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연구원은 되고, LH는 안 되고... 성남시의 '고무줄 용도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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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연구원은 되고, LH는 안 되고... 성남시의 '고무줄 용도변경'
  • 신준혁 기자
  • 승인 2021.10.1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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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청사 이전 놓고 이중적 행태 보여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매각 위해 적극 협력
지목 변경, 지구단위 계획 수립 등 행정 지원
LH 오리사옥, 매각 실패... 같은 상황 다른 행보
'특혜' 의식해 지목 변경 꺼려... 형평성 의문
옛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청사. 사진=식품연구원
성남시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청사. 사진=식품연구원

경기 성남시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개발사업과 관련돼 성남시 측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며 제기된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구원은 성남시의 협조로 토지변경 허가를 받아 민간 사업자에 위 부지를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같은 성남시에 청사를 둔 공공기관 중 일부는 토지변경 허가가 나지 않아 매각기회 자체를 얻지 못한 경우도 있다. 

1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성남시에서 다른 지역으로 청사를 이전했거나 이전 예정인 공공기관은 한국도로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가스공사, 한전KPS, 한국식품연구원 등 5곳이다. LH를 제외한 나머지 공공기관은 청사 이전을 마쳤다. 성남시는 가스공사와 식품연구원의 경우 부지 매각이 실패하자 일반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토지용도를 변경했다. LH는 2010년부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오리사옥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LH 오리사옥 처분이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토지용도 때문이다. 오리사옥 부지는 상업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토지용도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공동주택이나 주상복합 등 주거시설을 지을 수 없다. 오리사옥 매각을 위해선 식품연구원의 사례처럼 용도변경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성남시는 '특혜' 시비를 우려해 오리사옥 부지 용도변경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건설사와 주택 사업자들은 2013년 오리사옥을 주거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시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오리사옥은 지하 2층~지상 9층 본관(2만 8050㎡)과 지하 2층~지상 4층 별관(9947㎡)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LH 경기지역본부가 수원에서 자리를 옮겨 입주해 있다. 주 용도는 업무시설이다. 

매각이 12년째 실패하는 동안 공시지가는 매년 상승했고 사업성은 떨어졌다. 오리사옥 매각 예정가격은 4250억원이다. 본관 개별공시지가는 ㎡당 849만6000원, 별관은 455만원이다. 본관 공시지가는 2015년 3.3㎡(평)당 762만2000원에서 2019년 849만6000만원으로 11% 상승했다.

매년 발생하는 감정평가 수수료도 부담이다. LH는 정부 산하기관으로 고정자산을 매각할 때 발생하는 감정평가 수수료를 직접 지급해야 한다. 이때 지급하는 수수료 비용만 3억원에 달한다. 감정평가는 1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LH는 공개입찰을 위해 감정평가 수수료 3억원을 매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식품연구원 지목 변경, 지구단위 계획 수립... 성남시, 적극 지원 
LH 부지 지목 변경은 부정적... 이중잣대 비판
  

오리사옥 토지용도 변경과 관련돼 성남시가 보이는 태도는 과거 식품연구원의 사례와 사뭇 대조적이다.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출발점이 된 식품연구원 부지 매각은 성남시의 적극적 지원이 바탕이 됐다.

식품연구원은 2011년부터 백현동 청사 부지 매각을 추진했지만 8차례나 실패했다. 자연녹지로 지정된 지목(地目)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연구원 청사 부지는 토지용도가 '자연보존녹지'로 묶여 있었다.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 지구단위계획도 수립되지 않아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식품연구원은 매각 편의를 위해 토지용도를 '자연녹지'에서 공동주택 건립이 가능한 '준주거지'로 변경해 줄 것을 성남시에 요청했다. 시는 2016년 12월 1일 도시계획 입안과 수립과정을 거쳐 지목을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고, 지구단위계획을 결정·고시했다. 토지용도 변경 후 식품연구원 부지의 부동산 가치는 대폭 상승했다. 연구원으로부터 부지를 매수한 사업 시행사는 이 부지에 1223가구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지어 분양을 완료했다. 

가스공사 부지 매각 과정에서도 시는 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국토부와 경기도, 가스공사 등과 업무협의를 통해 용적률을 기존 400%에서 560%으로 상향해 주거비율을 높였다. 지목 변경도 동시에 이뤄졌다. 시는 15층 규모 시립병원 간호사 기숙사를 기부채납 받는 조건으로 가스공사 부지의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승인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2017년 행정사무감사에서 식품연구원 지목 변경 등이 문제가 되자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토지용도 변경은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준수했으며 정부의 협조 요청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성남시 관계자의 위 답변이 시의 공식 입장이라면, 식품연구원과 LH 오리사옥의 사례에서 시가 보이는 이중적 행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식품연구원 부지 지목 변경이 공공기관 청사 이전 지원을 위한 방편이었다면 LH의 경우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LH오리사옥. 사진=LH
성남시 구미동 LH(한국토지주택공사) 오리사옥. 사진=LH

LH관계자는 “오리사옥은 수차례 매각공고에도 불구하고 미매각 상태인 자산으로 신속한 처분을 위해 공공개발 등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감정평가 수수료를 지출하지 않기 위해 2019년부터 입찰 공고를 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벨로퍼 업계 관계자는 "토지용도 변경은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일부 사업은 가능하고 다른 한쪽은 불가능하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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