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25시] 수사기관 요구에... '통신자료' 무차별 제공하는 통신3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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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수사기관 요구에... '통신자료' 무차별 제공하는 통신3사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4.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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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 개인정보 보호 인식 아쉬워
"당국 요청 따라 통신자료 제공은 적법"
대법원 판례 근거 제시... 자료 제공 적법성 강조
法 "수사기관 요청 따른 제공, 배상책임 없다"
네이버 등 포털 다른 행보... 통신자료 요청 불응
자료제공 결정은 통신사 몫, 불응해도 위법 아냐
'적법' 여부만 따질 것 아니라 기업윤리 측면서 '정당성' 살펴야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안을 재단하다 보면, 때때로 보편적 도덕 기준과 충돌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기도 한다. 법적으로는 ‘적법’하더라도, 천부인권으로 불리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 자유권적 기본권,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헌법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통신회사들이 개인정보 등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꼽을 수 있다. 통신사들은 검·경 등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을 받으면, 대부분 이의없이 협조해 주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업계가 동일한 정부기관의 요구에 불응하고 있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포털 시장 점유율 1위 네이버는 2012년부터, 다음은 2016년부터 수사기관 자료제공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에 넘긴 통신자료 제공건수는 2020년 상반기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292만2382건에 달했다. 통신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에 터잡아 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로부터 제공받는 데이터를 말한다. 여기에는 수사 대상자의 인적사항 등 개인정보가 담겨있다.  

통신자료 요청기관별로 보면, 검찰 100만3245건, 경찰 182만4156건, 국정원 1만9123건, 기타기관은 7만5858건 등이다. 통신수단별로는 이동전화가 44만8304건으로 가장 많았고, 유선전화는 3만4467건, 인터넷 등은 2만9697건이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 1위 통신사업자는 SK텔레콤이다. 2020년 기준 SK텔레콤의 가입자 점유율은 47.7%에 이른다. KT는 28.3%, LG유플러스는 24% 수준이었다.  

SK텔레콤 측은 “대법원 판단에 근거해 수사기관 요청의 형식적·절차적 요건 충족 여부를 철저히 검토한 후 통신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통신자료를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수사기관 요청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 행위의 적법성을 강조했다. 

수사기관 요청에 대한 인식은 KT와 LG유플러스도 다르지 않다. 두 기업은 통신자료 제공 이유를 묻는 질문에 '법에 따른 절차라는 점을 양해해 달라'며 난색을 표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수사기관 요청에 불응하기 어려운 것이 통신업계의 기본적인 정서"라며 "통신쪽은 포털업계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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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에만 기대는 기업의 '모럴해저드'... 아쉬운 통신업계 대응 

'수사기관 요청에 의한 통신자료 제공은 적법하다'는 통신업계 판단은 2016년 대법원 제1부(대법관 김소영)가 심리한 사건을 근거로 한다. 네이버가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경찰에 무단으로 제공한 사안을 놓고, 손해배상 책임을 다툰 사건이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네이버는 이용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또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해 손해를 입혔으므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와 달리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이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갖춰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 원칙적으로 이에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위 사건에 있어 대법원의 판단은 지금도 법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수사기관에 의한 무차별적 개인정보 수집의 위험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비판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수사기관이 요청할 경우, 통신사업자가 가입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있을 때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한 탓에 해석상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입법적 흠결은 별론으로 하고, 조문의 취지와 문장의 구성 및 맥락을 고려할 때 동 조항을 수사기관의 요구에 응해야 할 통신사업자의 의무 규정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다. 위 대법원 판결은 [일정한 조건 즉 수사기관의 요청이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면, 동 요청을 인용해 자료를 넘기는 행위는 일응 타당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범위 안에서 통신사업자의 책임을 배제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네이버, 다음의 다른 행보... 통신자료 요청 불응

주목할 점은,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통신사자업자는 자기 판단으로 수사기관의 요청에 응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양대 포털사업자는 이런 판단 아래,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위 조항에 대해서는 '정보주체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동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6년째 들여다보고 있다.

'법'은 ‘최소한의 규제’이다. 대법원이 배상 책임으로부터 통신사를 자유롭게 만들어줬다고 해서, 그들의 통신자료 제공 행위를 마냥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통신자료 임의 제공 논란의 초점은 ‘적법’이냐 ‘위법’이냐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기업 윤리 관점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에 있다. 통신사가 전기통신사업법의 뒤에 숨어 수사기관의 무차별적 자료 제공 요청에 응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책임을 단지 ‘적법’의 범위로만 한정한다면, 역설적으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위험이 상존한다. 이런 점에서 네이버의 대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법원이 통신사업자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네이버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2012년 이후 한건의 통신자료도 수사기관에 제공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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