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 1년 진단⑤] 농협銀, 잇단 사고 딛고 소비자보호 '정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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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1년 진단⑤] 농협銀, 잇단 사고 딛고 소비자보호 '정교화'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2.03.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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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보호부, 금융상품 프로세스 핵심 부상
권준학 행장, 디지털 적용 사고 원천 봉쇄 노력
농협銀 임원급이 참여하는 협의체 결성도

<편집자주> 지난해 3월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후 금융권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규모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금융사기·불완전판매를 사전 차단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해석된다. 특히 은행들은 소비자가 직면하는 금융의 모든 단계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섰다. 본지는 금소법 시행 1년을 앞둔 현재 각 은행들이 추진 중인 소비자 보호 전략과 철학을 살펴보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다섯 번째 순서는 다양한 금융사고를 계기로 소비자보호 체계를 개선하고 있는 NH농협은행이다. 

과거 전산사고·대포통장의 온상지라는 오명을 썼던 NH농협은행은 일련의 사태들을 반면교사 삼아 내부통제·소비자보호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지난 2011년 전산망 개인정보 노출사건, 2013년 피싱·파싱사고, 2014년 대포통장 사기 사건에 연루 된 바 있다. 하지만 농협은행은 이와 같은 금융사고를 계기로 다양한 사기 유형을 연구하며 사고 취약 은행이라는 오명을 털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난 2014년까지 대포통장 최다 발급 금융기관이란 불명예를 안았지만 현재는 대포통장 근절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금융권 전문가들은 농협이 대포통장의 주 공급은행이 된 배경으로 점포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NH농협은행은 농어촌과 도시를 넘나드는 영업망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일반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포수가 많다.

농협은행은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대포통장 근절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농협은행은 민간은행이지만 정부특별법에 의해 세워진 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가장 먼저 국정감사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은 더욱 소비자보호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전산사고 오명’ 벗고 IT 보안 환경 구축

여러 사건 이후 농협은행은 최우선적으로 고객보호에 방점을 두고 IT 보안 강화와 안전거래 환경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 대포통장 사태부터 수습했다. 2014년 금융사기계좌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선해 더욱 정교하게 근절 방안을 추진했다. 이 때 모니터링 인력을 증원해 취약시간대인 심야까지 이상 징후를 점검하면서 다양한 의심계좌를 자동적으로 추려내기 시작했다. 모니터링 결과 의심계좌로 확인된 경우는 조건부 지급정지를 시행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당시 21%에 달했던 대포통장 점유 비율은 2015년 12월 말 2.4%로 대폭 줄어들었다. 

2015년부터는 임직원들의 소비자보호 의식 고취를 위한 ‘금융소비자보호 대상’을 신설했다. ‘금융소비자보호 대상’은 불완전판매 예방, 민원 감축, 대포통장 근절 등 소비자보호와 관련된 모든 항목을 1년간 종합평가해 우수 영업점과 영업본부를 포상하는 제도다. 

2016년에는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을 고도화하고 사고예방센터를 24시간 365일 운영했다. 해커가 고객의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번호 등 개인정보를 탈취하거나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빼내는 시도를 하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이 즉각 감지해 대응한다. 사고예방센터는 평소 고객이 사용하던 이체 패턴이나 거래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즉시 이용자에게 연락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다. 계좌 지급정지와 개인금융정보 변경을 안내해 추가 불법거래 피해도 예방한다.

농협은행은 일반보안카드 이용자를 대상으로 보안성이 한층 강화된 NH안심보안카드 보급을 확대, 자동화기기 지연인출제도 등을 정착시키기도 했다. 안심보안카드는 지역 농·축협 이용자를 포함해 60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안심보안카드 도입 이후 단 한 건의 전자금융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농협은행 측의 설명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전자금융 FDS에 의해 금융거래가 차단된 이용자들은 금융기관을 사칭한 팝업창에 개인금융정보를 입력하거나 대출 상담을 유도하는 범죄조직에게 개인금융정보를 제공했는데 관련 시스템을 도입한 후 전사금융사고는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부실 사태 후, 상품별 리스크시스템 확충

2019년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는 농협은행의 소비자보호 관련 책임부서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게 된 계기가 됐다. 

과거 소비자보호부의 주된 업무가 단순히 민원 접수를 받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보호부의 영역은 사후적 고객 관리 개념으로 확장됐다. 이를테면 소비자보호부에서 모든 금융투자상품과 관련해 사전부터 철저히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다. 

농협은행은 대규모 사모펀드 사태를 겪은 타 은행과 달리 판매를 강행하지 않아 불완전판매 책임에서 빗겨갔다. 하지만 NH투자증권의 옵티머스 불똥이 금융지주 전체로 옮겨 붙으면서 다각적으로 소비자보호시스템 점검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농협은행은 2020년 하반기부터 고위험상품 전담반을 꾸렸다. 자산관리상품협의회를 확대 개편해 상품선정위원회를 신설한 것이다. 기존 농협은행은 마케팅협의회와 자산관리상품협의회를 운영해왔다. 

마케팅협의회는 마케팅에 관한 기본 방침을 심의·의결하거나 마케팅 현안 또는 출시 상품 현황 등을 공유했다. 자산관리상품협의회는 수익증권,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방카슈랑스,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상품에 대한 주요 운영에 대한 기본방침을 심의·의결했다. 

