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레볼루션①] 원유배합·생산, AI가 다한다... SK이노의 'ICT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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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레볼루션①] 원유배합·생산, AI가 다한다... SK이노의 'ICT 혁신'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1.08.1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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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화학업계 최초 '스마트 팩토리' 개념 도입
굴뚝산업에 '원유 배합 알고리즘' ICT 기술 융합
'유종 특성' AI활용 분석, 정제마진 늘리고, 적자 ↓
'고도화 비율' 정유사 중 가장 낮지만 실적은 선방
울산 공장, AI 시스템이 설비 모니터링... 사고 발생 차단

<편집자주>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돼 온 정유·화학산업이 최근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신사업을 위한 혁신 역량도 높여야 하고, 4차 산업혁명과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은 변신도 필요한 때다. 최근엔 '탄소 감축' 등 친환경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불필요한 작업 공정을 제어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거론되는 다수의 기술이 이미 산업 현장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과의 격차도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경제>는 정유·화학업계가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정유·화학 업계는 산업 특성상 첨단 ICT 기술 융합이 어려운 분야로 알려져 있다. 장치산업으로서 대부분이 공정 자동화가 이미 구현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 전반에 걸친 고정관념을 깨고, 일찌감치 생산과 공정 분야에 AI(인공지능)·머신러닝(Machine Learning)·빅데이터(Big Data)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기업이 있다. 바로 SK이노베이션이다.

정유사들은 경유 값이 고가일 때는 경유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배합'을, 항공유 수요가 높을 때는 항공유를 더 추출할 수 있는 '원유 블렌딩'을 중시한다. SK이노베이션은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데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7년부터 자체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크로노스'를 통해 전 세계 300여종 원유 샘플을 분석한다. 통상적으로 원유는 중동 두바이산, 미국 서부텍사스산(WTI) 등 대표 유종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유종은 수백가지가 넘는다. 원유를 정제해 생산되는 나프타와 경유, 중질유 비율도 유종에 따라 모두 다르다. 원유를 배합했을 때 나타나는 성분비의 차이는 무한대에 가깝다.

'크로노스'는 5만여 개의 변수를 고려해 최적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원유 조합 비율을 찾아낸다. 설비 조건, 원유의 성질, 재고 현황 등 수많은 변수를 계산해 매달 30~40여종의 유종을 수입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료 다변화도 가능해졌다. 그 결과 정제 마진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2014년, 원유보다 훨씬 저렴한 벙커C유를 도입해 적자 폭을 줄였다.

이 같은 모델이 제품 생산단계에 적용되면 비용절감 효과는 수천억원에 이른다. 실제로 쉐브론, 엑슨모빌 등 글로벌 석유기업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간 10억달러 이상 추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빅데이터를 정유·화학제품 생산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최적화(Optimization) 전담 조직'을 구성해 다양한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에너지는 국내 정유 4사 중 고도화설비 비중이 25%로 가장 낮다. 비율이 가장 높은 현대오일뱅크(41%)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석유사업에서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분기 석유사업 매출은 전체의 64%에 달하는 5조8765억원, 영업이익은 4161억원이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공장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공장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에너지·화학업계 최초 스마트 팩토리 도입

울산CLX '스마트 공정운전 프로그램' 개발

SK이노베이션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2017년 에너지·화학업계 최초로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 '스마트 플랜트'를 도입했다. 주요 생산 거점이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숙련도 높은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울산CLX 공장에 먼저 적용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안전관리 체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SK 울산CLX는 공정·설비의 이상징후를 사전에 예측해 신속한 비상조치가 가능한 '스마트 공정운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새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공정과 설비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실시간 모니터링은 사고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를 줄이는 성과로 나타났다.   

특히 지금까지 발생한 유해가스 유출 사고 이력과 원인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유출 사고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공정은 무엇인지, 어떤 징후가 있을 때 유해가스가 누출되는지 분석했다. 과거에 있었던 사고 사례나 대응방안, 노하우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체계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혁신했다. 그 결과 울산CLX의 설비·운전 안정성은 몰라보게 개선됐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 사진=시장경제DB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 사진=시장경제DB

 

'빅데이터 노하우'로 설비 데이터 디지털화

2019년 디지털화 시작, 2년여 만에 결실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자회사 SK에너지는 울산CLX 설비 관리에 필요한 1000만건 이상의 데이터를 디지털화했다. 울산CLX는 대지만 250만평, 가동 중인 공정설비는 60만여 개에 달한다.

디지털화를 통해 울산CLX 내 각 설비의 과거 이력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디지털화 작업을 시작해 2년여 만에 결실을 봤다.

울산 CLX 디지털화에는 차세대 설비관리 시스템 '오션허브'(OCEAN-H)가 쓰였다. 오션허브는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각 설비에서 측정되는 온도와 압력 등의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해 효율적 공장 관리를 돕는다. 

오션허브를 활용하면 1200만건이 넘는 데이터를 보다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전체 공장 설비부터 건물, 차량까지 통합관리가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 팩토리는 기업이 가진 자원을 생산현장에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ICT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가 결국 기업 경쟁력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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