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논평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