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검찰에 "삼바 공소장 굉장히 난삽... 변경 안하면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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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검찰에 "삼바 공소장 굉장히 난삽... 변경 안하면 무죄 선고"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6.1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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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증거인멸 의혹' 항소심 쟁점 분석
'교사범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 재판부 '부정적'
"공소장 보강 없으면 삼바 관계자 무죄 불가피"
"피고인별 구체적 행위와 역할 먼저 가려야"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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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내용이) 굉장히 난삽하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줘야 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 대부분 '~ 및, ~및'으로 처리해서 (사실관계 판단이) 곤란하다. 검찰 입장을 존중하지만 공소사실을 매끄럽게 보완해 논란의 여지를 없앨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의혹' 항소심 사건 재판부가 검찰 공소사실을 검토하고 내린 결론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이 사건 공소장에 기재한 '교사범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와 관련, 법리적 판단에 앞서 공소장 수정·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서울고법 형사2부(윤승은 김대헌 하태한 부장판사)는 15일 오후 열린 속행 공판에서 검찰에 이 사건 법리 구성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공소장 변경을 거듭 촉구했다.  

이른바 ‘교사범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는 이 사건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삼성바이오와 관계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전자 소속 임직원들의 지위나 역할이 각각 다른데도, 검찰은 이들을 모두 증거인멸·은닉 교사범인 동시에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고 공소장을 작성했다.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삼성바이오 소속 임원 등이 2018년 5월 5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에 모여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증거인멸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의에서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사내 PC 전산자료 등에 대한 삭제가 결정됐고, 부하직원에게 순차 지시하는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것이 검찰 공소사실 요지이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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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사실 두루뭉술... "구체적으로 보강치 않으면 무죄 선고할 수밖에 없어"

문제는 위 어린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역할, 참여 정도 등에 따라 죄책을 각각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를 주재한 자와 적극적 참여자, 소극적 참여자의 양형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회의의 실제 목적과 참석자들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 등도 살펴봐야 한다. 회의 개최 목적이 증거인멸에 있지 않았다면 비난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재판부는 “교사범과 공범의 관계를 공소장 변경 시 명확히 가려줘야 한다”며 “교사를 안했는데 교사했다고 한다던지, 지시를 받아 실행한 사람에게 교사혐의를 적용했다면 재판부로서는 무죄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이 새롭게 들고 나온 ‘추가 모의’ 혐의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검찰은 위 어린이날 이후 별도의 추가 모의가 이뤄졌고, 순차적인 공모행위를 통해 자료 삭제가 진행됐다는 주장을 폈다. 

재판부는 “교사에 해당하는 인물은 두 부류인데, 대책회의에 참석한 사람과 추가 모의한 사람으로 나뉜다”며 “대체 추가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어 공동정범으로 기재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들이) 긴급대책회의(어린이날 회의) 결정을 미리 알고 실행했다는 것인지, 지시를 받고 결행했다는 것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추가 모의에 대해서도 전제사실 없이 기재한 것은 무엇을 모의했고 어떤 경위로 모의했는지 사실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보완해야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재판부의 지적에 검찰 측은 “긴급대책회의가 트리거가 되면서 자료 삭제 지시가 다양한 경로로 전파돼 실행행위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라며 “해당 경로를 공소사실에서 특정했고 가담자들을 적시한 것인데, 그 부분은 보다 구체화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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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와 혐의 관련성 특정해야"... 재판부 지적에 궁지 몰린 檢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의 압수수색 보관물 반환 지연도 쟁점으로 다뤄졌다. 검찰 수사팀은 삼성바이오와 에피스로부터 압수한 저장매체를 2년이 넘도록 돌려주지 않고 있다. 변호인단은 앞선 공판에서 "압수물 반환 지연으로 피고인 방어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조속한 반환을 요구했다.

이날도 변호인단은 “통상적인 디지털 증거물 압수에선 원본을 회사에 남겨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검찰이 원본을 모두 가져갔다"며 압수물 반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삼바 임직원이 삭제 혹은 은닉한 전산파일이 2600만개에 이른다"면서도 범죄사실 증명에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에 대해선 특정하지 않고 있다. 

변호인단은 증거목록 기재 파일에 대한 특정 없이 심리가 진행된다면, '삭제 또는 은닉 파일이 2600만개에 달한다'는 검찰 공소사실이 재판부 심증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아울러 “검찰이 주장하는 은닉파일 중 상당수가 '본죄'(분식회계 의혹)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시스템 파일과 같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파일도 다수 섞여 있다”며 “이들 파일이 실제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이 있는지 살피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기소한 검사 의견에 따라 파일 자체가 아닌 서버를 증거라고 볼 수 있고, 기소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변호인들 항변은 관련된 증거를 공소장에 적시해 양형에서 가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압수를 계속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면 회사에서 원래 쓰던 서버일 경우, 소송 종결 되기 전이라도 반환토록 돼 있는데 그러면 굳이 열람 등사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경우, 저장매체 자체를 은닉한 것이므로 압수한 것”이라며 “변호인으로부터 열람등사해 달라는 요청 있었는데 목록이 워낙 많고 여러 난점이 있다보니, 관련성있는 것부터 선별하는 식으로 협의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열람등사가 진행 중이라는 검찰 발언에 변호인단은 “본안 사건에선 진행 중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열람등사가 안 되고 있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특히 “압수된 서버는 폐기하려던 것이 아니라 차후 업무에 쓰기 위해 보관한 것인 만큼, 언제든 반환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양형인자로 증거의 가치 보기 위해서는 변호인 측에 검토할 기회가 있어야 하고, 현재 진행 중이라고는 하는데 더딘 것 같다”며 “다음기일가지 적어도 변호인단이 증거부분 확인을 할 수 있도록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 다음 공판기일은 8월 31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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