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이재용 혐의 집착' 못버리는 검찰의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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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이재용 혐의 집착' 못버리는 검찰의 오만과 편견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9.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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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회계부정·부당합병 의혹 공판' 취재 후기
15차례 공판 불구, 공소 핵심사안 입증 안 돼
소모적 신경전에 반복된 신문... 재판 공전
前 삼성 미전실 직원 등 불러 압박식 신문
檢 "삼성이 유리한 시점 선택해 합병 추진"
'이사회 개최일' 변경 없어... '檢 탄핵 증거'만 등장
'물산 주주 손해 주장'도 입증 안 돼... 합병 후 신용등급 상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계부정·부당합병 등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지 4개월여가 흘렀다. 2017년 2월 최순실 사건에 연루되며 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은 2018년 3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올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재수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부회장 파기심 판결의 판시이유와 법리 구성에 대해서는 다수 전문가들이 판결문에 내재된 모순을 지적하면서 의문을 제기했으나 사건은 그것으로 확정됐다.   

이 부회장은 재수감 이후 207일만인 지난달 13일 가석방 요건을 충족해 출소했다. 장기간 수감생활로 부쩍 수척해진 이 부회장의 모습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구치소 담장 밖으로 나온 그는 출소 당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으로 출근을 강행하면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삼성은 총수의 복귀를 계기로 파운드리를 비롯한 반도체 부문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히는 등 한동안 멈춰선 공세적 경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 복귀는 미완의 결과물이다.

그는 매주 목요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등 의혹 공판에 출석 중이다. 이 사건 공판은 오전부터 당일 오후 6시까지 거의 하루 종일 열리고 있다. 재판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 이상은 경영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더 안타까운 건 이 사건 공판이 상당 부분 소모적 신경전 혹은 실익 없는 과거 헤집기로 공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소유지를 맡은 검찰의 책임이 적지 않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부당 경영승계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수사중단’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검찰은 전 삼성증권 IB팀장 A를 이 사건 첫 증인으로 불러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의 작성 배경과 목적, 삼성 옛 미래전략실의 역할, 모직-물산 합병의 목적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검찰은 이 부회장 혐의 입증의 스모킹건으로 프로젝트G를 지목하고, 문건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A에 대한 증언에 역량을 집중했다. 검찰은 A에 대한 신문을 통해 3가지를 입증하고자 했다.
 

檢, 엘리엣과 같은 시각... 핵심 3가지 공소사실 입증 실패 

하나는 모직-물산 합병의 목적이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에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삼성 측이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점, 세 번째는 이런 행위가 이 부회장의 묵인 혹은 승인 아래 이뤄졌다는 점 등이다. 이는 검찰 공소사실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사안이다. 이들 사안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사건의 전체 흐름상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나머지 혐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나 업무상 배임 혐의 등은 더 살펴볼 필요도 없이 무력화된다. 검찰은 삼성증권 IB팀 직원 B, 전 미래전략실 직원 C 등을 차례로 불러 위 혐의 입증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매 공판을 취재한 기자의 눈으로 본다면, 검찰의 신문은 현재까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검찰은 위 3가지 사안 중 하나도 입증하지 못했다.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물산 주가는 낮추고 모직 주가는 높이는 방식의 주가 조작이 진행됐다는 혐의(시세조종)는 C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탄핵당했다. 변호인은 반대신문에서 C의 업무상 이메일을 탄핵증거로 제시했다. 그 내용을 보면, 모직-물산 합병을 의결한 이사회 개최일을 '고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합병비율의 산정은 이사회 개최일을 기준점으로 한다. 따라서 시세를 조종하기 위해선 이사회 개최일을 임의로 변경한 정황이 드러나야 한다. 만약 그 반대되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검찰의 공소는 기초가 무너진다. 이사회 개최일을 임의 변경치 않고 '고정'했다는 이메일 내용은 시세조종 관련 검찰 공소가 사실관계에 대한 오판에서 비롯됐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모직-물산 합병은 각 계열사간 사업 시너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피는 과정에서 검토됐으며, 미래 발생 가능한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A~C에 대한 검찰 주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일관되게 확인됐다. 심지어 이들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는 모직-물산을 합병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런 사실은 모직-물산의 합병 목적이 오직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에 있다는 검찰 시각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이 부회장이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도 묵인 혹은 승인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위 선행사실들에 대한 입증에 실패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모직-물산 합병으로 구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도 상반되는 탄핵 증거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변호인 반대시문에 의하면, 합병 후 물산의 영업이익은 꾸준히 상승했으며 신용등급은 2단계 올랐다. 당시 증권전문가들도 합병이 물산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보고서를 발행했다.  

역설적으로 공판이 진행될수록 삼성이 합병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만 부각되는 모양새다. 검찰이 각 사안의 편린(片鱗)만을 놓고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들려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이다.

당시 삼성이 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게 된 계기는 외국계 해지펀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2004년 외국계 헤지펀드가 삼성물산 지분 5% 가량을 취득 공시하며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던 ‘악몽’을 기억하는 삼성 입장에선, 취약한 지배구조를 신속히 개선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우려는 미국계 해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간섭하면서 현실화됐다. 당시 엘리엇은 합병 이전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공시 없이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경영권 분쟁에 불을 붙였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방해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삼성과 엘리엇의 싸움은 2015년 합병이 성사되면서 삼성측의 승리로 끝을 맺었지만 불행히도 엘리엇의 ‘불공정 비율’ 주장만은 살아남아 반기업 성향 시민단체와 금융당국, 사정당국 등으로 전이돼 삼성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의 기본 시각은 엘리엇의 그것과 상당부분 닮아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혐의를 사실로 단정하고 공판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유죄를 확신하는 검찰의 태도는 이제 버릴 때가 됐다. 검찰의 존립 목적은 '거악 척결'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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