상품선정위원회는 기존 자산관리상품협의회가 맡았던 역할을 포함해 신상품 출시에 대한 사후관리까지 맡았다. 신설 조직의 위원장은 기존 마케팅부문장이 마케팅협의회와 자산관리상품도의회 위원장을 함께 수행했던 것과는 달리, 소비자보호부문 최고책임자가 담당한다. 이는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이 마련한 '비은행 상품 내부 통제 모범 규준' 초안에 따른 것이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 사진=연합뉴스
권준학 NH농협은행장. 사진=연합뉴스

농협은행은 상품개발단, 상품개발부 신설도 추진했다. 상품개발단의 경우 투자상품팀을 새롭게 설치해 수익증권, 방카슈랑스, 퇴직연금 등 비예금상품을 담당하게 된다. 마케팅전략부와 별도로 구성되는 상품개발부는 기존 마케팅전략부, 디지털마케팅부, 올원뱅크센터 셀(cell) 등의 업무를 이관받아 각 부서에 흩어져 있는 상품개발 업무를 통합해 총괄한다. 중립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농협은행의 상품 출시 프로세스는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기존 투자 상품에 대한 모든 과정을 마케팅부문 내 WM사업부가 총괄해왔다면 현재는 운용사에서 상품을 가져오면 소관팀의 실무자들이 '펀드사전설정검토'를 먼저 진행한다. 이것이 1단계다. 그렇게 걸러진 상품은 2단계로 '수익증권상품심의회'에 오르게 된다. 심의회에는 WM사업부장, 부서 팀장, 리스크부서 실무자, 소비자보호 실무자, 준법 실무자 등이 참여한다. 협의 과정에서부터 소비자보호와 리스크관리 조직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만약 승인이 안 되면 판매는 불가능하다. 심의회에서 도출된 결과는 마지막 3단계, '자산관리상품협의회'가 맡는다. 이 기구는 현재 농협은행 상품선정 과정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협의회에는 마케팅부문장, 리스크부서, 소비자보호부서, 마케팅부서 등 관련 부서장이 참여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불완전판매 예방을 위한 내부 조치도 강화했다. 실적평가지표인 KPI에 고객수익률 평가 항목을 신설해 상품을 판매한 뒤에도 꾸준히 고객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또 분기별로 불완전판매방지 실무협의회를 실시해 불완전판매 이상 징후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금융소비자보호협의회,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모니터링 항목은 금융상품 판매지표, 해피콜 현황, 미스터리쇼핑 결과, 민원 발생 현황 등이다.
 

소비자보호부 격상... AI 기반 리스크 선제 대비 

2020년 12월부터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한다는 방침 아래 금융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CO)를 임원급으로 격상하고, CCO가 소비자보호 총괄업무만 단독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분장이 이뤄졌다. 최근에는 CCO를 주축으로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출범시켜 투자 상품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비예금상품위원회 참여 위원을 업무 집행 책임자급으로 상향시켜 협의체 위상을 끌어올렸다. 해당 위원회에는 마케팅전략부장, WM사업부장, 투자금융부장, 외환사업부장, 퇴직연금부장, 디지털전략부장, 자금부장, 신탁부장, 리스크관리부장, 준법감시부장이 참여한다. 기존 자산관상품협의회 위원장이 마케팅 부문장이었다면 비예금상품위원회는 마케팅과 무관한 소비자보부문장이 맡는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비예금상품위원회 산하에 부장급 협의체인 비예금상품협의회를 운영해 투자상품 선정 절차를 강화하고 상품·상황에 맞춘 유연한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 “상품 판매·영업과 관련 없는 부서 임원급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상품 선정 과정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금소법 시행에 앞서 지난해 초부터는 내규 정비, 업무절차 개선, 전산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현재 농협은행은 투자자 보호 절차를 강화하고 사후 관리 시스템도 선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0년 7월에는 전자창구(PPR)을 통해 펀드 신규 프로세스도 개선했다. 

지난해 1월부터는 해피콜 2차콜을 도입하고 설명의무(녹취제도)를 강화했다. 일부 시중은행들이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시행하고 있는 펀드 리콜제도 도입했다. 펀드 리콜제는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정황이 있을 경우 고객이 환매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올해 농협은행은 소비자보호 전담 인력을 기존 42명에서 49명으로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또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내부통제를 전담하는 ‘소비자보호점검팀’도 신설해 내부통제업무를 더욱 체계화 한다는 방침이다.

AI 기술을 활용한 사후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도입된 RPA(학습된 AI)를 통한 신규장표점검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2020년 9월 처음 도입됐으며, 상품 가입 관련 서류 점검에 시스템이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RPA는 펀드와 같은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투자자가 작성하는 각종 신청서와 동의서 같은 서류들이 미흡한지 직접 점검한다. 사전에 적절하지 못하게 기입된 사항이 있는지 등을 다시 한 번 체크하고 필터링하는 개념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서류를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상품 판매 서류 점검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영업점 직원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넘긴 부실 서류를 잡아내 불완전판매 여지를 차단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에는 AI 기반 상품 판매 녹취 모니터링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으로 상품 상담 시 직원의 설명누락·오류상담 요소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즉각적으로 고객에게 정확한 설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농협은행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대포통장 검출 모형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금융사기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급증하는 은행사칭 대출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RCS 인증 사기문자 방지 서비스’도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소비자보호 내부통제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상품개발·판매·사후관리까지 상품판매 전 단계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금융소비자보호 관점으로 성과평가지표(KPI)의 적정성을 점검해 최고경영자(CEO)를 위원장으로 하는 내부통제위원회에 보고하는 내부통제에 집중할 예정이다. 나아가 고객 의견 빅데이터 분석이나 시각화 포탈 시스템 연계 등 ‘VOC 시스템’을 고도화해 고객 의견을 정확히 파악하고 빈틈없이 반영해 소비자 니즈에 맞는 상품·서비스·플랫폼을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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